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서사를 과감하게 들어낸 나영석 PD의 흥미로운 실험(‘지락실3’)

‘뿅뿅 지구오락실’ 시즌3는 과연 재밌는 걸까?

2025-05-07     김교석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달 25일 시작한 tvN 예능 <뿅뿅 지구오락실>(이하 <지락실>) 세 번째 시즌은 재밌는 걸까? 반응이 전 시즌들만큼 터진 걸까? 웬만한 영화 러닝타임보다도 긴 두 시간 가량의 게임쇼를 지켜보면서 헷갈리는 반응이 적지 않을 것이다. 멤버들이 펼치는 게임과 티키타카를 다시 본다는 반가움은 화제성으로 증명됐지만, 반복된 볼거리에 대해서는 높아진 기대치만큼 역치 또한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무리 TV시청자가 주요 타깃이 아닌 콘텐츠라고 해도 전 시즌들에 비해 다소 소박한 시청률은, 연휴와 날씨 영향을 고려해야겠지만, 2회에서 그마저도 소폭 감소했다. 흥행의 잣대가 될 만한 절대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이런저런 말이 나오기 딱 좋은 상황이다.

<지락실>은 랜덤플레이 댄스로 상징되는, 놀라운 재능과 당당한 태도, 편견 없고 긍정적인 마인드, 평등한 문화 등등 기존 리얼 버라이어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이를 벌써 3번째, 아니 4번째 보는 셈이다. 캐릭터는 확고하고, 멤버들은 다른 영역이나 예능에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잘 알다시피 성장서사가 둔화된 캐릭터쇼는 언제나 위기를 맞이했다. 멤버들이 각자 자리를 잡다보니 성장 에너지는 감소하고, 멤버들의 친밀도가 무르익은 후 어떤 식으로 웃음을 만들고 관계가 형성될지 눈에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예외는 없었다. 예측불가능성과 기상천외한 전개를 웃음 포인트로 삼고 있는 리얼버라이어티는 언제나 이즈음 한계에 봉착했다. 그래서 <무한도전>과 <1박2일>이 쌓은 기존 공식을 뿌리부터 해체한 새로운 세대의 캐릭터쇼는 과연 반복된 볼거리와 성장 에너지의 둔화를 어떤 식으로 넘어서려고 할지 궁금했다.

흥미롭게도 제작진은 서사를 들어냈다. 나영석 PD는 유튜브 방송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시즌3부터는 실시간 시청률은 신경 쓰지 말고 재밌는 장면은 그냥 다 내보내자는 기조로 편집 방향을 잡았다고 했다. OTT와 숏츠 시대의 콘텐츠 소비문화에 발맞춰 회당 기승전결이 있는 서사구조를 쌓기보다는 재밌는 장면들을 최대한 노출해 ‘짤’로 소비될만한 바이럴 소스를 최대한 제공하겠다는 뜻이다. 요즘 자기계발서 같이 200~300페이지지만 얻어갈 것은 단 하나의 메시지만 남으면 된다는 계산인데, 볼거리를 나열해 이어붙인 백화점식 구성은 과거 리얼버라이어티가 힘이 빠질 때 고질적으로 노출하던 전형적인 패턴이다. 이를 역으로 이용하겠다는 셈이다.

시청자들과 매주 호흡하며 생물처럼 진화하는 <무도>식 리얼버라이어티를 이제 다시 꺼내들기는 어렵다. 시청자들은 매주 제각각의 속도로 업데이트되는 긴 호흡의 성장서사를 볼 여유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재밌는 부분만 잘라 보는 숏츠의 시대이며, 프로그램에서 느끼는 리얼 이상의 친밀감을 주는 매체와 방식이 발달했다. 과거 리얼버라이어티의 날것에서 무언가로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느린 서사는 즉각적인 효능감을 중시하고 시즌제에 익숙한 오늘날 예능 소비와는 동떨어진 코드다.

물론, 여기에는 믿는 구석이 있다. <지락실>의 세계관은 이미 출연진과 제작진, 그리고 소비자(시청자)가 만들어가는 서사 안에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유튜브 채널, 타 방송, 채널 ‘십오야’ 등을 통해 계속해 소통하며 프로그램 안팎으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스핀오프 <지락이의 뛰뛰빵빵>이나 채널 ‘십오야’에서 하는 실시간 리뷰 방송들이 그런 맥락 위에 있는 콘텐츠다. 그러니까 정작 방송에서는 스토리라인이 좀 무뎌져도, 세계관이 재미의 본질과 거리가 있어도 큰 상관이 없다. 이들의 진짜 세계관은 네 명의 출연진이 보여주는 티키타카와 제작진 사이의 케미스트리를 보는 재미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지락실> 시즌3는 시간이 멈춘 원더랜드로의 여행처럼 느껴진다. 볼거리에 대한 역치가 존재할지라도, 형식적이든 정서적이든 캐릭터쇼의 성장서사를 최대한 유예하면서 기존 캐릭터쇼의 성장서사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어차피 새로운 자극과 성장 에너지를 더 높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익숙한 기대와 반가움을 유지하는 전략이다.

공산당을 언급한 시즌1에서나 가다실을 내뱉은 시즌3에서나 미미의 펀치력은 여전하다. 시즌1의 이영지와 전남친토스트에 광분하는 시즌3의 이영지의 에너지레벨도 똑같다. 속마음 이야기와 운전으로 비유되는 나름의 성장 그간의 시간들을 어느 정도 반추한 <뛰뛰빵빵>과 본 시리즈의 결정적 차이이기도 하다. 제작진이 시즌을 거듭하면서 구축한 심화된 세계관을 설명하는 부분은 애쓰는 것처럼 다가올 뿐이고, 제작진이 출연진을 사랑스럽게 여기고, 출연진, 그리고 출연진끼리 서로 좋아하는 게 느껴지는 게 핵심이다. 즉, 세월이 흘러도 오랜 친구들과 만나면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처럼 언제나 같은 감정과 재미를 느끼도록 한다.

물론 이 방식이 모두에게 통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역치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캐릭터쇼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방안으로 성장 서사를 덜어낸 점은 무척 흥미롭고 전위적이다. 프로그램 내에 성장을 유예하는 대신, 유튜브 방송 등등으로 친밀감을 쌓는 방식이 과거 리얼버라이어티의 한계를 넘어서는 한 수가 될 수 있을까? 익숙한 반가움을 유지 및 확장하려는 <지락실>의 편집 기준 변화가 어떤 결과를 남길지 기대가 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