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 김종국, 자신을 버려 유재석을 띄운다
2011-08-03 정덕현
- 김종국 없는 ‘런닝맨’, 상상불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드라마에서 악역을 너무 실감나게 해서 실제로 욕을 먹었다는 얘기는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 드라마의 악역에 대한 인식은 확연히 달라졌다. 그것이 하나의 역할일 뿐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악역이 살아야 드라마가 살아난다는 사실도 이제 대중들은 다 안다. 그래서 이른바 '호평 받는 악역'도 생겨났다.
하지만 드라마와 달리 예능은 사정이 다른 것 같다. 특히 리얼 예능이 대세가 되면서 캐릭터는 실제와 똑같은 것으로 오인되곤 한다. 따라서 리얼 예능에서 악역을 맡은 캐릭터는 실제로도 욕을 먹기도 한다. 김종국은 대표적인 악역 캐릭터다. 그는 '패밀리가 떴다'에서부터 유재석과 톰과 제리 캐릭터로 콤비(?)를 맞춰왔다. 유재석의 선하고 약한 모습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김종국만한 안타고니스트가 있을까.
'런닝맨-보스를 지켜라'편에서 63빌딩 계단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유재석은 광수와 김종국 이야기를 꺼낸다. 지성이 평소에는 몰랐는지 방송에서 보니 김종국의 포스가 장난이 아니라고 하자, 유재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지가 왕이야 왕"이라고 하고는, 최민수 앞에서는 순식간에 꼬리를 내렸던 것을 광수와 열심히 성토한다. 광수는 그런 김종국을 "한 마리의 생쥐" 같다고 표현한다. 거기에 덧붙여 유재석은 김종국이 "맹수과가 아니라 족제비과"라고 비하한다. 김종국은 이처럼 그냥 세워두고도 뒷담화만으로도 충분한 웃음을 뽑아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가 완력으로 밀어붙이고 겁을 팍팍 줄 때, 유재석은 그 긴장감 속에서 웃음을 끄집어낸다. 이러한 김종국 캐릭터는 '런닝맨'으로 오면서 더 강화되었다. 누군가는 쫓고 누군가는 쫓기게 되어 있는 '런닝맨'의 특성상 김종국 같은 '능력자' 캐릭터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가 있기 때문에 그에게 달라붙는 하하와의 묘한 형제 관계가 형성되고, 당하는 캐릭터로서의 이광수나 개리가 살아난다. 대들고 때론 그를 이기는 유일한 캐릭터인 에이스 송지효 역시 김종국이 있어 훨씬 강화된다.
김종국 같은 '두려운 존재'가 예능의 캐릭터로 꼭 필요한 이유는 웃음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가와 관련이 있다. 즉 웃음은 어떤 긴장감이 풀어지며 이완될 때 생겨난다. 즉 긴장감은 웃음의 전제조건이 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김종국이 프로그램 내에서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런닝맨'이라는 게임 그 자체에도 필요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웃음을 위해서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긴장감이 웃음으로 전화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 경우가 최민수의 이른바 '런닝맨 헌팅'이었다. 최민수가 마치 연쇄살인범처럼 런닝맨들을 하나 둘 제거(?)해나가는 과정은 모두를 긴장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속절없이 최민수 앞에 무너지는 런닝맨들은 긴장감을 풀어내며 그것을 웃음으로 바꾼다. 능력자 김종국이 최민수 앞에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즉 최민수가 했던 역할은 사실 김종국이 평상시 '런닝맨'을 통해 했던 역할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과연 김종국이 프로그램 속에서 보이는 악역 캐릭터가 실제모습일까. 리얼 예능이기 때문에 언뜻 속내가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캐릭터는 캐릭터일 뿐이다. 최민수 편에서 보인 것처럼 그는 자신의 캐릭터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 완력으로 최민수와 붙었다면 그 승패를 누가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렇게 리얼로 붙어버리면 너무 심각해진다. 예능으로서 재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것은 여러모로 현명한 선택인 셈이다. 또한 두 번째 편에서 미션 대결을 벌인 윤소이에게 최종 승자 자리를 넘겨준 것 역시 어떤 면으로 보면 배려라고도 볼 수 있다. 최민수는 그래서 김종국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남자다. 여자한테 져줄 줄 알고."
물론 김종국은 본래부터 승부욕이 강하기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좀 과도한 승부욕이 예능의 웃음기를 지우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예능에서의 악역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잘 말해준다. 그는 적절히 긴장감을 만들어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너무 과도하게 만들어버리면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웃음으로 바뀌어지지 않는 긴장감은 불쾌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말 그대로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비면 안 된다는 얘기다.
분명한 것은 '런닝맨'에 유재석 같은 착한 캐릭터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처럼, 김종국 같은 악역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론 힘 조절(?)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그가 악역을 맡았다는 것의 가치를 폄훼할 수는 없다. 부르터스 없는 뽀빠이가 있을 수 없고, 톰 없는 제리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김종국 없는 '런닝맨' 또한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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