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불복을 위한 하얼빈행? ‘1박2일’ 이래도 괜찮을까

2016-03-07     정덕현


대놓고 3박4일 선언한 ‘1박2일’, 변화와 초심 사이

[엔터미디어=정덕현] KBS 예능 <1박2일>은 왜 중국 하얼빈까지 간 것일까. 그간 <1박2일>의 행보를 두고 보면 하얼빈행은 그만한 이유와 명분이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백두산을 갔을 때도 그 장소가 가진 의미가 그 여행에 충분한 명분이 되어주었기 때문이고, 남극을 가겠다고 했을 때도 거기 세종기지라는 우리네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담보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얼빈은?

하얼빈에 가는 명분으로 생각됐던 건 다름 아닌 3.1절을 기해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유호진 PD는 방송이 나가기 전부터 아예 이런 의미와 명분에 대한 기대를 지워버렸다. 3.1절 특집이 아니고 ‘혹한기 막바지 졸업 캠프’라고 여행의 목적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결국 하얼빈에 가게 된 이유는 그 곳이 춥기 때문이다. 그 목적을 분명히 알려주기라도 하듯 <1박2일> 멤버들은 하얼빈 거리에서 가위 바위 보 게임으로 옷을 하나씩 탈의하는 복불복을 했다. 연거푸 게임에서 진 김종민 때문에 같은 팀인 데프콘은 팬티 한 장만 남긴 채 신발, 양말까지 모두 벗고 오돌오돌 떠는 모습을 보여줬다.

복불복을 목적으로 했으니 그 강도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할 수밖에 없는 하얼빈에서의 옷 벗기 복불복 게임은 그 소기의 목적으로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충분히 웃음을 자아냈고 결국 게임에서 진 김종민과 데프콘이 젖은 청바지를 마치 석고상처럼 얼어 붙여 버리는 그 무시무시한 추위 속에서 길거리에 텐트 치고 야외취침하는 장면을 뽑아냈기 때문이다.

재미는 담보했으나 이 장면들은 아슬아슬하기 그지없었다. 야생을 되찾자는 의미는 알겠지만 그것을 위해 하얼빈까지 날아가고 거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추위에 복불복을 하는 건 자칫 가학성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했다. 충분히 자극적이긴 했지만 씁쓸하게 남는 위태로움은 지우기 힘들었다. 결국 제작진도 너무 했다 싶었는지 새벽에 그들을 깨워 정준영과 차태현이 자고 있는 호텔방 바닥으로 잠자리를 옮겨주었지만 그 자극의 뒤끝은 영 찜찜했다.



다음 날 음식을 놓고 벌이는 복불복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 대한 선입견은 물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마치 못 먹을 것을 내놓기라도 한 것처럼 그걸 먹는 걸 하나의 복불복으로 구성한 건 이문화에 대한 비뚤어진 편견을 드러낼 수 있는 아슬아슬한 장면이었다. 꿔바로우와 자라찜 사이에서 복불복 선택을 하게 된 출연진들은 서로 자라찜을 먹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과정에서 김준호가 정준영을 속이는 장면이 연출됐고, 그것에 마치 진심으로 화가 난 듯한 정준영의 모습이 비춰졌다. 물론 그것이 화면상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에 이어진 김준호의 선택에서 그가 자라찜이 걸리자 마치 보복이라도 하는 듯 정준영이 그의 입에 찜을 넣는 장면은 보기에 따라 불편한 장면이 될 수도 있었다. 지난 ‘여자친구 특집’에 이어 이번 ‘하얼빈 특집’에 정준영 태도 논란이 나오게 된 건 이런 장면들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모두 어떻게 그것을 보느냐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세세한 것들이 엉뚱하게 보이고 때로는 불편하게 보이는 건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는 이 아이템에 대한 정서적 공감대가 잘 이뤄지지 않는데서 생겨난 것일 수 있다. 즉 하얼빈까지 가서 복불복을 하는 것은 자극적인 재미를 주는 건 분명하지만 지금까지의 <1박2일>이 갖고 있던 정서적 공감대와는 사뭇 엇나간 느낌이라는 것이다.



<1박2일>이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것은 국내의 소외된 오지들까지 찾아가 그 곳을 소개하고 그 곳에 살아가는 분들과의 교감을 보여주는 그 정서적인 공감대 때문이었다. 복불복은 말 그대로 양념일 뿐, <1박2일>이라는 진짜 재료의 맛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유호진 PD는 이제 이러한 <1박2일>만의 맛을 벗어나 새로운 맛을 찾으려는 듯 하다.

특별한 의미보다는 복불복을 위해 하얼빈을 선택했고 공공연히 1박2일도 아닌 3박4일을 내걸었다. 국내 여행지와 1박2일이라는 시간적 한정을 어떤 한계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오래도록 방송을 하다 보니 비슷비슷한 지역과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식상함을 벗어나기 위함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아슬아슬한 건 어쩔 수 없는 느낌이다.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그 노력은 좋지만 결국 게임에만 집중하다 추락했던 시즌2의 경험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기 보다는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의 변화와 초심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잡아야 할 때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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