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판석·정성주, 이들이 드라마판에 던지는 질문

2015-04-10     정덕현


그 어떤 쓴 소리보다 강렬한 안판석·정성주의 행보

[엔터미디어=정덕현] “PD님이 뭐 하나 놓치는 것이 없다. 연출할 때 배우들의 동선을 이미 생각을 많이 하고 계시다. 배우들이 무슨 감정으로 움직이는지 계산하고 움직인다. 이걸 어떻게 미리 생각하시나 싶다. 소품부터 배우들 연기, 의상 전부 다 놓치지 않는다. 부족함이 없다. 아직도 신기하다. 어떻게 준비하는지 놀랍다. 늘 머릿속에 있는 것 같다.”

SBS <풍문으로 들었소>의 현장공개 기자간담회에서 유호정이 한 이 이야기 속에는 안판석 감독의 연출 내공이 들어가 있다. 그에게 쏟아지는 배우들과 스텝들의 찬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네 드라마 제작 현실에서 감독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정확히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을 안판석 감독을 천재라고 하지만 그건 오히려 미안한 표현이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한 땀 한 땀 최적화된 연출을 찾아낸 장인이다.

사실 우리처럼 사전 제작제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 드라마 현실에서는 이리도 찍어보고 저리도 찍어보는 것으로 괜찮은 장면을 찾아내는 건 모두에게 힘겨운 일이다. 심지어는 대본이 늦게 나와 거의 밤을 새가며 작업을 하는 게 일쑤다. 안판석 감독 역시 우리네 드라마판을 한번 들어가면 몇 달 간 현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곳으로 얘기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도 배우도 스텝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안판석 감독이 찾은 해법은 이 모든 것을 최적화시키는 것이다. 열 번 찍을 것을 단 두세 번에 마무리시킨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다. 이것은 또한 제작비와도 관련이 있다. 무수히 많이 찍어 성공한 작품을 만들고도 제작사가 파산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니 이런 최적화된 연출을 하기 위해 미리 머릿속에 모든 동선과 효과적인 방식들을 계산해 넣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배우들이 몸으로 일일이 시연해서 해야 할 일을 안판석 감독이 머릿속으로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이 가능한 건 그동안 연출을 하면서 끊임없이 슛과 컷을 날리면서 그것을 허투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번 했던 컷을 머릿속에 복기하면서 다음에는 좀 더 정확한 시간배분이나 동선을 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몸에 체득된 것이다. 마치 장인들이 무수한 반복을 통해 나중에는 별 계산 없이 작업을 해도 딱 떨어지는 것처럼.

많은 배우들과 제작자들이 현장의 혹독함을 토로한다. 현실이 그렇다. 하지만 그 현실은 결코 힘겨움을 토로한다고 해서 바뀌지는 않는다. 사전제작제가 정착되려면 요즘처럼 드라마에 깊게 개입하는 시청자가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고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배우와 스텝들을 배려할 수 있을 것인가. 안판석 감독의 연출방식은 그 자체로 작금의 드라마 제작현실에 던지는 작지 않은 질문이 될 것이다.



여기에 정성주 작가가 보여주는 드라마의 깊이는 작금의 중견작가들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지금 현재 우리네 중견들은 어떤가. 선배로서 드라마를 통해 치열한 현실 인식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동안 쌓아온 인맥과 드라마 작법의 노하우를 갖고 시청률에만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닌가 자문해봐야 할 때다. 중견이라면 적어도 후배들에게 어떤 귀감이 되어야 할 텐데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는 막장도 불사하지 않던가.

그럴 듯한 대사 몇 줄 만들고 적당히 장르 문법을 구사한다고 해서 중견작가라는 칭호가 붙는 건 아니다. 그 정도의 연륜과 경험이 쌓였다면 대사 한 줄 속에서도, 캐릭터 하나에서도 세상을 읽어낼 수 있을 만한 깊이가 묻어나야 하지 않을까. 정성주 작가가 보여주는 ‘문제적 캐릭터’들은 우리 사회가 가진 부조리한 면들을 입체적으로 드러내준다.

물론 안판석 감독이나 정성주 작가는 스스로 우리네 드라마판에 대해 어떤 쓴 소리를 한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들이 해온 일련의 행보들은 그 자체로 우리네 드라마판에 그 어떤 쓴 소리보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