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을 소리 없이 빛낸 베스트 송 11

[엔터미디어=나도원의 오늘 이 노래] 벌써 잊은 모양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가요계의 병폐로 지적받았던 리메이크의 범람이 재현되고 있다. ‘새로고침’을 했더니 예전의 고장 난 화면이 다시 떠버린 격이다.

◆ 리메이크, 그렇게 할 거면 하지 맙시다

‘명곡의 재발견’이니 ‘장인의 발굴’이니 ‘스타의 탄생’이니 하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몇 년 전에 있었던 일로 ‘뿔테남’이 등장한 것만큼이나 허탈하다. 물론 이런 현상을 불러온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발호에는 역기능뿐만 아니라 순기능도 있다. 그러나 아이돌의 과잉과 마찬가지로 리메이크의 범람 역시 ‘달이 차면 기운다’란 격언을 실천해가고 있다.

다들 이런 이슈에 편승하느라 여념이 없다보니 들을 음악이 없는 마당에 그나마 음악의 감동을 되살린 것 아니냐고도 한다. 미안하지만 요즘은 들을 음악이 없어서가 아니라 요즘은 듣는 음악이 없어서일 것이다. 2011년만 돌아보아도 성과는 풍성하다. 여기 2010년 12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발표된 음악들 중에서 고른 11곡은 거대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특이한 취향을 가진 소수만이 아니라 여러 음악웹진들에서 몇몇은 언급되었으며, 한국대중음악상처럼 음악성을 중시하는 시상식에서도 언급될 가능성이 높은 곡들이다.

첫 번째. 들국화의 구성원이었던 조덕환이 참으로 오랜만에 돌아와 [Long Way Home]을 발표했다. 서던 록을 근본 삼아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와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 데릭 앤 더 도미노스(Derek & the Dominos)까지 언급할 수 있는 고전 록을 되살렸다. 블루스 록 기타의 진수도 들려주는 이 앨범에는 최성원과 주찬권까지 가세하여 의미를 더했다. ‘수만리 먼 길’과 함께 가장 훌륭한 순간은 무려 9분 30초의 시간 동안 이어지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영원의 시간 속으로’이다. 해먼드 오르간이 함께 하는 이 곡이 들국화의 건반연주자였던 허성욱(1962-1997)을 추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더 가슴이 떨릴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여러 인디밴드들이 참여한 [2011 들국화 리메이크]가 발표되었는데, 슬쩍 미뤄져 있던 원곡의 매력을 극대화하여 더 슬프고 더 장엄하게 그려낸 곡이 있다. 바로 그 한음파의 ‘머리에 꽃을’이 두 번째다. 이런 것이 진정한 리메이크다.

예전 곡을 카피하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키는 복고가 음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 대표선수였던 장기하와 얼굴들의 두 번째 정규앨범 [장기하와 얼굴들]은 엄청나게 훌륭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근사한 곡들을 여럿 담아두었다. 눈 내리는 날의 애상과 팝 센스가 그득한 ‘마냥 걷는다’를 듣다보면 이들이 그냥 재미난 밴드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중견 뮤지션으로 자리를 잡고 시계를 뒤로 돌려 원류로 올라간 이승열의 [Why We Fail]은 ‘이승열 특유의’ 앨범으로 수록곡인 ‘돌아오지 않아’는 그 특징들 중 몇 가지를 집약해놓았다. 먼저 기존의 이승열식 타이틀곡들이 지니고 있던 아련함으로 ‘특유의’ 감성이 여전하다. 그리고 시간의 자연스러운 섞임이다. 이른바 모던한 사운드와 그 이전의 것을 이어받은 연주가 하나가 되어 ‘특유의’ 소리를 낸다. 특히 예스러운 허밍 멜로디와 ‘특유의’ 한 번 더 짚고 넘어가는 브릿지 파트가 시간성을 부여한다. 이렇게 그는 노랫말만이 아니라 음악 자체로도 시간의 비탈을 노래한다.



