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고 나서 눈치보는 건 ‘라스’의 미덕 아니다
2014-08-07 김교석
‘라스’, 손병호 원맨쇼에도 웃지 못하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이번 주 MBC 예능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는 손병호가 있었다. 몇몇 작은 구설에 휩쓸던 <라스>는 다행스럽게도 오랜만에 예능에 등장한 연극판 엔터테이너에 의해 구조됐다. 손병호는 김응수, 김수로처럼 오랜 시간 무대 주변에서 끼를 응축한 대표적인 예능형 배우다. 이들이 예능에서 쏟아내는 무기는 괴리다. 연기를 통해 보여준 것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놀라움을 자아내고 극중에서는 악역이나 조연이지만 예능에서는 굉장한 자신감과 존재감을 발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런 배우들이 예능에 본격 입성하는 경우도 있으나 홍보성 출연이든 어떻든 어쩌다 한 번씩 돌아와 반가움과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때 더 빛난다. 이번 주 손병호도 그랬다. 자화자찬에 웃음으로 초지일관하는 그 독특한 캐릭터 덕택에 4MC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시작해, 바보게임, 박수게임 등등 그 예전 손병호게임으로 날리던 시절 향수부터 나이트 댄스를 거쳐 필이 충만한 ‘오늘도 난’까지 장기자랑으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특유의 유쾌한 성격과 매력 있는 웃음소리. 연기파 배우라고 알려졌지만 정작 함께 작업했던 감독과 동료배우 이름도 잘 모르고 심지어 자신이 출연했던 작품 제목조차 기억 못하는 엉뚱함. ‘바보~바보~바보!’를 외치는 나이에 맞지 않는 귀여움. 이처럼 손병호가 두드러진 것은 함께한 연우진, 정유미, 도희가 예능에 친숙하지 못한 게스트였던 점도 있지만 구설 때문에 사과를 하고 시작해서 조심스럽게 진행한 탓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러다보니 평범한 토크쇼처럼 에피소드와 문답으로 흘러가게 되고, 그 결과 방송이 되는 게스트에게 분량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주 <라스>의 콘셉트가 숨겨둔 매력을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손병호는 그것에 성공했을지 몰라도 <라스>는 마지막 남은 매력을 다시 한 번 지켜내야 할 신호가 왔다. 손병호의 원맨쇼는 이 토크쇼가 살아남았던 이유는 아니다. 그는 여전히 재밌었지만 같은 시간 JTBC의 <님과 함께>에 출연한 요리연구가 이혜정의 어마어마한 집 구경하는 것보다 볼거리는 떨어졌다. 왜냐면 손병호의 예능감과 <라스>가 만나 시너지를 이룬 재미는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해피투게더>든 <힐링캠프>든 이번과 같은 수준의 웃음은 어디서든 창출할 수 있다. 이건 <라스>입장에서 캐스팅이 좋았다고, 웃을 상황은 아닌 것이다.
이제 곧 유재석의 새로운 토크쇼가 시작된다. 그리고 최근 시작한 토크쇼 중 가장 신선한 에너지를 지닌 <비정상회담>도 본 궤도에 올랐다. 새로운 방송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바로 이때, <라스>에 ‘위기와 초심’이라는 지겹고 지루한 진단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다시 한 번 내려야 한다. <마녀사냥>등의 프로그램부터 시작한 먹히는 토크쇼는 ‘토크쇼의 위기’란 말이 지상파 방송에만 한정된다는 개념 정리를 확실히 했다. 새로운 버전, 새로운 정서의 토크쇼는 여전히 사랑을 받고 기대를 갖게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런데 <라스>는 오히려 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늘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추세를 관찰하면 자신들의 매력은 접어두고, 게스트에 의존하는 구태의연한 토크쇼로 가고 있다. 절대로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 안 되는데, 자꾸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다. 여러 구설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독설 혹은 센 토크에 대해 사과하고 몸을 낮춘다.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며 멘트를 하는 김구라는 윤종신에게 타박을 들었다. 그렇다고 김구라를 지원사격해주는 MC는 따로 없다. 몸을 사리며 할 말 못하는 방송, 게스트의 입담과 에피소드에 의존하는 토크쇼는 <라스>에서 할 필요도 없고, 그런 방송들은 <해피투게더>외에 전부 사라지거나 <별바라기>처럼 위기에 놓여 있다.
<라스>의 정서는 쉽게 말해 B급이라고 하지만 절박함이 근간이다. 지킬 것 없이 되는 대로 해보자고 나섰던 초심이 요구되는 바다. 이번 방송처럼 대놓고 홍보하는 게스트를 모셨다고 밝히고 그 이유를 배급 파워와 관련해 풀어내는 것은 <라스>의 자신감이다. 유재석이나 강호동은 할 수 없는 일이고, 바로 이런 것들이 시청자들이 사랑해온 <라스>의 정신이다.
이제 ‘독설’의 시대는 갔다. 어떻게 저런 말을 방송에서 하지? 왜 게스트를 함부로 대하지? 이런 것이 재미가 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얼마나 더 진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시청자들과 소통할 수 있으며 더 마음에 남길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웃음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힐링캠프>가 되고 만다. 왜 재밌었는지의 분석도 중요하다. 이번주를 복기해보자. 손병호는 웃겼다. 그러나 <라스>니까 웃긴 건 아니다. 1시간 넘게 게스트에 의존해 이끌고 가기란 요즘 시청자들의 호흡으로는 버겁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생생했던 시절의 폼을 회복해야 한다. 그 기본은 센 방송에 걸맞은 단단한 멘탈에 있다. 그래야지만 게스트들이 늘 하는 “라스에 나온다니까 주변에서 정신 잘 차리래요.”라는 멘트가 그저 수사가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기대로 다가오게 된다.
새로운 토크쇼들이 새로운 세대를 이루어가는 이때, 중년이 된 <라스>야 말로 자신의 매력을 지키고 다듬을 때다. 세월이 흐른다고 무조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사과 한 번 했다고 쪼그라들고 눈치 보는 건 <라스>의 미덕이 아니고, 변화도 아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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