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의 순간’, 옹성우·김향기의 로맨스가 이렇게 완벽하다니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JTBC 월화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은 그 시절의 모든 로맨스 감정을 다룬다. 물론 이 드라마 속 로맨스의 중심은 강제전학 온 최준우(옹성우)와 유수빈(김향기)에게 있다. 하지만 천봉고의 학생들의 커플 이야기가 넘쳐나고, 천봉고의 담임 오한결(강기영)에게도 로맨스의 서사는 주어진다. 뿐만 아니라 각각 아들과 딸을 키우는 준우 엄마 이연우(심이영)와 윤송희(김선영) 사이에도 잠시나마 따뜻한 위로의 공기가 흐르기도 한다.

<열여덟의 순간>은 이처럼 열여덟의 청소년들 그리고 그 주변 어른들이 지닌 로맨스의 공기를 은은하게 그려낸다. 그러면서도 성적이나 부에 따른 계급의식 등 학교에 스며든 각박한 현실까지 담아낸다.

이처럼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열여덟의 순간>은 오히려 최준우와 유수빈의 로맨스는 뒤로 밀려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배우 옹성우와 김향기가 보여주는 풋풋한 첫사랑 호연 덕에 <열여덟의 순간>은 이들의 비중이 적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김향기는 그간 많은 드라마에서 전형적인 아역 연기 아닌 생활 아역 연기를 보여준 인상적인 배우였다. 김향기는 어른스러운 혹은 부모 때문에 어른스러운 척 할 수밖에 없는 유수연의 감정들을 그 또래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말투와 표정에 담아낸다. 특히 유수빈의 아버지가 이혼을 원하며 “너는 어른스럽지 않냐”는 말에 “어른스러운 척”을 한 거라며 우는 연기는 <열여덟의 순간> 가장 가슴 아픈 장면 중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김향기는 평범한 여고생이 처음 누군가를 좋아하고, 흔들리는 감정 때문에 ‘멘붕’과 천상계의 감정을 오가다가, 결국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순간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그 때문에 <열여덟의 순간>은 그리 대단치 않은 로맨스 장면에도 불구하고 보는 김향기가 보여준 생생한 연기 덕에 첫사랑의 설레고 가슴 졸이는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었다.



한편 옹성우는 <열여덟의 순간>에서 워너원 아이돌 출신에게 기대하는 연기 이상의 호연을 보여줬다. 옹성우의 최준우는 화려한 무대의 아이돌을 떠오르게 만드는 요소가 하나도 없다. 최준우는 그냥 초라해 보여 안쓰럽지만 잘생긴 남고생인 것이다. 편의점 카운터에 서 있는 자코메티의 조각상 같은 서정적인 슬픔이 있다.

특히 옹성우가 보여준 힘 뺀 연기와 그 안에서도 감정의 슬픔을 드러내는 분위기는 <열여덟의 순간>이 그려내는 감정의 정서와도 통한다.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눈빛에만 분노와 슬픔을 담고 마휘영에게 달려가는 장면을 슬로우모션으로 처리한 장면. 또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줄도 모르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 옷을 꺼내 바라보며 “그래도 사랑했겠지. 그때는 그 순간에는”이라고 나직하게 속삭이는 장면들은 <열여덟의 순간>이 지닌 슬프지만 담백한 감정이 담긴 명장면들이었다.



더구나 로맨스의 주인공으로도 옹성우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열여덟의 순간>의 주인공 최준우는 가냘픈 허리선이 다 드러날 정도로 깡마른 몸매로 모성애를 자극한다. 하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볼 때 해맑은 표정이나, 수줍음과 당당함을 미묘하게 오가는 사랑 고백 장면 등에서는 이 배우가 로맨스의 남자주인공을 좀 아는구나, 싶은 심정이 든다.

다만 <열여덟의 순간>에서 아쉬운 것은 마휘영(신승호) 캐릭터다. 제작진은 2학년 3반의 실질적인 리더인 반장 마휘영을 단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자본주의판 엄석대로 설정한 것만은 아니었다.



제작진은 마휘영에게도 변명의 기회를 준다. 마휘영의 부모는 그를 압박하고, 아버지는 폭력적이며 어머니는 알코올중독 증세를 보인다. 겉보기에는 부와 권력을 모두 쥔 집안이지만, 그 집안에서 마휘영은 행복하지 않다. 동시에 그런 집안에서 자란 마휘영 역시 남들이 자기를 조금이라도 만만하게 보는 것을 참지 못한다.

다만 <열여덟의 순간>에서 시청자가 마휘영을 동정할 만한 여지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 중반에 이를 때까지 마휘영은 최준우와 유수빈의 로맨스를 방해하고, 포악하게 천봉고를 휘어잡는 권력자처럼 묘사되었을 뿐이다.

물론 여기에는 마휘영을 연기한 웹드 <에이틴>의 스타 신승호에게도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신승호는 마휘영의 권위적이고 저돌적인 캐릭터에 몰입하느라, 이 인물이 지닌 연민 포인트를 많이 놓치고 있다. 마휘영이 팔을 긁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가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마음 속 두려움이나 외로움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휘영은 모기에 물린 10대 건달 남학생처럼 열심히 팔을 긁는다. 겉으로 드러난 마휘영의 단단한 모습을 연기하느라 이 배우는 마휘영이 지닌 내면의 중요한 감정 포인트를 놓쳐 아쉽다. 만일 그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면 마휘영이 유수빈을 짝사랑하는 감정을 드러낸 장면들이 한결 더 애틋한 잔상을 남겼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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