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받아주는구나, 끝내”...김고은·박지현 연기 놓고 격론(‘은중과 상연’)
‘은중과 상연’, 올해 최고 화제작으로 손색없는 이유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이 화제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의 마음을 잡아끄는 이유는 무엇보다 ‘공감’ 때문이다. 어떤 이는 ‘상연’을 천하에 둘도 없을 ‘쌍년’이라며 호구를 자처하는 ‘은중’을 답답하게 여긴다. 또 어떤 이는 ‘상연’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서 상연을 측은히 여기고. 심지어 격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류은중’ 역은 김고은, ‘천상연’ 역은 박지현이 맡았는데 누가 연기를 더 잘 했느냐를 두고도 의견이 나뉜다.
상연 입장에서는 가장 믿고 의지가 되는 친구 은중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을 차지한 셈이다. 먼저 자신에게는 데면데면했던 오빠 ‘천상혁’(김재원)이 은중이에게는 쉽사리 곁을 내줬지 않나. 귀한 라이카 카메라까지 선물하면서, 또 자신에게는 유난히 엄격한 엄마(서정연)가 은중이에게는 한없이 따스했고, 또 자신의 첫사랑, 상연에게는 유일무이한 남자인 ‘김상학’(김건우)이 은중이만 내도록 사랑하니까. 그런데 그런 은중이 상연에게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친구인 거다.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다.
초등학교 때 만나서 청소년기를 거쳐서 대학 동아리, 또 직장 일로 다시 만나기까지 마흔두 살이 되도록 이어진 30년의 시간. 그 동안에 은중과 상연은 가족 같은 끈끈한 인연이자 때로는 원망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서로 부러워했다가 연민을 가졌다가 열패감의 연속이기도 했고. 상연이 뒤통수를 치고 은중이 다시금, 어쩔 수 없이 받아주는 식의 재회가 반복이 되는데 그러다가 마지막 15회 상연의 대사, ‘네가 나를 받아주는구나, 끝내’, 상연은 은중이 이번에도 받아 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상연 부분을 제외하면 은중의 삶은 비교적 평탄하다. 편모슬하의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결핍 안에서 하나하나 자신의 노력으로 쌓아가는 건강한 에너지를 지녔다. 은중의 어머니(장혜진)는 어찌 보면 판타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아이 둘을 혼자 거두느라 버거웠을 텐데 힘들다는 내색을 단 한 번도 하지 않는다. 은중이 어머니가 혼자 쓸쓸히 밥을 먹는 장면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복대. 마음이든 몸이든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상연 어머니(서정연)도 그렇다. 아들은 스스로 생을 포기했고 남편의 파산에 이어진 이혼, 교사직도 내려놓아야 했고, 심지어 하나 남은 딸은 엄마와 척지고 산다. 의지할 데가 없다 보니 아파도 아픈 티를 못 냈고, 돈이 없어도 아쉬운 소리를 못 했다. 어찌 보면 가장 불행한 사람이지 싶은데 그런 상연 어머니가 은중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초등학교 때 상연의 엄마이자 옆 반 교사인 윤현숙이 담임의 차별 대우로 풀이 죽어 있는 은중이를 불러서 다독여줬다. “아빠가 계시지 않는 건 슬픈 일이지 창피한 일은 아니야.” 윤현숙 선생의 위로와 글쓰기를 잘 한다는 칭찬이 은중의 삶을 바꿔 놓았다.
약한 면을 드러내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던 상연이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만큼은 은중에게 연락을 했다. 너무나 힘들기도 했고 두 사람이 어떤 사이였는지 잘 아니까. 그러나 은중이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거절을 했다. 휴대폰은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대를 대변하는 소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처럼 사건의 빌미가 되곤 한다. 전원을 꺼놓았다는 이유로 은중과 상학은 결별에 이르렀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연은 은중에게 적개심을 품게 된다.
문제의 인물 ‘김상학’을 김건우가 맡았는데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빌런 손명오, 바로 그 배우다. 상학이 진짜 상연에게 흔들렸을까? 어느 정도는 연민이었지 싶다. 비 맞은 강아지를 그냥 두고 지나칠 수 없는, 그런 측은지심. 그러나 은중이는 언제나 100%여야 하니까 그렇다면 헤어지는 게 맞다. 김상혁이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사람이긴 하나 일단 흔들렸다는 걸 안 이상 어떻게 계속 하겠나.
직장 일로 다시 조우하고 부딪히면서 상연이 또 다시 엄마 찬스를 꺼낸다. 우리 엄마 죽었는데 넌 몰랐잖아, 이렇게. 그래서 자책과 연민으로 은중이가 다시금 상연이를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럼 뭐 하나 또 뒤통수를 치는데. 그것도 핵폭탄 급으로. 보기 좋게 한 방 먹이고 떠난 상연이가 영화사를 차려서 크게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길고 긴 두 사람의 갈등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 은중에게 상연이 찾아와 자신이 말기 암 환자라는 걸 밝히며 존엄사를 위해 스위스에 같이 가주기를 부탁한다. 늘 그래왔듯이 상연에게 말려들고 결국 스위스로 함께 떠나는 은중. 마지막에 상연이 은중에게 열쇠 하나를 건넸다. 그 열쇠가 속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으나 ‘천상연’이 없는 속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드라마나 영화의 성공은 얼마나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느냐에 달려 있을 터, 그런 의미에서 <은중과 상연>은 대성공이다. 올해의 드라마로 tvN <미지의 서울>을 꼽지만 바로 그 화제성 면에서는, 이야깃거리가 되는 데에는 <은중과 상연>이 앞서지 않을까?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