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힐’, 우린 ‘꼭두각시’가 싫다
2011-06-14 나도원
- 평론가는 아이돌을 싫어한다?
[엔터미디어=나도원의 오늘 이 노래]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평론가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대체로 칭찬의 뜻이다. 근사하고 재미있는 동료들이 많은데도 평론가 하면 어딘지 고루하고 중후한 중년 아저씨의 상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하나 더. 왜 평론가는 아이돌과 걸그룹을 무시하다 못해 증오하느냐 묻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평론가라고 “CD를 플레이어에 걸면…”으로 시작하는 글만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제목만으로도 많은 관심을 끌 수 있는 대상에 대하여 자주 쓰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전업 평론가들이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1990년대 전반은 한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시기였고, 음반의 판매고와 공연의 흥행실적은 기록적이었다. 다양한 장르가 대중에게 사랑 받았으나 19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아이돌 기획사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다양한 음악의 수혈이 차단되었다. IMF 사태까지 더해지며 다른 장르 음악인들의 통로와 영역은 더욱 좁아졌다.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가 완전히 분리되고, 소수의 과도한 영향력이 방송을 통해 발휘되었다. 다른 한편에선 해외음악의 동시유입과 인터넷의 발달이 주체적인 음악 수용층을 확대시켰다. 이어 신촌·홍대를 중심으로 로컬 신이 형성되면서 인디가 시작된다. 이처럼 방송을 경계로 양분된 상황은 2000년대로 이어져 아이돌 산업의 고착과 인디음악의 성장이라는 갈래로 귀결된다. 이런 상황에서 비평의 대상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비(정지훈)가 왜 요즘 가뭄인지 분석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평론가랍시고 ‘빅뱅의 이름에 숨어있는 우리사회의 대물숭배와 자본주의화 된 여성주의의 결합에 대한 통렬한 분석’이라든가 ‘해양제국주의 산물인 초콜릿과 인체의 복근 결합이 노출한 인체의 식민지화’ 운운하며 바보인증을 받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건 바보 같은 글이 아니라 그냥 바보다. 그런데 2007년부터 사정이 달라진다. 음악도 괜찮은 아이돌 그룹이 등장했고, 어떤 평론가들은 신이 났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자기복제와 대세추종 덕분에 쇠락의 기운이 곧바로 퍼져나갔다. 한류를 선도하는 산업역군이자 민족중흥의 전사(혹은 천사?)로 포장되지만 고만고만한 복제품들이 다시 넘쳐나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써니힐(Sunny Hill)의 미니앨범 [Midnight Circus]는 바로 이 시점에 발표된 앨범들 중 하나이다.
◆ 써니힐은 제2의 브아걸?
써니힐은 2007년에 혼성 3인조로 데뷔했다가 소속사를 옮기고 두 명의 여성 멤버를 투입하며 5인조 혼성그룹으로 재편된다. 남성 멤버 장현은 음악을 담당하고 나머지 네 아가씨들이 걸그룹으로 활동하는 형태가 되었으니 걸그룹 대세에 편승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Midnight Circus]는 써니힐을 그렇고 그런 팀들 중 하나로 묶어버리기가 미안해지도록 만들었다. 이 관심은 갑작스러운 것이다. ‘두근두근’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해도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 브라운 아이드 걸스(이하 브아걸)의 미니앨범 [My Style](2008) 듣기 전에도 그랬다. 오래된 팬들은 가창력 기반의 보컬 그룹이 시류에 편승했다고 비난했지만, 오히려 그때부터 음악적으로 나아졌기 때문이다. 가창력이 무언가. 아이돌이라고 해서 오전에 기타를 가르치고 오후에 드럼을 치며 공연하라는 식은 옛말이다. 모두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뻔한 노래를 열과 성을 다해 부르는 열창을 ‘보느니’ 가창력은 시원치 않아도 괜찮은 노래를 ‘듣는’ 편이 훨씬 낫다.
써니힐 역시 브아걸처럼 내가네트워크 출신이다. 내가네트워크는 다른 연예기획사들과는 다소 성격이 다른 회사로 음악인과 음악성을 상대적으로 중시해온 편이다. 그렇기에 자질과 트렌드가 높은 수준으로 결합된 브아걸의 [Sound G.](2009)가 나올 수 있었다. 써니힐이 소속사를 옮기긴 했지만 브아걸의 오늘이 있게 한 이민수와 세인트바이너리 등이 참여했고, 리얼 악기들을 동원하는 공을 들였다. 타이틀곡인 ‘Midnight Circus’의 안무인 일명 까딱춤, 혹은 일진춤도 범상치 않다. 브아걸의 ‘Abracadabra’의 ‘시건방춤’에 비견될 정도로 곡의 분위기와 리듬에 어울리며 임팩트를 주는 율동이다. 그래서 써니힐이 ‘제2의 브아걸’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지만, 자극적인 외양 때문에 음악이 가려질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것은 중요하다. 옷을 벗은 벌거숭이들 사이에서 고매한 인품과 학식의 소유자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예전엔 예비군복을 입으면 얼마나 배웠고 무슨 일을 하건 다 똑같아진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요즘 신세대 예비군들은 대부분 성실하고 점잖기까지 하다. 직접 겪어봐서 안다.) 그런데 눈에 뵈는 게 있어야만 좋아할 수 있는 아이돌이 있는가 하면 간혹 눈에 뵈는 게 없이 음악만 들어도 좋은 아이돌이 있고, 때론 눈에 뵈는 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아이돌도 있다. 브아걸이 그랬고, 써니힐도 그럴 수 있다.
