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법칙’, ‘정글’PD의 치기어린 야심
2014-06-12 정덕현
‘도시의 법칙’, 왜 뉴욕까지 날아가 거지 생활하냐고?
[엔터미디어=정덕현] 낯선 도시를 여행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막연히 생각한 이미지와 실제 부딪치는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 물론 여행이라면 그저 지나치는 것이니 그 체감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이 아니라 현지에서 생활을 하는 것이라면 어떨까. SBS의 새 예능 프로그램 <도시의 법칙>은 ‘낯선 곳에서의 생존’이라는 <정글의 법칙>의 이야기를 도시로 가져왔다.
‘이건 여행이 아니다. 생존이다’라는 반복되는 진술은 이 프로그램이 여타의 해외 로케 예능프로그램과는 다르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다. 대중들은 특별한 목적이나 의미 없이 해외로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한 때 <맨발의 친구들>이 해외까지 나가 생고생을 하면서도 호응을 얻지 못했던 건 그들이 왜 그런 고생을 하는가에 대한 좀 더 명쾌한 답변을 프로그램이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을 제작한 이지원 PD가 생존지로 도시를 선택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이 전환점에서 정글과 도시는 보이는 것만 다를 뿐 비슷한 뉘앙스로 다가온다. 둘 다 생존해야할 공간이라는 것이다. 정글이 자연에서 잠자고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오히려 도시의 복잡다단한 삶을 벗어나 무한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걸 떠올려보면, 돈이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도시가 어쩌면 정글보다 더 살벌한 생존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정글에서 필요한 것이 갖가지 위험을 이겨낼 수 있는 야생에서의 생존경험이라면 도시에서 필요한 것은 생활력이다. 낯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고 거기서 어떤 일을 해서든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이 없다면 생존할 수 없게 된 도시의 환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는 그만큼 분명해진다. 생계가 생존이 되는 곳, 그곳이 우리가 사는 도시라는 공간이다.
뉴욕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품고 떠난 출연자들은 거의 창고 같은 공간에서 서식하며(?) 낯선 곳에서의 유사가족을 형성한다. 맏형 김성수는 자신이 알던 뉴욕과는 또 다른 뒷골목에서의 뉴욕을 경험하고, 이천희는 뭐든 뚝딱 만들어내는 맥가이버 본능이 발동한다. 투덜이 정경호는 때 아닌 협상 전문가로 나서고 미국 서부에서 오래 살았지만 뉴욕은 처음이라는 밴드 로열파이럿츠의 문은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카사노바 본능(?)을 깨운다. 여기에 윤활유이자 활력소로 투입된 막내 백진희의 발랄함은 이 유사가족에 생기를 만든다.
SBS가 <최후의 권력> 같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제시했던 것처럼 자본의 문제는 도시 생존의 근간에서부터 드러나기 마련이다. <도시의 법칙>은 그래서 어쩌면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세계 속으로 좀 더 한 걸음 깊게 들어가기 위한 예능의 행보처럼 보인다. 다큐멘터리가 자본의 문제를 객관적인 거리에서 보고했다면 <도시의 법칙> 같은 예능은 더 근거리로 들어가 생생한 자본의 경험을 하게 만든다.
사실 뉴욕까지 날아가 거지 생활 한다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뉴욕의 겉이 아니라 속을 들여다보기 위한 포석이다. 돈이 많다면 뉴욕이든 아프리카든 그 실제와는 상관없는 안전한 공간에서의 안락한 며칠을 보내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도시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경험은 뉴욕까지 가서도 자신이 서울에서 살던 공간의 인공적인 복제물들 속에서의 안락함만을 재현해 느끼게 해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도시의 날 것을 보여주겠다는 <도시의 법칙>의 치기어린 야심은 흥미롭다. 도시인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 걸까. 도시인은 어디에서 사는가. 도시인은 어떻게 사는가. 도시인은 왜 사는가. <도시의 법칙>이 화두처럼 던지는 질문 속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를 낯설게 바라보려는 이 프로그램의 진심이 담겨있다. 과연 <도시의 법칙>을 통해 우리는 도시의 어떤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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