지드래곤 아이러니를 풀어야 김태호PD도 ‘굿데이’도 좋은 날 온다
‘굿데이’, 지드래곤을 앞세웠지만 중심이 되지 못하는 아이러니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이상한 일이다. MBC 예능 <굿데이>는 무려 김태호 PD와 지드래곤이 손을 잡았다. 게다가 방영 전부터 화려한 게스트들이 예고되며 기대감을 한껏 높여 놓았다. 그 게스트들은 김수현은 물론이고 정해인, 임시완, 이수혁, 황정민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좀체 보기 어려운 인물들로 가득하고 여기에 정형돈, 데프콘, 기안84, 광희, 조세호 같은 예능의 베테랑들도 채워져 있다. 그런데 이 화려하면서도 낯선 조합에도 불구하고 <굿데이>는 어디선가 봤던 프로그램들의 기시감들로 가득하다.
먼저 <무한도전>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기시감일게다. 애초에 지드래곤과 <무한도전>의 관계는 그만큼 끈끈했기 때문이다. 정형돈과 함께 동묘 시장에서 패션으로 웃음을 줬던 시절의 추억담은 <굿데이>의 사실상 오프닝처럼 여겨질 정도로 1회 전면을 가득 채웠다. 패셔니스타인 지드래곤에게 ‘관리 받아야겠다’며 정형돈이 패션 드립을 치는 그 장면들은 고스란히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 놓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데프콘이 가세하면서 이들이 함께 했던 ‘무도가요제’의 추억은 새록새록 피어났다.
<굿데이>의 취지를 들려주려 할 때마다 딴소리를 해대며 말을 꺼낼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은 지금이라면 너무 구닥다리의 유머 코드로 여겨질 테지만, <무한도전>의 추억을 가진 시청자들이라면 미소가 지어질 법한 장면들이 된다. 데프콘의 현실 기반 드립이 주는 웃음은 여전하고, 자신이 하는 프로그램인 <나는 SOLO>의 연예인 특집에 오히려 지드래곤을 섭외하려는 듯한 역발상도 재미있다. 하지만 이런 코드가 여전히 <무한도전>이라는 지금은 사라진 레전드 예능 프로그램의 자장 안에 놓여 있어 <굿데이>만의 새로움을 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드래곤이 평소 친한 후배인 코드쿤스트와 함께 차를 마시러 가서 기안84를 만나는 에피스도도 마찬가지다. 이 에피소드는 <굿데이>라기보다는 기안84와 코드쿤스트가 나오는 <나혼자산다>에 지드래곤이 출연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오래 전부터 지드래곤의 팬이었다며 전화 한 통화에 한 달음에 달려온 기안84가, 어색해하기도 하고 특유의 엉뚱한 말들을 쏟아내며 웃음을 주는 장면들이 그렇다.
조세호가 합류해 코드쿤스트와 함께 지드래곤이 김수현을 만나러 가서 헬스장에서 한바탕 운동을 통해 친해지는 과정들도 기시감이 들긴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조세호가 나서서 이런 저런 드립을 치고 간간히 특유의 몸 개그를 선보이는데, 그건 마치 유재석 없는 <유퀴즈 온 더 블럭>을 떠올리게 한다. 김수현을 게스트로 하는.
어째서 이런 기시감이 가득한 걸까. 늘 새로운 실험과 도전정신들이 가득했던 김태호 PD의 <무한도전> 속 기획들을 떠올려보면 이러한 기시감은 어딘가 당혹스럽다. 아직까지 첫 회를 봤을 뿐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런 기시감이 생겨나는 건 아무래도 <굿데이>를 끌고 나가야 하는 주인공 지드래곤이 아직까지 그 중심을 잡아주지 못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무한도전>에 게스트로 나오는 것과는 다른 호스트의 입장에 서 있지만 지드래곤은 첫 회에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그만의 개성을 꺼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문 예능인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해 보이지만, 중요한 건 <굿데이>는 지드래곤이 애초 그 해를 되돌아볼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예능적인 재미를 주기는 어렵다고 해도 그 취지 자체가 주는 공감대가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게 해주는 건 지드래곤이 당연히 해야할 역할이다. 그런데 그 지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왜 모여서 함께 음악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재미가 있는 것인지를 지드래곤은 첫 회에 잘 설득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굿데이>는 지드래곤보다 게스트로 참여한 정형돈, 데프콘이나 기안84, 조세호 같은 출연자들이 끌고 가는 프로그램처럼 여겨졌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하고 있는 타 프로그램들의 기시감이 느껴졌다고 보인다. 다음 회에는 지드래곤과 동년배인 이른바 ‘88라인’들인 김수현, 정해인, 임시완, 광희, 이수혁이 출연할 예정인데 여기서도 뭔가 분명한 지드래곤만의 색깔이 묻어나지 않으면 자칫 <나는 SOLO>나 <신서유기>식의 게임 예능의 기시감이 들 가능성이 있다.
<굿데이>는 ‘좋은 날’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지만 ‘GD 데이’라는 중의적 의미로 지드래곤을 전면에 내세운 제목이기도 하다. 김태호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요즘은 자연스러운 콘텐츠를 시청자들이 많이 봐주신다”며 따라서 “인위적으로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 말 대로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지드래곤이 얼마나 빨리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편안해지는가가 이 프로그램의 관건으로 보인다. 그것이야말로 여타의 프로그램이 떠오르지 않는 고유한 <굿데이>가 될 테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