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도 걸려든 대한민국 오디션 징크스
2011-07-25 최명희
- ‘나가수’, 여가수들 무덤 되나
[엔터미디어=최명희의 대거리] ‘남자에게 내숭 떨고 남자에게 더 잘해줄 때’, ‘여자라도 믿고 비밀 말했는데 다음 날 소문이 났을 때’, ‘예쁜 여자 무조건 다 욕할 때’, ‘고부 갈등’, ‘내 남자친구 유혹할 때’... 이상은 몇 해 전 SBS ‘야심만만’에서 [여자의 적(敵)은 여자’라고 느껴지는 순간은?]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설문지 상위에 자리잡은 답변들이다. ‘여자의 적(敵)은 여자’라는 말은 여성들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인 동시에 여성들 스스로도 먼저 인정하는(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격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4라운드에서 옥주현이 탈락했다. 지난 5월 29일 숱한 논란 속에 ‘나가수’ 무대에 첫 등장해 이승환의 ‘천일동안’을 열창하며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던 옥주현이 6번의 경연을 마치고 퇴장한 것. 2라운드 1차 경연부터 4라운드 2차 경연까지 옥주현의 순위 변동은 1위→5위→4위→6위→6위→7위로 미끄럼을 탔다. 옥주현은 탈락이 확정된 이후 “다시 이 무대에서 선배님들과 새로운 무대를 꾸며갈 수 없다는 게 가장 서운하다"고 말했다. 또 "이 무대에 합류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시기였다”며 “이 소중한 추억을 함께 해준 선배들에게 감사한다"고 담담히 퇴장을 받아들였다.
옥주현은 ‘나가수’가 ‘2번 경연 후 합산점수 순위 기준’이라는 새로운 제도로 다시 태어난 이후 경연을 통한 4번째 탈락자로 기록된다. 새 제도가 도입된 이후 김연우, 이소라, BMK, 옥주현 등이 차례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합산점수 기준 꼴찌로 추락한 데에는 각각의 이유와 사정이 있을 터이고, 또 계속해서 경연을 치르는 가수들은 바로 그 점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향후 좋은 성적을 내는 기반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김연우의 경우 두 번째 경연부터 ‘나가수’ 스타일을 제대로 인식하고 적응했으나 첫 경연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너무 고수하다가 잃어버린 점수를 만회하지 못해 탈락했다는 분석이 많다. 초창기 ‘나가수’의 파격을 주도했던 이소라는 건강상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무대를 떠난 것으로 보인다. BMK의 경우 선곡에 따라 큰 선호도의 차이를 적절하게 이용하지 못한 데다 결혼 등 개인사로 시작이 부족했다. 옥주현은 일부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청중평가단의 마음을 훔치기에는 미흡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모두 4라운드의 경연이 진행되면서 김연우 이후 3번 연속 여자 가수들이 탈락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시점이다. 통계적 가치는 높지 않겠지만 탈락 가수의 75%가 여자라는 얘기다. 이소라와 BMK가 탈락한 2라운드와 3라운드에서 남녀가수의 비율이 3대 4로 여자 가수가 탈락할 확률이 다소 높았으나 옥주현이 무대를 떠난 4라운드에서는 남녀가수 비율이 4대 3으로 오히려 뒤바뀐 상황이었다.
가수의 성별이 당락에 중요한 가늠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개운치 않은 게 사실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 가수들의 경연장인 ‘나가수’에서 조차 대한민국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징크스가 재현되는 느낌이다. 사실 대중들의 평가가 반영되는 공개 오디션이 활성화된 이후 여성 참가자가 상대적으로 불리한 평가와 불합리한 결과물을 받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Mnet '슈퍼스타K 2'의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장재인은 결승무대에 진출하기는 커녕 TOP3의 벽 조차 넘어서지 못했다. 날카로운 심사평으로 유명한 윤종신으로부터 "장재인 양을 누가잡죠?"라는 평가를 이끌어낼 만큼 우승에 근접해 있다는 평가가 많았던 그녀였지만 최종 경연무대는 허각과 존박에게 양보할 수 밖에 없었다.
MBC ‘위대한 탄생’의 유력한 우승후보로 주목되던 ‘노래하는 짐승’ 정희주도 TOP6 무대를 마지막으로 오디션을 마무리했다. 정희주는 멘토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고도 탈락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무려 70%의 비중을 둔 거대한 문자투표의 장벽을 거둬내지 못했다. 그녀가 떠나면서 ‘위태한 탄생’ 역시 남성만들의 경연장으로 변했다.
연예인 경연으로 시야를 넓혀 보면 tvN ‘오페라스타’ 세미 파이널 대결에서 테이, 임정희, JK김동욱, 문희옥 등 4명의 가수가 자웅을 겨뤘으나 여자 가수인 임정희와 문희옥이 아쉽게 탈락했고 남자 가수인 테이와 JK김동욱이 결승에 진출했다. ‘오페라스타’는 100% 문자투표로 승부를 가렸다.
물론 ‘나가수’는 앞서 언급한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다르다. ‘나가수’는 문자투표 없이 100% 청중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승부를 결정 짓는다. 제작진은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듯 시작부터 청중평가단을 세대별, 성별로 골고루 배정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방송 초기에 일부 논란이 있기는 했으나 청중평가단에 대한 시비는 무마된 상황이다. 수적인 평등이 공정성을 담보하는 건 아니지만 별달리 대안도 없는 형국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측면에서 ‘나가수’에 도전한 여가수들의 잇따른 탈락이 아쉽다. 성비와 연령대를 고려한 청중평가단 투표에서도 여성이 불리하다는 평가와 징크스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문자투표가 진행되는 오디션 조차 여성 참가자가 불리하다는 점은 대부분 공감하면서도 이 현상이 과학적인 것은 아니어서 뾰족한 해법을 내놓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지난 4라운드 1차 경연 이후 "여자가수 3명의 무대를 보고 머리에 남는 잔상이 비슷했다"며 "그래서 서로 표를 잠식하는 제로섬 게임이 됐다"는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의 주장도 그런 점에서는 되새겨볼 만하다. ‘가수 김윤아가 아닌 밴드 자우림을 영입했다’는 ‘나가수’ 제작진의 발언도 이런 현상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싶다. 이소라, BMK, 옥주현 등 여성가수들의 연이은 탈락은 우연이길 기대한다. 더불어 경연을 계속 치르는 여가수들은 좋지 않은 징크스를 멋지게 날려버리고 도약하길 바란다. 프로들이 솔선수범해야 아마추어들도 힘을 얻지 않겠는가.
최명희 기자 enter@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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