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두 배 껑충, ‘언슬전’은 어떻게 밋밋해 보였던 배우들을 바꿔놓았나

정준원, 강유석, 신시아, 한예지.. ‘언슬전’이 낳은 매력적인 신인들

2025-05-12     정덕현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드라마. tvN 토일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하 언슬전)>은 바로 그런 표현에 딱 어울리는 드라마다. 물론 처음에는 캐릭터들이 본격적인 매력을 드러내지 않아 밋밋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차곡차곡 사건들을 쌓아감으로써 그 안에서 톡톡 튀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세워지고, 그래서 그들을 계속 바라보게 만드는 ‘빌드업’ 형의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작품의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 시청률의 상승곡선이다. 첫회 3.7%(닐슨 코리아)로 다소 소소하게 시작한 시청률은 매회 경신되면서 10회에는 두 배가 넘는 7.5%를 기록했다. 이렇게 된 건 이 스핀오프 드라마의 본편인 <슬기로운 의사생활>과는 다른 배역들 때문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등장부터 모든 걸 다 갖춘 의사들이 수술이면 수술, 환자와의 소통이면 소통, 우정과 사랑까지 줄줄이 임팩트 있는 사건들 속에서 그려냈던 작품이다. 하지만 <언슬전>은 다르다.

<언슬전>은 제목에 담겨 있듯이 완성된 주인공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완성될 ‘전공의’들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시작은 의학드라마의 주인공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설프고 실수 투성이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밑바닥을 먼저 보여준 인물들이 차근차근 저마다의 성장들을 이뤄나가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다. 대단한 수술이 등장하지도 않지만, 수술방 하나를 어레인지 하면서 생기는 고충이나 다툼, 선배 의사의 미운 짓, 하다 못해 수술부위 소독 같은 작은 일에도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은 울고 웃는다.

완성될 ‘전공의’들이 주인공인 만큼 이 역할을 맡은 배우들도 신인들이다. 물론 구도원 역의 정준원은 2010년부터 활동한 중고신인에 해당하지만 표남경 역의 신시아, 엄재일 역의 강유석 그리고 김사비 역의 한예지는 이제 막 주목받는 신인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원톱은 상대적으로 몇몇 인기작을 경험한 고윤정처럼 보이고, 이들 신인들을 케어하는 교수님들 역할의 이봉련, 손지윤, 이창훈, 이현균 같은 배우들이 드라마의 든든한 골격을 잡아준다.

<언슬전>이 낳은 최대 수혜자를 뽑으라면 역시 구도원 역할의 정준원을 꼽을 수밖에 없다. 레지던트 4년차로 이 병아리 레지던트들을 늘 따뜻하게 감싸는 구원자 같은 이 캐릭터는 오이영(고윤정)과의 멜로가 본격화되면서 ‘무해한’ 매력을 발산했다. 능동적으로 먼저 다가오는 오이영에게 한발 물러나는 듯 균형을 맞춰가고, 또 멀어질 듯 싶으면 다가가는 구도원의 무해함을 정준원은 특유의 편안한 모습으로 연기해냈다. 오이영과 병원에서는 선후배 관계로 보내지만 병원 밖에서는 존대를 하는 그 기묘한 관계 또한 이 편안한 캐릭터에 중요한 매력 포인트였다.

영화 <마녀> 파트2에서 소녀로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신시아는 <언슬전>에서는 스타일을 추구하지만 레지던트 생활 속에서 그게 번번이 무너지는 표남경 역으로 일찌감치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까탈스럽게 소독을 요구하는 환자와의 에피소드에서 눈물을 흘리며 웃는 표남경의 연기는 이 발랄하면서도 따뜻한 캐릭터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강유석은 <폭싹 속았수다>의 철없는 아들 양은명 역할로 한창 주목받던 시점에 <언슬전>이 방영됨으로써 이 배우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증폭되었다. 전직 아이돌 출신으로 모든 게 동기들에 뒤처지지만 의욕과 열정만은 앞서는 모습으로 갈수록 매력적으로 변해가는 엄재일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소화했고, 후반부에 이르러 김사비와의 멜로 라인이 생겨나면서 그 매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2023년 단편 영화를 찍기는 했지만 한예지는 사실상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AI처럼 감정 기복이 없이 모든 걸 똑부러지는 매뉴얼로 처리하는 김사비라는 캐릭터를 통해 단박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무감정해 보이는 모습 속에서 의외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엄재일이 아이돌 시절 팬이었던 과거가 노래방에서 춤을 추며 드러날 때 이 인물의 매력이 급상승했다. 한예지에게 이 작품은 그래서 배우로서의 첫 물꼬를 열어준 고마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그랬지만 <언슬전> 역시 매력적인 인물을 빌드업 하는데 있어 장점을 보인 작품이다. 종로율제 병원 산부인과라는 공간 속에서 매일 부딪치는 인물들이 여러 사건을 통해 저마다의 매력을 보여줌으로써 후반부로 갈수록 그 인물들을 계속 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드라마. 이것이 캐릭터 맛집 <언슬전>이 매력적인 신인 배우들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저력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