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함익병, 왜 긁어 부스럼 만들었나

2014-03-13     김교석


함익병 발언논란, 유독 배신감 큰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요즘 함익병이 문제다. 8시나 9시 뉴스에는 나오지 않지만 열애설이 난 김연아를 제외하면 최근 뉴스 중 가장 뜨겁다. 정작 본인은 입을 닫고 있지만 표창원, 홍혜걸, 진중권 등이 가세하며 함익병 발언논란이 점점 가열되는 모양새다. 국민 사위로 불리는 피부과 의사 함익병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가감 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리고 사람들을 당황케 했다. 피부과 의사면서 피부과 가지마라는 식의 화법을 구사했던 것처럼 소신은 명확했고 역시나 직설적이었다. 문제는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으로서 할 말은 아니었다.

특히 문제가 된 부분은 잘 먹고 잘 살수만 있다면 왕정도 상관없다는 독재 옹호론과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 여성은 권리의 4분의 3만 행사해야 하니 딸의 선거권을 임의로 막았다는 것, 그리고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도 납세와 국방의 의무 등을 행하지 않았으니 역시나 투표를 못하게 했다고 밝힌 대목이다. 놀랍지 않는가? 오늘은 민주화 운동이 발발하는 때도, 1920년대 모던보이들이 활동하던 사상의 시대도 아니다. 2014년이다. 독재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오늘날은 대통령도 여성인 시대다.

안 그래도 잘 나가고 있는데 돈도 안 되면서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될 인터뷰를 성심껏 한 성실함과 용기와 정성은 높이 사야 하지만 그의 발언들은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 무지와 체제와 법에 저촉되는 것들이었다. 아무리 본인 자녀들이라고 한들 임의적인 기준으로 선거권을 침해하는 건 헌법에 위배되는 잘못이고, 잘살면 독재든 왕정이든 만사형통이란 생각은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대표적인 천민자본주의적인 발상이다. 이는 온갖 나쁜 짓의 발구름판과 같은 논리다. 식민지 근대화론부터 경제력에 따른 계급사회 주창까지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인식이다. 하물며 예능 칼럼을 쓰는 사람에게도 상식인 것을 우리사회의 지식인층이라는 의사가, 그것도 해당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꾼 선구자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롤모델이, TV에도 자주 나와 친근한 어른의 생각이라기에 뉴스가 될 만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가 이런 식의 발언을 처음 한 것은 아니다. 이미 <자기야>에서 시민의 권리에 대해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물론 당시는 이 정도까지 논란이 일진 않았다. 이번엔 발언의 구체성과 함께 예전과 달라진 그의 인지도가 거대한 상승기류를 일으켰다. 입지전적인 자수성가자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장모와 편하게 지내는 소탈한 모습, 포장하지 않는 듯한 돌직구형 발언과 소신 있는 시원한 태도는 <힐링캠프><자기야>와 여러 종편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재밌고 독특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면서 젊은 층에게도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다. 이른바 업계를 넘어선 대중의 셀러브리티가 된 것이다.



우리사회가 점점 더 타인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다보니 가장 친근한 장르인 예능 방송은 더 이상 예능 선수들만의 터전이 아니게 됐다. <화성인 바이러스>에서 <안녕하세요>까지, <사랑과 전쟁>에서 <마녀사냥>까지, 리얼버라이어티에서 관찰형 예능까지, 심지어 오디션 쇼는 전적으로 일반인을 카메라 앞에 내세운다. 기존에는 다른 무대에서 익숙한 연예인을 새롭게 만날 기회를 제공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내 이야기, 우리 주변의 모습을 TV예능에서도 만나게 됐다. 공인으로서의 연예인의 개념과 범주가 엄청나게 확대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능이 가지는 기본적인 성격이다. 어느 한 사람의 다면적인 모습 중 예능은 친근하거나 재밌는 모습만 부각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대중들과 교감을 나누는 캐릭터쇼이고, 우리가 소비하는 것도 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강용석의 사례처럼 이미지 세탁(변신)의 장이라고 비난을 받는 지점이다.

함익병의 이번 논란도 마찬가지다. 그는 의사로도 유명했지만 방송을 통해 더욱 더 유명해졌다. 공중파 예능인 <자기야>와 <힐링캠프>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는 기존 2차선에서 8차선으로 마치 광대역처럼 넓어져서 우리는 어느 순간 따라가게 됐다. 교감할 수 있는 리얼리즘을 추구하고 친밀감을 극대화하려는 흐름의 결과다. 문제는 평소 반갑게 마주하던 얼굴이 다른 곳에서 만나자 다른 얼굴을 들이미는 것과 같은 배신감이다. 이때 배신감은 두 배 세 배로 다가온다.

함익병 발언 논란과 같은 일은 일상과 거리를 점점 좁혀가는 예능 방송계의 트렌드상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꾸며진 것이 아닌 리얼한 무언가를 원하는 동시에 여전히 판타지를 찾기 때문이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예능에서의 캐릭터는 한 단면일 뿐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붙잡아 두는 정도다. 멘토의 시대 이후 본격화된 타인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조금만 접어두려는 노력 정도다. 예능의 스토리텔링이 정교해지면서 이마저도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져야 하는 의무도 중요해졌다. 앞서 말했든 함익병이 인터뷰를 꽤나 성의껏 응한 것은 칭찬할 만하다. 방송을 하고 많은 대중들 앞에 서서 사랑을 받게 되면 조금 힘들고 귀찮더라도 인터뷰든 뭐든, 대중과 만나는 창구를 늘려야 한다. 공중파 밖에 있음에도 최근 가장 뜨거운 방송인이 된 허지웅이 말한 것처럼 기존에 무엇이었든 현재 방송을 하고 있으면 방송인이라는 자각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 우리는 이런 과정들을 통해 한 인물에 대해 더 정확한 평가를 내리고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번 인터뷰를 읽으면서 소탈하고 친근한 거물 의사, 쿨하고 재밌는 국민사위라고 좋아하던 그의 다른 얼굴, 혹은 진짜 마음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이제 제작진에게도 새로운 미션이 떨어졌다. 캐스팅 과정에서의 검증은 물론 추후 대응 및 수습 능력이 프로그램 기획 능력만큼이나 중요해진 시대가 됐다. 시청자들은 배신감이 느껴지면 처절할 정도로 물어뜯고 돌아서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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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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