◆ ‘빗소리’ 들어보셨습니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빗소리를 잘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자동차 소리, TV소리, 컴퓨터 하드에서 나는 소리와 같은 온갖 소음의 방해를 받지 않고 빗소리를 들어본 지는 얼마나 되었을까. 허클베리 핀의 [까만 타이거]에도 ‘빗소리’가 있다. 물에 잠겨가는 멤버들이 그려진 앨범커버는 위기감의 표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숨 쉬러 나가다’처럼 참신하고 깊은 곡들로 채워진 이 앨범은 음악경험과 페스티벌의 체험이 증가하며 현장형 밴드로 변화한 허클베리 핀의 로큰롤 센스와 송라이팅 그리고 (루네의 건반을 비롯하여) 세션이 정점에 이른 장면들의 연속이다. [Huckleberry Finn Live]에 실렸던 ‘빗소리’의 스튜디오 버전은 2011년의 온갖 소음을 무력화시켰다. 다섯 번째 노래의 자격이 충분하다.

다른 한편, 2000년대 중반부터 과거의 한국음악에 단순히 존경을 표하고 참조하는 수준이 아니라 진심어린 호감을 음악에 반영하는 단계가 도래했다. 그만큼 퇴적이 이루어졌고 오늘의 것이 되었다. 강건너 비행소녀의 미니앨범인 [강건너 비행소녀]는 고유명사로서의 그룹사운드와 1980년대 초반의 서정가요가 남겨놓은 감성의 혜택을 숨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3분 넘게 이어지는 고전적인 톤의 기타 명연(鳴演)이 이어지는 ‘무중력’은 회상과 차용의 복고를 넘어 과거를 동시대의 일부로 승화시켰다.

이와 연동하여 인디음악을 중심으로 두드러지는 특징이 사이키델릭의 부흥인데, [Ultimate Psychedelic]을 발표한 텔레플라이와 일군의 사이키델릭 밴드들의 변별점은 동시대의 서정과 몸의 율동이다. ‘너를 찾기 위해’처럼 뛰어난 장면들 아래로 김상혁(코스모스)과 함께 채집한 사운드가 아련하다.

다음은 여덟 번째 노래. 2010년 12월부터 1년은 풍성한 해가 되리라 장담하게 만든 주인공들이 있다. 하나가 조덕환이고, 다른 하나가 [Mana Wind]의 황보령=스맥소프트였다. 자기 세계가 분명한 아티스트와 색깔 있는 밴드의 범-장르적 작품으로 간혹 쏟아져 나오는 북부 유럽의 무드와 라인이 무엇보다 강한 인상을 남긴다. 메탈 프레이즈와 앰비언트·뉴에이지·일렉트로닉이 혼종을 이루기도 하고 융화되기도 한다. 1년 동안 들어왔음에도 ‘Wind’처럼 주문 같은 곡들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이들은 한국 안에 있지만 그 음악은 이미 한국 밖에 있다.

전위성에 감동의 서사를 더한 밴드들로 아폴로18과 앵클어택도 있다. 역시 외국에서도 통하는 아폴로18의 [The Black Album]의 연주는 세밀해졌고 무드는 기대에 값하는 인상을 남긴다. ‘선사시대’를 거치며 스타일을 확립한 아폴로18의 현재에서 안정성과 효율성 그리고 일관성이다. 여기에 ‘Warm’을 잇는 ‘Deadend’가 실려 있다. 아울러 밤섬해적단과 함께 [The Split]을 낸 앵클어택의 ‘Tuna’도 부디 더 들려졌으면 싶은, 숨은 명곡이다.

한 곡이 남았다. 그만한 가치가 있고, 그만의 기준이 있는 음악이 있다. 도둑처럼 올 줄 알았던 시대를 도둑에게 빼앗겨버린 시대이기에 더 소중해진 음악이 있다. 백자의 ‘어김없이’는 나이든 이라면, 혹은 그런 감성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이라면 좋아할 수 있을 정도로 고즈넉하다.

