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 세계의 성배(聖杯)를 찾아서 ②끝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한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경지에 오른다. 정상에서 사위를 둘러보니 가까운 다른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 봉우리를 오르는 길이 보인다. 위에서 조망하기 전에는 찾기 어려운 길이다. 그는 다른 봉우리도 정복한다.

컴퓨터공학자 도널드 크누스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컴퓨터공학에서 업적을 쌓으면서 인쇄용 폰트를 수학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개척했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문병로(50)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크누스의 얘기를 들려주며 ‘패턴’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크누스는 어떤 분야에서 패턴을 파악한 뒤 그 패턴을 다른 영역에서 응용했다”고 말했다.

문 교수 역시 다른 봉우리를 오르는 중이다. 컴퓨터공학을 주식투자에 적용했다. 투자자문회사 옵투스투자자문을 설립했다. 지금까지 실적은 뛰어나다. 2009년 2월 이후 2011년 10월까지 33개월 간 11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코스피 수익률 61%를 53%포인트 앞지른 실적이다.

옵투스투자자문은 문 교수가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트레이딩한다. 문 교수는 “주식시장에 사람은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패턴을 컴퓨터로는 추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지난 10여 년 간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증시의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를테면 강력한 ‘최적화 엔진’을 개발하고 이 엔진이 증시 데이터를 훑어 주가 등락과 관련한 패턴을 뽑아내도록 한 것이다. 그는 이로부터 확률적으로 가장 유리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운용하는 전략을 찾아냈다.

문 교수가 개발한 ‘포트폴리오 최적화 모델’은 수백 가지 요인을 반영한다. 그는 “지난 10여 년 기간의 거래소·코스닥 기업 재무제표, 경제지표, 증시 자료가 입력된 이 모델을 돌리면 약 40개의 최적 포트폴리오가 나온다”고 말했다. 포트폴리오는 수익성과 안전성 측면에서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구성 종목의 편입 비중이 미세 조정된다. 투자 자금은 1년에 400~500% 회전된다.

문 대표는 한 경제신문에 증시를 분석한 글을 연재한다. 시장에서 의심 없이 믿는 여러 현상을 증시의 실제 데이터로 검증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 상승 신호로 여겨지는 골든 크로스는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상한가는 확률적 우위가 있는 상황에서는 살 수 없고, 매수가 쉬울 때엔 ‘빛 좋은 개살구’이기 십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는 “신문에 연재하는 내용은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며 포트폴리오 최적화 모델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옵투스투자자문은 조만간 300억 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선보일 계획이다. 한국 시장에서 기반을 닦은 뒤에는 해외에 진출한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문 대표는 “시장의 특성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데이터만 있으면 한국에서 성공한 전략을 그쪽 환경에 맞춰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깥으로 나가 거기서 ‘외국인’이 되어 보려고 합니다.”

문 대표는 주식 투자는 확률 게임이고, 정보이론가에게 유리한 게임이라고 본다. 그가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시장평균을 계속 앞지를 확률은 얼마나 될까?


칼럼니스트 백우진 중앙일보시사미디어 전문기자,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cobalt@joongang.co.kr


[사진=옵투스투자자문]
[자료]
포브스코리아, 컴퓨터에 투자 맡겼더니 33개월 수익률 114%, 2011년 12월호
스캇 패터슨, 퀀트: 세계 금융시장을 장악한 수학 천재들 이야기, 2011,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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