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예능, 왜 오디션에 목숨 걸까
- 리얼 예능의 다음 단계, 오디션 프로그램
2011-02-13 정덕현
[정덕현의 이슈공감] ‘슈퍼스타K2’의 충격은 컸을 것이다. 왜 아닐까. 케이블 채널이 동시간대 지상파 시청률을 앞질렀다는 것. “왜 우리는 저런 프로그램을 못 만들까?”, 하는 질문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 게다. ‘위대한 탄생’이 제목처럼 위대해지기 위해 탄생했고, 실제로 오디션이라는 형식이 갖는 힘은 컸다. ‘슈퍼스타K2’의 따라하기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형식적인 힘만으로 ‘위대한 탄생’은 말 그대로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가장 큰 것은 ‘경쟁 시스템’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는 물론 영국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나, 그 형식을 그대로 미국화한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찾을 수 있지만, ‘경쟁’이 갖는 의미는 우리나라에서 더욱 특별하다. 청년실업 문제는 경쟁적인 우리 사회에 빈부나 계층에 따라 불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경쟁 시스템이 야기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니 ‘공정함’을 매번 강조하는 ‘슈퍼스타K’나, 멘토링을 통한 ‘합격’을 내세우는 ‘위대한 탄생’이 주는 판타지는 클 수밖에 없다. 오디션 형식은 그 경쟁이라는 구조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는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들어 MBC 예능은 말 그대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올 인하고 있다. ‘위대한 탄생’에 이어 ‘일밤’의 ‘오늘을 즐겨라’는 트로트, 발라드에 이어 록 장르로 바꿔가며 연예인들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일밤’은 이제 아예 ‘뜨거운 형제들’과 ‘오늘을 즐겨라’를 모두 하차시키고 ‘신입사원’이라는 아나운서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작할 거라고 한다.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건 MBC만이 아니다. SBS도 연기자 선발 오디션 프로그램인 ‘기적의 오디션’을 준비 중이라고 하며, tvN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격인 ‘브리튼즈 갓 탤런트’의 포맷을 사와 ‘코리아 갓 탤런트’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거라고 한다. 말 그대로 여기저기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성시대가 열린 셈인데, 그 중 유독 전면적으로 오디션에 치중하는 건 단연 MBC다. 왜 그럴까.
MBC의 ‘일밤’이 지금 같은 처참한 상황에 이른 이유는 ‘무한도전’이 먼저 리얼 버라이어티의 이니셔티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밤’은 그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가 일요일 밤 시청자들을 모두 뺏어가는 상황에서 ‘일밤’이라는 제목이 무색해져버렸다. 뒤늦게 ‘일밤’도 리얼 버라이어티로 뛰어들었지만 이미 시청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늦어버렸다. 게다가 리얼 버라이어티의 대표격인 유재석, 강호동을 끌어들이지 못했고 심지어 이경규도 타 방송사로 떠남으로써 MC파워마저 잃게 되자 회생불가능의 상황에 이른 것이다.
MBC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희망을 찾는 이유는 적어도 이 새로운 형식의 이니셔티브를 타 방송사보다 먼저 선점하려는 데 있다. 많은 예능 PD들이 리얼 예능의 다음 단계로 오디션 예능을 꼽는다. 그 이유는 전술한대로 그 형식이 갖는 힘이 강력한데다가, 무엇보다 연예인이 아니라 일반인의 참가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일반인 참가는 그 자체로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다. 특히 요즘처럼 예능이 웃음만이 아니라 다양한 재미를 위해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시대에, 몇몇 연예인들의 반복되는 스토리보다 엄청난 수의 일반인들이 저마다 풀어내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은 비교되기 어려울 정도로 더 많은 재미를 뽑아낼 수 있다.
여러 모로 오디션 프로그램이 리얼 버라이어티쇼 중심으로 흘러온 현 예능의 새로운 대세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작년 ‘남자의 자격’의 하모니편이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요인 중의 하나는 역시 그 형식이 가진 오디션적인 특성도 분명 들어있다. 그만큼 오디션 프로그램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우리 깊숙이 들어와 있다.
반면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은 사실상 어떤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고정 연예인 MC들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구조는 리얼 예능이기 때문에 거꾸로 MC들의 사생활이 프로그램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1박2일’은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현재 다섯 명으로 굳건히 버티고 있지만, 김C, MC몽의 하차에 이어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이승기 하차설은 프로그램을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한계는 스토리다. 고정된 MC들로 무한정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리얼 예능의 차세대로 오디션 예능이 부각되는 것은 점점 새로운 스토리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시청자들에게 더 많은 스토리를 전해줄 수 있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MBC는 아마도 그걸 본 모양이다. 그러니 이 변화의 기로에는 누가 먼저 그 영역을 선점하느냐가 차후의 예능 흐름을 쥐고 갈 수 있다. MBC 예능이 오디션에 목숨 거는 데는 이처럼 타당하고 야심찬 이유가 들어 있다. 그리고 상황이 생각대로 움직여진다면 새로운 판에서 어쩌면 MBC 예능은 부활에 성공할 지도 모른다. 물론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참신하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지만.
칼럼니스트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