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근석의 애교, 만족하십니까?
2011-11-21 듀나
- ‘너는 펫’, 판타지는 알리바이가 될 수 없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얼마 전 김하늘, 장근석 주연의 <너는 펫>을 시사회로 보았는데, 결코 내 취향의 영화는 아니었고, 솔직히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을 해 봤다.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을 애완동물처럼 다루는 설정 때문은 아니었다. 자기 앞가림하는 성인 두 사람이 비폭력적인 위치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합의를 하고 역할극을 하는 것까지 시비를 걸며 물고 늘어지는 건 그냥 오지랖이다. 그것까지 신경이 거슬린다면 그냥 영화를 보지 마시라. 그건 타인의 취향이다.
장근석을 애완동물로 키우는 상황 몇 군데가 거슬리긴 했다. 그건 내가 몇 년 동안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한 뒤부터 영화나 드라마가 애완동물을 다루는 태도에 민감해졌기 때문일 거다. 나는 김하늘 캐릭터가 왕년의 짝사랑 상태를 만나 진지한 관계를 고려하다가 애완동물을 버려도 되는 물건 쯤이라 여기고 그 생각을 장근석과의 관계에 대입하는 걸 보고 잠시 움찔했다. 장근석 캐릭터를 걱정했던 건 아니다. 장근석은 애완동물이 아니라 애완동물 롤플레잉을 하는 사지멀쩡한 청년이니까.
하지만 난 그런 생각을 당연시하는 사람이 키우는 진짜 애완동물의 안위는 걱정한다. 여담이지만, 나는 마찬가지 이유로 나는 <오직 그대만>에서 소지섭의 캐릭터가 시각장애인인 한효주의 캐릭터에게 골든 레트리버 강아지를 선물로 주는 장면에 움찔해버렸다.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게 선물받는 사람과 강아지 모두에게 테러에 가까운 행위였다는 걸 정말 몰랐을까.
아, 진짜 불편했던 게 하나 있었다. 그건 설정의 비현실성이었다. 영화에 따르면 장근석은 로잔에서 상도 받은 유명한 발레리노였는데, 파트너의 부상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두문불출하다가 요새는 뮤지컬 연습을 한다. 그러다가 같이 살던 여자친구네 집에서 쫓겨나 방황하다가 김하늘네 집에서 애완동물 롤플레잉을 하며 지내게 된다. 쓰고 나니 무척 민망하다.
한 번 보시라. 이 중 어디까지가 현실세계에서 가능한 일인가? 아무 데나 끊어서 들여다보라. 한참 곧 발표될 작품을 위해 연습 중인 공연 예술가가 밤마다 집을 지키고 있으면서 집주인의 애완동물 노릇을 할 시간이 있다는 주장은 어떨까. 그건 역시 괴상한 판타지 영화였던 <아내가 결혼했다>를 볼 때 느꼈던 궁금증을 떠올리게 한다. "쟤는 왜 자기 시간을 쪼개가며 저런 뻘짓을 하고 있지?"
그래서 난 원작의 설정을 확인해봤다. 적어도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은 키 때문에 발레에서 모던 댄스로 전공을 바꾼 작은 체구의 남자로 나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위에서 이상하게 생각했던 몇 가지는 설명된다. 만약 이 사람도 작품 내내 공연 준비 중이었다면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이건 좀 말이 되어 보인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가? 이건 모두 특정 취향을 위한 판타지가 아닌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판타지는 알리바이가 아니다. 판타지가 현실 세계에서 이룰 수 없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든 비현실적인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판타지에서 디테일은 오히려 사실적인 작품에서보다 더 중요하다. 그래야 관객들이 믿을 수 있고, 그래야 그들의 욕망이 제대로 대리만족을 누릴 수 있으며, 그래야 그들의 욕망이 분석되고 이해되며 그 과정을 통해 또다른 의미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진짜 전문가들은 자기가 쓰는 판타지를 심각하게 다룬다. 톨킨은 자신이 만든 중간계의 언어를 진짜로 만들었다. 스위프트는 릴리풋과 관련된 모든 숫자를 챙긴다. 비정상적인 상황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라고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정확한 심리묘사, 올바른 동기, 구체적인 배경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래야 판타지가 진짜 무게를 얻는다.
위에 언급한 <오직 그대만>의 애완견 설정이 이상한 것도 이미지의 표피만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물론 시각장애인을 연기하는 한효주가 충실한 골든 레트리버와 함께 있는 풍경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풍경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화장실 훈련과 복종 훈련을 시키고 먹을 것을 사주고 산책을 시켜주는 주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빠지니까 이야기는 당연히 공허해진다.
그래도 장근석의 애교가 남지 않느냐고? 그것으로 만족했다면 여러분은 장근석의 팬일 것이고, 장근석이 굳이 이 영화에 출연하는 대신 같은 시간 동안 아무 애교나 즉흥적으로 떨었어도 마찬가지로 만족했을 것이다. <너는 펫>은 오로지 스타 파워가 입증된 배우 하나만을 믿는다. 그 배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끌어올 수 있다면 그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두 손 놓고 배우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다면 그건 책임 회피이다. 도대체 영화가 그들을 위해 출연해준 배우에게 무슨 소스를 주었는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너는 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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