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파파라치즘을 옹호하는 까닭

2011-08-04     이문원


- ‘공항패션’이 창궐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엔터미디어=이문원의 문화산업비평]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대중의 관심대상이다. 일종의 표상 격 존재이기에 그 일거수일투족의 영향도 크다. 연예인 이혼이 늘어나면서 실제 이혼율도 높아지고, 연예인 속도위반 결혼이 늘면서 실제 속도위반 결혼율도 높아졌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그 일거수일투족 중 하나로 연예인 패션에 대한 관심도 유난히 높은 상황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옷걸이 좋은 피팅 모델의 차림새만 봐도 구매욕이 생기는 게 바로 패션심리다. 연예인 같은 표상 격 존재의 패션이라면 그 전염도가 어마어마해진다. 그러다보니 각 포털사이트에 송고되는 연예미디어의 사진기사들 중 연예인 패션을 담은 기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근래 연예인 패션 사진기사들을 보면 몇 가지 신조어들로 분류가 묶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공항패션’이란 단어다. 말 그대로 연예인들의 입출국 시 공항에서 입은 옷차림새를 가리키는 말이다. 워낙 폭발적으로 게재 빈도가 높다보니 언제부턴가 연예인 본인들도 이에 꽤나 신경 쓰는 모양새다.

‘하객패션’이란 단어도 새로 등장했다. 동료 연예인의 결혼식에서 하객으로 참석하게 된 연예인들 차림새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공항패션보단 좀 더 격을 갖춘 차림새로 인식된다. 그만큼 고가 의류가 눈에 많이 띈다. 명품 마니아들에겐 더 없는 벤치마킹용 요(要)체크 사진들이다.

한편 ‘레드카펫패션’이란 말도 등장하긴 했는데, 이는 딱히 새로울 건 없다. 사실상 ‘레드카펫패션’이란 건 한국에서 대중문화 관련 시상식이 처음 열리던 1960년대 즈음부터 늘 존재해왔고, 늘 사진 및 방송 보도돼왔기 때문이다. 다만 날이 갈수록 명품 비중이 높아져 사진기사가 뜨자마자 인터넷에 그 가격대까지 죽 게재되는 현상을 낳고 있다. 사실상 각종 연예인 관련 ‘패션’ 중에선 가장 고가고, 일상적 스트리트패션을 참고하려는 일반대중에겐 별달리 도움이 안 되는 사진들이기도 하다.

◆ 공항패션·하객패션 사진은 해외에선 가치 없어

그렇다면 해외에도 이처럼 ‘공항패션’ ‘하객패션’ ‘레드카펫패션’이란 단어들이 존재할까. 굳이 말하자면 ‘레드카펫패션’ 정도나 있을까 말까다. 정확히 말하자면, 각종 공식적 장소 사진 중 대중문화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연예인들이 걸친 패션을 제외하곤 거의 사진기사로서 소화되지 조차 않는다. 그나마 이에 관심을 갖고 사진을 나열하며 패션 품평을 하는 건 아카데미상이나 그래미상 등 미국 대중문화 시상식뿐이고, 여타 아시아지역이나 유럽지역에선 그런 풍조조차 없다.

특히 ‘공항패션’ 같은 건 레이디가가가 지난해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30cm 높이 부츠를 신고 걷다 넘어진 모습을 담은 사진처럼, 뭔가 사건사고(?) 분위기나 풍겨야 그나마 사진기사로서 가치를 얻는다.

‘하객패션’의 경우 해외에선 연예인들 결혼이 비공개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사진을 찍고 싶어도 못 찍고, 뭘 입었는지 알고 싶어도 알 길이 없다. 혹여 공개결혼식이더라도 해외 미디어의 관심사는 결혼을 한 당사자들이지 하객들이 아니다. 신부가 어느 브랜드의 어떤 드레스를 입었는지는 종종 화제가 될 때도 있지만, 하객들은 그저 여러 유명 인사들이 함께 잡힌 원경으로만 소화된다. 한국처럼 하객 한 명 한 명 일일이, 그것도 여러 장 찍어서 내미는 나라는 아무리 봐도 없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 의외로 단순하다. 앞서 언급했듯, 연예인들 일상패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지극히 높으니 어디선가 찍어 사진기사로 내밀긴 해야 한다. 그런데 그중 미디어 입장에서 가장 ‘만만한 곳’이 바로 공항, 결혼식, 시상식 등이기 때문이다. 모두 미리 일정이 나와 있으니 그냥 때 맞춰 해당 장소에 서있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나선 셔터를 누르고 카메라를 돌리는 거다.

해외에선 이런 사진들에 딱히 가치를 두지 않는다. 공식적 장소에서의 패션은 여기저기 코디 붙여 입은 것일 테니 딱히 해당 연예인 본인의 패션 감각을 살필 기회는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연예인마다 전담 파파라치가 따라붙어 밥 먹는 곳, 술 마시는 곳, 쇼핑하는 곳, 데이트하는 곳 등을 따라다니며 그야말로 제대로 된 일상패션을 담는다.

톰 크루즈 딸 수리처럼 어린 나이에 벌써 명품으로 치장하고 나온 사진이라면 해외 토픽에까지 오른다. 평소 거지꼴로 입고 다니는 키아누 리브스 사진 등도 가치가 있다. 그러나 공식적 장소 사진들은 가치가 빵점이다. 공항에서 넘어지지 라도 않는 이상 말이다.



