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하는 사이’ 과연 유재석이 일만 할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최근 가장 흥미 있게 지켜보고 있는 예능인을 꼽으라면 단연 유재석이다. 근 20년째 ‘국민 MC’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느님’이지만, 최근 행보가 매우 흥미롭다. 한때 케이블예능과 종편이 광풍에 가까운 새바람을 몰고 왔을 때도 마지막까지 지상파를 지키는 정중동의 행보를 보였던 것과 달리 최근 유재석은 다양한 채널에서 여러 프로그램과 여러 가지 콘셉트로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첫 방송을 한 tvN의 <일로 만난 사이>는 <무한도전> 이후 유재석이 런칭한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인 4.9%로 시작했다. 2회에서 0.4% 빠지긴 했지만 케이블예능에서 4%대라는 나름 의미 있는 등급에 진입했단 점에서 주목도가 남다르다.

이 프로그램은 열심히 노력해서 웃음을 만들자는 기존 유재석의 예능 패턴과 전혀 다르다. 우선 콩트에 기반한 캐릭터 플레이가 없다. 유재석이 웃음을 지휘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단체 출연진은 물론 박명수, 조세호처럼 필살의 부분 전술을 펼칠 콤비도 없다. 그렇게 좋아하는 게임이나 판을 펼치는 토크도 없다. MBC <무한도전-극한 알바> 편과 설정은 비슷하나 웃음을 위한 몸개그도 없다. 유재석이 1회 이효리, 이상순 부부, 2회 차승원, 3회 유희열, 정재형 등 자신의 절친 노트를 꺼내서 모셔온 게스트와 일종의 <체험 삶의 현장>을 찍는 게 이 프로그램의 전부다.



대신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유재석이다. 기존에 고수하던 진행자 역할과 바른 리더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벗어던진다. 일단 갖춰 입는 옷부터 편하게 입고, 국산 세단이나 경차가 아니라 심지어 외산 픽업트럭을 몰고 나타난다. 열심히 일을 하긴 하지만 쉬이 불만을 갖고, 비교하고 트집을 잡는다. 사장님과 게스트 모두와 티격태격하면서 개구진 역할, 못난이 캐릭터를 맡는다.

진행방식도 일반인과의 인터뷰에서 감동과 웃음을 취하는 <유퀴즈>와 달리 사장님을 제외하면 일터에서 만난 인연들과는 대화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다. 기존의 유재석이라면 빙떡과 옥돔의 조합을 알려주는 녹차밭 사장님이나 자부심 강한 무안의 고구마밭 사장님에게서 삶이 깃든 감동과 순수한 캐릭터에서 비롯된 웃음을 이끌어내려고 토크 한 상을 차렸을 텐데 말이다. 특히 같은 날 마지막편이 방송된 KBS1 <인간극장-시인과 주방장>의 주인공이 공교롭게도 음식 배달부로 등장했지만 별다른 토크가 없어서 인상적이었다. 촬영과 방송 사이 시차가 있음을 아무리 감안해도 의아할 정도다.

그보다는 이 프로그램과 유재석은 연예계 동료와 힘든 일을 하는 와중에 나누는 한 조각 삶의 단상에 집중을 한다. 차승원과 나눈 나이 듦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그런 예다. 좋은 사람이 화두인 오늘날 예능에서 완벽함 그 자체인 유재석이 일에 지쳐 흐트러진 모습, 인간적인 면모를 포착하는 게 목표인 듯하다. 따라서 <일로 만난 사이>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외에 유재석이 노력할 수 있는 상황 자체를 설정 상 제약을 통해 제거한, 손발을 묶는 실험인 셈이다. <체험 삶의 현장>은 연예인이 다양한 육체노동을 체험하며 보람과 경외를 시청자들에게 전하지만 여기선 유재석이 이런 환경에 놓이면 어떻게 될지가 더 궁금한 모양이다.



참고로 <일로 만난 사이>를 기획한 정효민 PD의 전작이 JTBC의 대박 예능 <효리네 민박>이다. 유재석과 가장 거리가 먼 예능 스타일인 힐링, 슬로라이프 콘텐츠로 성공을 맛본 제작진으로, 유재석 입장에선 <무한도전> 이후 처음으로 최신 트렌드에 보폭을 맞추는 경험이다. 그래서 아직은 유재석의 예능과 슬로우라이프 콘텐츠 사이의 어색함이 감돈다.

1회에서는 토크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다 이효리에게 구박을 받고, 2회에서는 <런닝맨> 등에서 보여준 샌드백 역할을 자처하면서 사장님의 캐릭터를 ‘잔소리’, ‘엄한 사장님’ 등으로 몰아가고, 틈만 나면 차승원과 티격태격하는 티키타카를 선보이며 방송분량을 계속 채우려고 노력한다. 형태는 여백이 강조되는 잔잔한 슬로라이프 콘텐츠인데, 속은 꽉 찬 리얼버라이어티다.

심지어 이 분야의 원조인 나영석 사단 예능이었으면 절대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감정을 인터뷰하듯 대화로 주고받는다. 그 과정에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떠한 정서를 공유하는 게 이 동네의 핵심인데, 도정된 백미처럼 정서적 재미가 깎여나간다. 그래서 2회에서 뮤지컬 씬, 합창 등을 끼워 넣은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단 한 번의 시도로 끝나길 기원한다. 그냥 말이 풀 뜯어 먹는 거에 이어 해풍 맞는 고구마 밭을 5분 정도 보여주는 게 더 나을 뻔 했다.



유재석의 행보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를 둘러싼 평가가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에서 발표하는 9월자 예능 방송인 브랜드평판에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여전한 대중적 지지와 사랑을 누리고 있지만 유재석이 거두는 성적은 어느 시점부터 이런 평판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시청률과 화제성 같은 지표뿐 아니라 유재석 프로그램만의 특이현상이라 할 수 있는 팬과 안티(혹은 비평적 시청자)간의 재미 여부 논쟁은 흔들림의 그 대표 증후다.

그래서 예능 자체를 실험하는 <놀면 뭐하니?>부터 요즘 옷을 입어본다고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사이>까지 새로운 시도를 활발히 하는 유재석의 행보가 흥미롭다. 매우 긍정적인 스타트를 보인 이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은 요즘 예능과 얼마나 어울리는 사이가 될까? 그의 변화에 대한 갈망은 어떤 기회로 이어질 수 있을까? <놀면 뭐하니?>와 함께 유재석의 도전을 지켜볼 또 하나의 포인트가 생겼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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