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가차 없이 버린 게 넷플릭스에선 1위를 했다는 건(‘도라이버’)
‘도라이버’, 절치부심 다시 뭉친 ‘홍김동전’ 제작진과 출연진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아구구 이게 뭔일이여~~~도라이버가 1위를!!!” 최근 김숙은 자신의 개인 계정에 이런 멘트를 올렸다. 넷플릭스에서 지난 23일 첫 공개된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이하 도라이버)>가 국내 TV 부문 톱10에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김숙의 반색은 이 프로그램의 전신이었던 KBS <홍김동전>이 높은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폐지되었던 과거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건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 걸까.
<도라이버>는 ‘지옥에서 돌아온 구개념 버라이어티’라는 타이틀로 돌아왔다. 그건 <홍김동전>이 KBS에서 폐지되었지만 끝내 부활해 넷플릭스를 통해 되살아났다는 걸 의미한다. 김숙, 홍진경, 조세호, 주우재, 장우영으로 구성된 출연진도 <홍김동전> 그대로고, 메가폰을 잡은 박인석 PD도 그대로다. ‘구개념 버라이어티’는 너도 나도 ‘신개념’을 내세우는 예능의 시대에 대한 역발상이다. 예능 본연의 웃음과 재미를 추구하겠다는 거다.
<도라이버>는 이러한 콘셉트에 맞게 등장부터 빵 터지는 분장쇼로 시작했다. 넷플릭스로 귀환한 만큼 넷플릭스 K콘텐츠 캐릭터들로 분장한 출연자들이 한 명씩 등장했다. 장우영이 <오징어게임>의 기훈(이정재)을, 김숙이 <흑백요리사>의 이모카세 1호를, 조세호가 <살인자O난감>의 장난감(손석구)을, 주우재가 <종이의 집>의 교수(유지태)를 그리고 홍진경이 <오징어게임>의 영희로 등장해 큰 웃음을 줬다.
이러한 분장쇼도 <홍김동전>에서 늘 했던 익숙한 것들이고, 또 미션을 제시하는 박인석 PD조차 피식 웃음이 터질 정도로 엉뚱한 미션으로 채워지는 프로그램 콘셉트도 똑같다. 여기에 미션과 상관없이 치고 받는 출연자들의 케미는 그간 호흡을 맞춰와서인지 기승전결이 없어도 거두절미하고 재미를 준다. 이렇게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어째서 KBS에서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는가가 이상해 보일 지경이다.
KBS에서는 안됐지만 넷플릭스에 와서 첫 공개에 톱10 1위를 찍었다는 건, 플랫폼의 차이를 느끼게 해준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중장년 이상의 고정 시청층을 겨냥하지 않으면 여전히 구시대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시청률을 얻지 못하고 결국 괜찮은 프로그램조차 설 자리를 잃는 한계를 드러낸다면, 넷플릭스는 취향별로 선택되는 OTT로서 세대와 상관없이 폭넓은 시청층을 가져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소재나 표현에 있어서도 훨씬 높은 자유도가 주어지는 장점도 있다. 여담이지만 넷플릭스로 주목받은 <도라이버>로 인해 웨이브에 올려진 <홍김동전>이 새삼 관심을 받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KBS를 포함한 지상파, 케이블, 종편 같은 레거시 미디어들의 시청층이 갈수록 나이들어가고 대부분의 젊은 시청층이 OTT로 옮겨가는 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다. 예능은 그 특성상 좀더 젊고 트렌디한 시도를 요구한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지만 레거시 미디어는 그런 시도를 흡수할 수 있을 만한 시청층이 이탈한 지 오래다. 새로운 예능의 실험이 레거시 미디어에서 사라지고 있는 이유다.
<도라이버>는 넷플릭스가 ‘일일예능’이라는 색다른 편성 콘셉트로 내보내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간 넷플릭스의 편성 방식은 ‘전편 공개’가 정석이었지만 최근에는 변칙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더 글로리>나 <경성크리처> 같은 드라마의 경우 파트를 나누는 식의 편성 전략을 선보인 바 있고, <흑백요리사>나 <솔로지옥3> 같은 예능은 매주 몇 편씩 나눠 공개하는 ‘쪼개기 편성’을 시도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일일예능’이라는 파격을 선보인 것이다.
단번에 소개하지 않고 월요일에는 <동미새: 동호회에 미친 새내기>, 수요일에는 <추라이 추라이>, 목요일에는 <미친 맛집: 미식가 친구의 맛집>, 토요일에는 <주관식당> 그리고 일요일에는 <도라이버>가 방영된다. 모두 2,30분 남짓의 미드폼이고 매주 방영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포맷을 가진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그만큼 순발력 있게 만들어낼 수 있는 형식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토크쇼 기반의 프로그램들이다.
간편하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지만, 콘셉트나 제작진, 출연진에는 힘을 줬다. 데프콘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동미새>나 독보적 캐릭터인 추성훈을 내세운 <추라이 추라이>, 성시경과 <고독한 미식가> 고로상이 함께 맛집 탐방에 나서는 <미친 맛집>, <홍김동점> 출연진이 모인 <도라이버>, 문상훈과 최강록 셰프가 요리와 토크를 버무리는 <주관식당> 모두 그 인물들만으로 기대감이 생겨난다.
‘일일예능’은 어찌보면 레거시 미디어들이 해왔던 편성 전략이다. 넷플릭스는 이러한 쪼개기 편성으로 구독자를 더 머물게 하겠다는 의지지만, 이로써 레거시 미디어들의 상황은 더 어렵게 됐다. <홍김동전>이 <도라이버>로 돌아온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제는 레거시 미디어에서는 안되는 콘셉트도 OTT에서는 효과적인 전략으로 세워질 수 있다는 걸 말해주기 때문이다. 플랫폼으로서 지위를 누리던 방송사들이 이제는 콘텐츠 회사로 변신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워진 환경을 잘 말해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