◆ ‘진짜’ 일상패션 사진이 나올 수 없는 이유

의문이 생긴다. 대중 입장에서도 사실 궁금한 건 일상패션이지 공항패션, 하객패션 따위가 아니다. 레드카펫에선 어차피 누가 누가 더 벗었나 밖에 안 보인다. 그런데 왜 한국에선 그런 일상패션 사진이 없고, 손쉬운 공항사진, 하객사진, 레드카펫사진만 난무하는 걸까. 해당미디어에서 사진기자를 직무유기로 혼내키지도 않는 걸까.

물론 당연히 이유는 있다. 첫째, 연예미디어 입장에서 그런 사진을 찍어낼 수가 없다. 한국의 인터넷 연예미디어 현실은 생각보다 더 각박하다. 글 쓰는 기자는 하루 20~30개 꼭지를 써내야하고, 사진 찍는 기자도 마찬가지로 인력부족 탓에 혼자 여러 행사장을 다니며 구슬땀을 흘린다. 연예인 일상패션 사진 찍으러 다닐 여력이 전혀 없다. 공식적 장소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둘째, 해외의 경우 사설 파파라치가 연예인 사진을 미디어에 파는 형태로 일상패션 사진기사가 완성되지만, 한국은 그런 사설 파파라치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진을 찍어봤자 ‘사 주는 미디어’가 없기 때문이다. 언급했듯 한국의 인터넷 연예미디어 현실은 각박하다. 정규기자들 월급 주기도 어려운데 남의 사진까지 값 쳐줘서 받아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누구누구 열애현장 포착 사진이 아닌 다음에야 말이다. 어쩌면 그런 사진일지라도 값을 너무 부르면 못 사줄지 모른다.

셋째, 연예인 본인들이 이 같은 대중의 욕구를 감안, 철저히 연출된 직찍을 남발하다보니 일상패션이란 코드에 뭔가 희소성이 떨어져버렸다. 거기다 분명히 연출됐다고 확신할 만한 몰카 아닌 몰카까지 동원되고 있는 실정이다. 몇몇 연예인들 경우는 자신이 출연하는 CF 속 브랜드를 철저히 걸치고 나와 몰카라고 우겨대기도 한다. 이처럼 연예기획사의 대범한 마케팅 덕에 ‘진짜’ 일상패션이 응당 차지해야할 자리가 휘발되고 있으니 자연 의욕도 안 생긴다.

결국 이 같은 상황들이 놓여있는 까닭에 공항패션, 하객패션이란 낯선 단어가 유독 한국에서만 일상화돼버렸다는 얘기다. 미디어는 찍기 편해 쉽고, 연예인들은 예상한 콘셉트대로 찍혀지니 마음이 편하다. 오브라디 오브라다, 그렇게 미디어와 연예계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하고 있는 셈이다.



◆ 파파라치즘은 연예저널리즘의 생명이다

신동립 뉴시스 문화부장은 2007년 11월20일자 칼럼 ‘연예미디어 나아갈 길‥파파라치’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연예는 일방 커뮤니케이션이다. 잘나거나 별난 연예인의 언동을 나름대로 수용, 소화, 배설하는 형태다. 사회통념이 허용한 약한 강도의 관음증이다. 할리우드식 연예 저널리즘이란 곧 파파라치다. 사진은 물론 글도 철저하게 파파라치스럽다. 연기가 어쩌고, 노래가 저쩌고는 기자가 아니라도 보고 들으면 이내 안다. 그러나 연예인을 포함한 유명남녀의 이성관계, 의식주 라이프 스타일은 파파라치의 노고가 없으면 접할 길이 없다.(중략)
대중문화계만 파파라치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 매스컴의 작동원리 자체가 파파라치라는 점이 다행이다.”

맞는 말이다. 원래 연예저널리즘은 파파라치즘과 늘 같은 길을 걸어왔다. 각종 분석 기사나 칼럼 등은 연예산업을 놓고 ‘더 놀고 싶어 하는’ 독자층이나 실제 연예산업 종사자들 혹은 관련기관 등을 위해 제공되는 부가적 콘텐츠일 뿐이다. 연예저널리즘의 ‘생명’은 곧 파파라치즘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파파라치즘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아야 분석 기사 등 여타 저널리즘 형태도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제대로 된 관음증적 파파라치 콘텐츠가 없다보니 그에 준하는 자극성 강한 엉터리 분석 기사, 칼럼 등만 늘어가고 있다. 그나마 앉은 자리에서 손쉽게, 독하게 팔 수 있는 건 그런 콘텐츠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엉터리 분석과 칼럼은 사실상 풍기문란성 파파라치 사진보다 해로우면 해로웠지 낫지는 않다.

그런데 한국 연예미디어에선 지금 기본적인 파파라치즘조차 실종되고 있는 상황이다. 연예인들의 스캔들 사진은 고사하고 일상패션 사진 하나조차 멋쩍게 약속장소에 서서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패션’을 후다닥 찍고 나온다. 그나마 스포츠서울닷컴 시절 유일하게 이 같은 파파라치즘을 시도하던 멤버들이 디스패치라는 미디어를 만들어 같은 콘셉트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참 다행스럽다. 아무리 봐도 공항패션, 하객패션 사진에 제대로 맞서고 있는 연예미디어는 그 정도가 다인 것 같다. 모쪼록 건투를 빈다.


이문원 칼럼니스트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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