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판 휴먼다큐, ‘남자의 자격’의 진심
2011-03-07 정덕현
- '남자의 자격', 그 독특한 예능의 세계
[정덕현의 스틸컷] '남자의 자격' 암 특집에서 이경규는 위암 강의를 하는 배재문 외과전문의에게 불쑥 "어디선가 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자 배재문 전문의는 "사실 제의를 받았을 때 거절했다. 왜냐하면 예능 프로그램에서 암을 다룬다는 게 너무 진지하고 재미가 없다, 그런 얘기를 이경규씨가 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즉 10년 전 '일밤'의 한 코너였던 '건강보감'에서 암 시리즈를 하려고 했던 걸, 이경규가 반대했다는 얘기다.
이건 10년 전의 얘기다. 이경규가 반대했던 건 당시의 예능에 대한 인식이 웃음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남자의 자격'의 암 특집에서 이경규는 그 때의 일을 사과하면서 "10년 전하고 지금 세상이 바뀌었잖아요"하고 말했고, 멤버들은 "다른 분입니다"라며 이경규 또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 작은 에피소드는 작금의 예능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예능은 웃기기만 하면 된다? 이젠 옛날 얘기다. 이제 예능은 즐거움을 줘야 한다. 즐거움은 웃음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눈물도 있고 감동도 있으며, 표피적인 쾌감에서부터 지적인 공감까지 다양한 재미들이 들어가 있다. 이 '웃음'에 대한 집착에서 '즐거움'으로 확장되는 과정이 현 예능이 걸어가고 있는 길이라는 점에서, '남자의 자격'은 그 선구적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암 특집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김태원은 아마도 이렇게 달라진 예능이 낳은 스타라고 할 수 있다. 신원호 PD의 말처럼 멤버 중 한 사람의 암 수술을 예능에서 다루는 "'남자의 자격'만큼 리얼한" 프로도 없다. 과거의 예능이라면 숨기고 피했어야 할 부분이지만, 즐거움의 영역으로 넓혀지고 있는 작금의 예능은 그 감동적인 일련의 과정들을 일일이 영상에 담아낸다.
김태원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려내는 '부활의 스토리'는 중년이라는 나이가 갖는 쓸쓸함과 그것을 같이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북돋워주는 형 동생 동료들과 가족들의 따뜻함, 그리고 그 힘겨움을 딛고 일어나 다시 활기찬 제2의 삶으로 들어가는 행복감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나이 오십 줄에 수술을 하러 들어간 동생이 손에 쥐어준 담배갑에 눈물을 펑펑 흘리는 이경규의 모습은 이제 달라진 예능의 한 상징처럼 여겨진다. 울고 있어도 웃어야 하는 코미디언의 얼굴은 이제 리얼리티 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이처럼 달라지고 있다. 슬플 땐 우는 얼굴의 코미디언이 이제는 더 인간적이고 솔직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오는 시대다.
박장대소의 웃음으로만 얘기한다면 '암 특집'은 웃음보다는 눈물이 더 많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즐거움의 차원에서 얘기한다면 '암 특집'이 전해준 따뜻함은 어쩌면 보는 이들의 입가에 미소를 띄게 했을 지도 모른다. 이처럼 달라진 예능이 추구하는 것은 다양한 차원의 의미를 담고 있는 웃음일 것이다.
그 감정들이 진심에 닿아있고, 그것을 그대로 가감 없이 전달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것은 그 인물들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경규는 확실히 과거와 달리 편안해졌고, 김태원은 처음 시작할 때의 그 힘겨움을 차츰차츰 이겨내며 부활하고 있다. 이제 어디 가서 '약골' 얘기도 못 꺼내겠다는 이윤석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남자다움을 조금씩 선보이고 있고, 김국진은 그동안 금기시했던 것들을 하나 둘 해내며 그 새로운 체험에 즐거워하고 있다. 이정진은 그 외모에 숨겨진 털털함을 드러내고 있고 윤형빈은 왕비호의 껍질을 깨고 호감어린 동생으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남자의 자격'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주목되는 것은 이처럼 다양한 즐거움의 차원들을 가감없이 드러낸다는 점이고, 그 과정에서 멤버들의 몰랐던 감성들과 진심들이 드러나면서 그들의 변화 또한 그대로 카메라에 포착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야생을 향해 달려가는 '1박2일'의 다큐식 리얼 카메라와는 또 다른 접근이다. '남자의 자격'은 그 다큐에 '휴먼'의 느낌을 담는다.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휴먼다큐를 보는 듯한 기분에 빠져드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 = 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