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2’ 그 좋았던 실험정신은 어디로 갔나

2015-01-05     김교석


‘인간의조건2’, 이런 식이면 ‘삼시세끼’와 뭐가 다른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주 토요일 첫 방송된 <인간의 조건2>은 사실상 새로운 프로그램이었다. 시즌2라고 하기에 대부분의 조건과 설정이 달라졌다. 출연진은 물론, 진행방식부터 무대 설정까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인간의 조건이란 미션 한 가지만 남았을 뿐, 모든 것이 리셋된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인간의 조건> 시즌1은 촬영방식부터 예능에 라이프스타일 관련 주제 및 정서와 일상의 무대를 접목한 것까지 우리나라 관찰형 예능의 프로토 타입이라 할 수 있는 실험적 도전이었다. 그간 현대 사회와 바쁜 도시인의 삶에서 잊고 살았던 마음, 곁에 있어 너무나 당연히 여겼던 도구, 편리함을 위해 무심했던 환경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이와 함께 <인간의 조건>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개그콘서트> 코미디언들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지난 10여 년간 공개 코미디쇼라는 작은 섬에 머물던 코미디언들은 전혀 다른 호흡과 능력을 요구하는 예능이란 넓은 바다로 쉽게 나오지 못했다. 그때 <인간의 조건>은 돌파구를 마련했다. 아예 가족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개콘>의 멤버들만으로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익숙한 사람들끼리 하다 보니 편안하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도 있었고, 이미 잘 알려진 멤버들의 캐릭터와 관계는 시청자들과도 금세 친해지는 데 한몫 했다.

그러나 회가 거듭되면서 이 실험적 모델은 가장 먼저 부침을 겪었다. 관찰형 예능의 최대 숙제인 지속가능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여성편을 편성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애썼지만 함께 지내면서 무언가를 같이 극복하고 이겨내기보다 미션 수행에 함몰됐다. 일상에서 새로운 그림을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출연자들의 다른 활동이 늘어나면서 함께하고 있다는 패밀리십이 점점 희미해졌다. 게다가 이미 희극인실에서 고착화된 관계는 색다른 관계망을 형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이나믹 듀오, 조우종 아나운서 등 개그맨 외에 멤버들이 들어오긴 했지만 장기자랑만 늘었을 뿐이다. 2년 전 이맘 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첫 발을 내딛었지만 어쨌든 변화가 필요했다. 새로워진 <인간의 조건2>에 주목하는 이유다.



우선 달라진 조건들을 살펴보자. 첫 번째, 개그맨들의 무대가 사라졌다. 그 대신 베테랑 예능선수 은지원을 항해사 삼아 윤상현, 봉태규, 허태희, 현우, 김재영 등 평균 30대의 주조연급 배우로 멤버를 꾸렸다. 두 번째, 시즌1이 원래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하면서 서로 가족 같은 관계의 멤버들로 출연진을 꾸렸다면 이번엔 예능 시청자들에게도 낯선 것은 물론 서로 전혀 교류가 없던 사람들을 모았다. 세 번째, 도심에서 실제 일상생활 속의 변화와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한시적인 장소와 공간을 마련했다. 마지막으로 상벌제를 도입해 시즌1 중반부부터 혼선을 빚었던 미션 수행과 주제의식 사이의 가중치를 아예 미션 쪽으로 완벽하게 옮겼다. 다시 말해, 관찰형 예능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에 가까워졌다.

그런데 새롭다고 신선한 건 아니다. 시즌1의 가장 인기 있었던 주제를 집대성한 ‘5無 라이프’를 미션으로 내걸고 파주 어느 시골마을의 버려진 집에 새로운 멤버들을 격리했다. 문명의 도움을 크게 받지 못하고, 환경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든 걸 자급자족해야 한다. 장작을 패 불도 때고 밥도 하고, 청소도 한다. 봉태규가 노지에서 불을 때는 모습은 SBS <정글의 법칙>도 살짝 떠오르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환경과 설정이란 측면에선 tvN <삼시세끼>가, 열악한 환경에서 미션 수행이란 측면에선 <1박 2일>이 떠오른다. 둘 다 KBS출신 선배가 이룩한 브랜드라는 특이점은 있지만 어쨌든 그렇다. <인간의 조건> 시즌2가 왜 일상의 깨달음을 버리고 파주 시골마을로 들어갔는지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이런 비교는 앞으로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건 또 아니다. 원래 캐릭터쇼를 기반으로 하는 예능은 서비스업계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픈빨’을 얼마나 유지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좋은 첫인상을 만들고, 이들이 앞으로 함께 만들어갈 기대감을 증폭시켜야 프로그램의 생명이 길어진다. 그런 면에서 연예인 티가 전혀 안 나는 꽤나 서민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준 멤버들의 집 공개는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시청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능에서 어리바리한 캐릭터로 자리를 잡은 봉태규, 해맑은 현우, 순발력과 유머감각 있는 멘트를 가진 허태희와 방송 분량의 절대적 지분을 차지한 군고구마통으로 난로를 만들겠다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던 윤상현과 같은 새로운 인물들은 이 새로운 커뮤니티에 관심과 기대를 갖게 만들기 충분했다. 무명배우인 막내 김재영을 아무 소개 절차도 없이 그냥 던져 넣은 건 좀 너무했지만, 오랜만의 야외 예능에 귀환한 은지원은 1회부터 보증수표다운 활약을 했다.

그래서일까, 시즌2 첫 방송은 시청률도 1%이상 올랐다. 동시간대 강자 <그것이 알고 싶다>가 결방한 영향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언급했던 것처럼 가능성도 분명히 보이고, 시즌1의 의미들을 다 가지쳐내서 아쉬운 것들 그리고 타사와 비교해 보건데 퇴행이 아닐까하는 의심도 든다. 당분간은 기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겠지만 왜 이런 변화를 감행했는지에 대해 시청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가 지속가능성의 관건이다. <인간의 조건>은 우리 주변의 몇몇 조건들을 제거하는 형태로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렇다면 시즌2은 무슨 조건을 제하거나 더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보고 싶은 것일까? 아직 명확하게 보이지 않지만 방송을 통해 그 답을 들을 수 있길 바래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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