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워 바디’, 다른 여자의 몸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여자의 이야기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취준생을 주인공으로 한 생활체육권장 영화가 두 편 나왔다. 하나는 얼마 전에 히트해 900만 관객을 넘겼고 지금도 꾸준히 상영 중인 이상근 감독의 <엑시트>이고 다른 하나는 작년에 토론토와 부산에서 상영되었고 지금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한가람 감독의 <아워 바디>이다. 두 영화 모두 보고 나오면 인공 암벽을 오르고 달리기를 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그 충동이 실제 운동으로 연결되는가는 전혀 다른 이야기겠지만.

둘 중 <엑시트>는 솔직한 영화이다. 결혼식이 열리던 신도시가 화학 테러의 공격을 받는다. 도시는 가스로 가득 찼고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말이 쉽지, 이건 기초 체력과 몸을 쓰는 기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영화이기 때문에 주인공들의 앞을 가로막는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난다. 얼마나 힘들면 이 영화를 본 ‘암벽 여제’ 김자인 선수가 “저라면 못할 것 같아요. 그냥 연기 마시고 죽을래요.”라고 했을까.하지만 최근 들어 생존에 생활체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설교로 <엑시트>만큼 좋은 건 보지 못한 것 같다.

 

 

 

 

 

<아워 바디>는 좀 까다롭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아주 흥미진진한 영화인데, 이게 생활체육하면 떠오르는 건전한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는다. 홍보팀이 좀 애를 먹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와 별도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 영화의 스토리와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거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시사회 이후 나오는 말들에 ‘힐링’, ‘위로’ 같은 단어들이 섞여 있는 것을 보면.

맨 위에서 한 말은 맞다. <아워 바디>는 달리기에 대한 욕구에 불을 붙인다. 책상 앞에 붙어 8년째 행시 준비를 하던 자영(최희서)은 갑자기 시험을 포기하고 달리기를 시작한다. 건강을 되찾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에너지와 체력을 얻는다. 건전하다. 그렇지 않은가? 정말 이 방향으로 갔어도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여자들의 몸을 건강이라는 테마 속에서 진지하게 다루는 영화는 별로 없어서 이런 건전함은 오히려 재미있다.

하지만 몸의 건강이 해결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유베날리스의 시는 기대일 뿐, 진짜로 건강한 육체에 자동적으로 건강한 정신이 달라붙는다는 말은 아니다. 자영은 건강한 몸을 얻고 체력을 길렀지만 정신적으로도 건강하지는 않다. 뒤틀려 있고 집착이 심하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조금 위험한 사람이다. 현실의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인공이 건강한 몸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가?

 

 

 

 

 

현주(안지혜)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이 이야기는 건전함에서 조금 더 멀어진다. 자영은 밤에 달리기를 하는 현주를 보고 운동을 결심한다. 현주를 따라다니고 친구가 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정말로 큰 부분이 현주의 몸을 바라보는 자영과 카메라의 시선으로 이어져 있다.

한가람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이런 식으로 여자들의 몸을 보는 과정의 익숙한 성적대상화를 최대한 제거하려고 노력했다고 하고 그건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대상화되지 않은 여자의 몸’ 운운 하는 반응엔 당황하게 된다. 현주의 몸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상화되어 있다. 이성애자 남성의 익숙한 시선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보이고 있을 뿐이다. 자영이 현주에게 갖고 있는 감정의 거의 전부는 현주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에 대한 사랑이다. <아워 바디>는 다른 여자의 몸을 정말로 집요하게 관찰하고 사랑하고 그 경험을 체화하려는 여자의 이야기이고 그런 면에서 <엑시트>보다는 (아직 못 보았지만)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아마 시아마의 영화가 더 건전할 것이다.

 

 

 

 

 

기자간담회에서 한가람 감독은 이 영화가 여성영화는 아니라고 말했다. <밤의 문이 열리다> 때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 영화가 여성주의적인 면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여성 캐릭터들이 보편적인 경험을 쟁취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더 많은 영화들이 여자들의 다양한 경험을 들려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 경험이 꼭 건전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다양한 경험 속에서 영화는 또다른 이야기를 찾을 것이다. <아워 바디>에서 자영이 겪는 경험은 귀에서 버나드 허먼의 음악이 자동재생될 정도로 히치콕으로 변태스럽지만, 자영의 경험은 히치콕 남자 주인공의 경험과 전혀 다른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아워 바디><엑시트>스틸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