그런데 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다. 창단 20주년을 맞은 꽃다지가 무려 10년 만에 발표한 정규앨범인 [노래의 꿈]은 과거의 꽃다지와 현재의 꽃다지, ‘민중’음악과 민중‘음악’이라는 몇 겹의 딜레마 속에서 민중가요의 사회·음악적 현재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문을 여는 ‘당부’는 시간과 육체의 경험을 공유한 이들일수록 울림이 크고, 유트(U2) 풍의 대곡인 ‘길 위에서’는 더 폭넓게 호소하는 힘을 지녔다. 이 중에서 처연한 장엄을 불러일으키다가 일렉트릭 기타의 연주까지 이어지고, “산 자와 죽은 자 그 경계를 넘어 걸어갈 수 있을까”라는 읊조림을 지나며 제 스스로 명곡(明曲)의 자격을 얻어낸 ‘길 위에서’를 선택한다.



◆ 아이돌은 어디에?

이쯤 되면 의아할 수 있다. 왜 아이돌이 없냐고. 아이돌만 출연하는 연말시상식을 보며 왜 재즈는 없는가, 왜 펑크는 없는가라고 의문을 표하지 않다가 그 반대의 경우엔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친절한 답은 필요하다. 음악애호가는 한 곡씩만 ‘받아’ 듣고 마는 사람이 아니라 앨범 단위로 감상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래야 그 곡이 어떤 맥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음악인이 어떤 태도로 음악에 임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목표가 다른 대부분의 아이돌은 그런 식으로 앨범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도 좋은 케이스는 없진 않다. 2NE1은 꽤 멋진 포스를 풍기는 그룹이고, f(x)는 곧잘 멋진 곡을 부르는 가수들이다.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와 f(x)의 ‘피노키오’가 단일 곡의 매력 이상으로 폭넓게 인정받는 이유도 이러한 신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티아라의 ‘Roly-Poly’는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Yayaya’와 ‘왜 이러니’처럼 서사의 과감한 해체(무시)라는 아방가르드 실험을 감행해왔지만(물론 농담이다), 타이틀곡을 빼면 대부분 ‘참극’ 수준인데다 앞으로도 개선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Gee]와 [Hoot]에서 수록곡들이 고른 수준에 이르렀다가 다시 격차가 커져버린 [The Boys]의 소녀시대에겐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음악적으로도 지지받아온 걸그룹인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Six Sense]를 너무 잘 만들려해선지 거대함과 압도와 과잉에 머문 것도 아쉽다. 반면 [Wonder World]처럼 수준급의 앨범을 발표했음에도 해외진출 내지 고생담으로 다뤄지는 원더걸스에겐 다른 의미의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열한 곡으로는 부족하다. 인디밴드 출신 음악가들의 솔로앨범들 중 독보적인 정차식의 [황망한 사내]를 비롯하여 좋은 작품들이 쏟아졌으니 말이다. 행여 이런 음악들이 생소하다고 자학할 필요는 없다. 대중음악은 2000년대에 들어 장르 다변화와 세대화 그리고 다채널화에 접어들었다. 범세계적 스타의 부재가 당연해지고 장르·세대별로 구획되면서 군소 스타를 중심으로 한 시장과 트렌드, 이슈가 정착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겹침의 순간들이 더 많아진 면도 있다. 얄개들의 [그래, 아무것도 하지말자]는 일상의 사건과 일상의 언어가 폭넓은 스타일 운용과 만나 일상의 음악을 이루는 앨범으로, 여기에 실린 ‘우리 같이’와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의 ‘Eye In The Sky’를 이어 듣는 재미를 얻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도 세상엔 새롭게 태어나는 음악들 때문에 바구니가 부족하다. 다만, ‘공항패션’인지 ‘공황패션’인지에나 신경 쓰는 미디어 덕분에 귀를 기울이는 수고가 뒤따를 뿐이다. 그런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손가락 두 개만 살짝 움직여도 되는 일이다.


칼럼니스트 나도원 < 대중음악평론가 > nadow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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