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조작이 아니라면 그게 뭘까
2011-09-09 정덕현
- ‘짝’이 출연자들과 대중을 기만하는 방식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짝'은 교양 프로그램이다. 기획의도가 밝히듯이 '가장 소중한 짝에 대한 희생과 배려와 그리고 사랑을 돌아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존재이유다. 교양 프로그램으로서 이만큼의 진지한 기획의도를 갖고 있다면 절대 거짓이 있거나 조작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종종 조작된 다큐멘터리의 최후를 목격하곤 했다. 성급한 결론을 내기 위해 상황을 연출해서 찍는 조작방송은 하지만 안타깝게도 업계에서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뒤늦게 발각된 연후에 최고의 감동을 준 다큐멘터리는 최악이 되어버리기 일쑤지만.
이것은 예능 프로그램, 즉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대본이 존재하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하고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예능은 당연히 대본이 있다. 하지만 그 대본은 일일이 대사를 하나하나 적어놓은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아무런 미션 설정 없이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찍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리얼이란 그래서 실제상황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미션 속에서 벌어진 해프닝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짝' 같은 다큐를 지향하는 교양프로그램이 얘기하는 리얼리티는 다르다. 이것은 100% 사실 그대로여야 한다. '리얼리티쇼'에서 '쇼'라는 단어가 마치 예능 같은 뉘앙스를 풍기지만 사실 '리얼리티쇼'는 다큐에서 가지를 뻗친 장르다. 리얼한 실제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따라서 리얼리티쇼에서의 조작은 다큐멘터리의 조작처럼 프로그램의 근간을 흔드는 얘기다.
'짝'에서 한 남성 출연자가 게시판에 제기한 문제제기는 기존 이 프로그램에서 종종 있었던 논란과는 그래서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간 '짝'이 야기한 논란들 속에는 '돈이나 간판을 좇는 세태'에 대한 씁쓸함이 들어있었지만, 그것은 프로그램의 진정성인 리얼리티에 전혀 위배되는 게 아니다. 그것이 진짜 리얼한 세태니까. 하지만 이번 12기 '짝'에 출연한 한 남성이 제기한 '최종결정에서 압력에 의한 조작이 있었다'는 얘기는 심각한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짝'은 스스로의 프로그램 정체성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짝' 제작진은 이러한 조작 방송 논란에 대해서 "출연자 누구에게도 선택을 강요하거나 거짓상황을 연출하여 방송하지 않습니다. 6박7일 동안 애정촌 생활은 가감 없이 촬영되고 그 일부가 편집되어 방송됩니다."라고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또 "이번 촬영에서도 제작진이 여자6호에게 남자6호를 선택하지 말라고 강요했거나 남자6호와 스태프와의 마찰을 과장하여 표현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이것은 문제제기를 한 남자6호가 여자6호가 받은 문자와, 제작진과 자신과의 통화내용이 녹음된 것을 증거로 갖고 있다고까지 말한 상황과는 전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명확한 증거가 나오기까지 뭐라 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남자6호와 스태프와의 마찰을 과장하여 표현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수긍하기가 어렵다. 즉 이 부분은 방송 편집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방영된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남성 출연자의 모습이 왜곡되어 있었다는 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무려 6박7일 간의 세세한 사생활을 찍어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많은 분량의 녹화분을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이야기 맥락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필요한 것이 제작진의 PD로서의 양심이다. 남자6호가 버럭하는 장면만 등장하고, 그가 왜 그렇게 했는가에 대한 아무런 소명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편집의 폭력이다. 마치 한 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했는데 그 중에 방송에서 입맛에 맞는 단 몇 초 한 단락(그것도 전혀 전체 맥락과는 다른)을 떼서 방송을 만드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리얼리티쇼에서 이렇게 모든 편집 권한이 제작진에게 들어갔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은 너무나 크다. 즉 거기 출연한 출연진들은 마치 프로그램의 소품처럼 되어 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기서 스토리를 쥐고 있는 PD는 사실상의 신인 셈이다. 따라서 리얼리티쇼는 찍기 전에 세세한 부분에 대한 계약이 필수이며, 프로그램 상에서도 이런 특정 제작진에 의해 왜곡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런 게 있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지켜질 지는 미지수지만.
'짝'의 제작진은 조작방송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하지만, 모든 정황을 살펴보면(사실 편집만으로도 조작은 가능하다) 이 프로그램이 대중들을 기만한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지금도 저 게시판에 들끓는 대중들의 분노와 다른 출연자들의 진술이 뒷받침해주고 있는 사실이다. 어쩌면 '짝'의 제작진은 이것도 '다 지나가리라'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지나가서는 또 다른 피해자들이 속출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방송은 약자에게 잘못 들이대면 그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는 무서운 칼이 되기도 한다. 그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자가 어떤 사람이냐는 것은 그래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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