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는 왜 ‘고래사냥’을 선동가로 바꿨을까
2011-08-01 정덕현
- 자우림 ‘고래사냥’, 청춘을 응원하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뮤직스토리] 누구에게나, 어느 시대에나 응원가는 필요하다. 불안한 청춘에게는 용기를 주고, 암울한 시대에는 희망을 주는 응원가. 자우림이 '나는 가수다' 첫 무대에 들고 온 송창식의 '고래사냥'은 바로 그런 곡이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인 청춘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은 세상 앞에 막막하게 서 있다. 그런 그들에게 이 노래는 권한다. 동해바다로 떠나자고. 비록 '삼등삼등 완행열차'를 타고 가더라도, 꿈에 보았던 그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잡으러 떠나자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그렇게 떠나보자고.
자우림이 이 노래 선곡의 이유로 '청춘'을 거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녀의 말대로 '고래사냥'은 "술 마시고 노래하고 즐기는 청춘"이 그려지는 노래이며,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슬픔"이 있는 노래다. 이것이 바로 자우림이 생각하는 '청춘'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청춘들은 누구나 그 시기에 가장 순수하게 절망하고 그럼에도 무작정 털고 일어나 부딪치는 열정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청춘의 힘겨움이자 특권이니까. 그래서 그 순수한 시간을 살아가는 청춘들은 시대의 어둠을 만나면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들이 된다.
그래서 이 곡은 75년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의 주제가로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고, 84년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에서도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11년 자우림에 의해 '나는 가수다'의 무대에 올려졌다. 그런데 그 긴 세월 동안 반복되어 불리워졌어도 여전히 우리를 설레게 하는 그 힘이 느껴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아마도 청춘의 힘일 것이다. 그 누구나 한번쯤 겪고 지나가지만, 늘 힘겨울 때마다 다시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그 순수함과 열정의 시간. '고래사냥'은 바로 그 청춘을 응원함으로써 우리 모두를 그 시간으로 되돌리는 마법을 발휘한다.
75년, 84년, 그리고 지금. 청춘의 함의는 모두 같겠지만, 그 청춘들이 겪는 고민은 각자 다를 것이다. 75년이 검열과 통제로 암울했던 박정희 시대의 어둠을 바탕에 깔고 있다면, 84년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참혹함이 고스란히 아픔으로 숨 쉬는 공기 곳곳에 퍼져있던 시기다. 그렇다면 2011년 지금은 어떨까. 여전히 청춘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숨막혀 한다. 스펙 사회의 암울한 그림자 속에서 꿈은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는' 무엇이 되어간다. 그래서 자우림이 부르는 '고래사냥'은 '나는 가수다'라는 모든 세대가 관객으로 앉아있는 무대에서는 다양한 청춘의 이야기를 건네준다. 그 꿈이 혹여 잊혀질지라도 가슴 속에 여전히 남아있다고 우리를 응원한다.
자우림은 김윤아가 말한 대로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팀"으로 "어두운 얼굴이라든지 한없이 밝은 얼굴이라든지 곡에 따라서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기가 수월한 밴드"다. 이러한 자우림의 특징은 '고래사냥'이 가진 이중적인 감성, 즉 절망감과 해방감을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송창식의 '고래사냥'이 어딘지 웃고 있어도 슬퍼 보이는 그 정조를 허허로운 웃음으로 노래에 녹였다면, 자우림의 '고래사냥'은 몽환적인 목소리에서 심지어 섬뜩하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와 표정의 반전으로 풀어냈다. 신비로움이 마력처럼 바뀌어 관객을 도발하기 시작하는 그 마녀 같은 김윤아의 카리스마는 '고래사냥'을 마치 선동가처럼 바꾸었다.
그래서 자우림의 '고래사냥'은 그 짧은 시간 동안 70년대부터 80년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는 시간동안 그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청춘들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이제 "떠나자"고 도발한다. 당신이 기억으로 지워버린 꿈을 가슴으로 다시 찾아내기 위해, '신화처럼 숨을 쉬는' 각자 자신들만의 고래를 잡으러 떠나자고 우리를 부추긴다. 그 노래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였거나 가슴 한 켠에 불쑥 뜨거움이 솟아올랐다면 그것은 어쩌면 우리 마음 속 깊은 바다 속에 없는 듯 치부했던 고래 한 마리가 고개를 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 떠나자.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삼영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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