◆ 꼭두각시가 싫다는 ‘꼭두각시’가 좋다
탄탄한 작·편곡뿐만 아니라 [Midnight Circus]는 메시지의 일관성까지 지닌다. 타이틀곡부터 아이돌 스타의 비애를 담았는데, 써니힐의 멤버들이 직접 만들어 “절대 벗어날 수 없어 네 손끝에 움직일 뿐/ 내겐 선택이란 없어 꿈을 파는 노리개일 뿐”이라 노래하는 ‘꼭두각시’는 특히 인상적이다. 사랑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꺼져버린 조명 누굴 위한 무대였니/ 그대 모든 것이 그래 수단이 되겠지/ 정해주는 대로 말하고 또 포장하는/ 네 심장의 소리”까지 들어보면 ‘만들어지는 가수’에 대한 중의적인 이야기도 된다. “안 돼 벗어나는 행동 네 허락에 움직일 뿐/ 가끔 사랑에 빠져도 연출했던 각본일 뿐”을 기획사 시스템에 대한 비판으로 읽는다고 과대망상으로 진단받아 어딘가로 끌려갈 것 같진 않다. 아이돌 시대에 대한 맹렬한 성토를 (겉보기에) 아이돌처럼 보이는 팀이 내뱉고 있는 것이다. 역시 멤버들이 참여한 ‘Let's Talk About’은 더 직설적이고, 랩의 발언수위도 높다.
“벗으라면 벗겠어요 사장님, 밭이라도 매겠어요 이장님
쩍벌춤 OK! 하의실종 OK! 노래할 수 있다면 출격준비 OK!
다 됐다, 데뷔하자! 망했다, 나 몰라라!
Girl Group이 대세라며 Girl애들을 찾으시는 사장님 나빠요!”
- ‘Let's Talk About’ 중에서 -
많은 이들이 가요계의 다음 흐름을 궁금해 한다. 복고를 대안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쎄시봉’은 복고의 상징이 아니라 세대별, 취향별 음악의 공존 가능성을 설명하는 사례이다. 아이돌·인디·중년음악이 각각의 파이를 갖고 공존하는 것이 선진국형 음악시장이다. 괴상한 한류 과장과 요상한 경연 열풍만 견뎌낸다면 한국도 그런 시대를 맞이할 정도로 나이 들었다. 그러면 아이돌은 어떤 형태로 살아남게 될까? 가창력 아이돌? <나가수>에게 가장 강한 펀치를 먹고 잠잠해진 가수가 누구인가. 밴드 포맷의 아티스트 아이돌? ‘아이돌 그룹이 참여한 앨범 말고 아이돌 밴드가 만든 앨범은 기대할 수 없을까?’라고 안타깝게 하는 그런 팀? 밴드 모양새를 만들어 아이돌에게 아티스트의 캐릭터를 덧씌우느니 아티스트들 가운데에서 아이돌의 캐릭터를 찾는 편이 낫다. 마룬 파이브(Maroon 5)처럼 말이다.
써니힐은 음악을 전적으로 외부에 의지하지 않고 일정 부분은 자체 해결하는 체제이다. 그러면서 트렌드를 외면하지도 않는다. 만약 다른 팀들과 차별화를 위한 또 다른 기획일지라도, 그래서 자아분열로 보인다 해도, 태생의 한계가 분명하더라도 이번 결과물만 놓고 보면 여러모로 괄목상대할 만하다. 음악의 완성도가 낮았다면 딱 “너나 잘해” 소리를 들을 법하지만, ‘꼭두각시’를 중심으로 한 수록곡들의 수준이 만만치 않다. 일종의 역발상 기획으로 자신들의 포지션을 만들 수 있는 여지도 남겨두었다. 그래서 써니힐의 [Midnight Circus]는 붕괴 중인 걸그룹 시대에 단연 돋보이는 댄스앨범이다. 그리고 ‘꼭두각시’는 (평론가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어떤 평론가에게만큼은) 아이돌 시대의 과도기를 상징하는 노래이다.
“춤추는 꼭두각시 매였던 끈을 놓아
지금껏 잃어버린 목소릴 찾고 싶어(라)
나를 붙잡고 나를 흔들고 나를 던져 힘없이 툭 떨어진
춤추는 꼭두각시 나 여기 살아있어
춤추는 꼭두각시 나만의 춤을 춰
지금껏 뺏겨버린 내 무댈 찾고 싶어(라)
나를 붙잡고 나를 흔들고 나를 던져 힘없이 툭 떨어진
꿈꾸는 꼭두각시 나 여기 살아있어”
- ‘꼭두각시’ 중에서 -
칼럼니스트 나도원 <대중음악평론가> nadow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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