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레인’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행복한가?”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KBS 월화극 ‘브레인’은 인간 마음의 근원을 따지는 드라마다. 그럼으로써 치유를 모색하는 드라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이 과정이 컬트적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어떤 장면은 지루하고 산만하기도 했지만 일관성을 가지고 ‘깔딱고개’를 넘은 것은 평가할만하다. 이 점은 기존의 관습적 의학드라마와 확실한 차별성을 이루게 했다.

이강훈(신하균)은 왜 그토록 성공과 출세에 집착하고, 왜 김상철 교수(정진영)를 이기려고 했을까? 줄곧 인술을 펼치며 평화롭던 김상철 교수는 왜 광기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다가 세상을 통달하고 관조한듯한 인물이 됐을까?
 
이 모든 것이 ‘뇌’안에 있었다. 작가는 김상철을 통해 ‘뇌=마음’이라고 작품관을 집어넣었다. 강훈은 어릴 때 알콜중독자 아버지가 뇌졸중을 일으키자 병원으로 업고 달리면서도 빨리 달리고 싶지 않았음을 마지막회에서야 고백한다. 이게 내내 트라마우로 작용했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은 윤지혜(최정원)에게 했다. 지혜는 강훈에게 “선생님 진짜 원수는 선생님이 아니냐. 선생님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 따뜻해질 수 없다”고 말했다.
 
‘브레인’에는 한 번도 달달한 멜로 장면이 없다. 사랑은 상처받은 ‘뇌(마음)’의 치유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풍선껌 키스 한 장면 정도가 멜로 그림이었는데 이 마저도 그리 달달하지 않았다. 지혜의 사랑에 빠진 사실을 판정하는 것도 뇌사진에 의해서다. 강훈은 지혜를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김상철은 20년 전 의료사고를 일으킨 환자가 강훈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의료사고가 아닌 것처럼 해달라고 했던 자신을 들여다본다. 김상철은 욕망과 성공을 향해 달리던 강훈에게서 20년전 자신의 모습과 기막히게 닮았음을 읽게 된다. 상철과 강훈은 기묘한 인연이다.

강훈은 “내가 늦게 달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자책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달렸다. 나는 비겁했다. 김상철 교수님에게 모든 걸 뒤집어 씌우려했다”고 후회의 눈물을 흘렸고, 대한민국의학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연구의 힌트를 준 김상철 교수에게 “사랑합니다” 하고 외쳤다.
 
여기서 끝났다면 ‘브레인’ 답지 않은 결말이었을 것이다. 드라마는 ‘뇌’와 동의어인 인간의 마음(욕망) 부분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강훈이 집도했던 김상철 교수 뇌수술은 성공적인 줄 알았지만 시력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김상철은 안보인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그는 강훈에게 “이강훈의 자만을 채워주면 되지않나. 그런데 내 눈이 안보인다고 말해 산통을 깰 수는 없잖아. 앞으로도 거만하고 당당하게 살아, 너 욕망을 향해 계속 달려가라. 나는 시신경과 종양의 유착이 심해 어차피 안보이게 돼있어”라며 “그래도 잘했어. 흘러가 버리지 않았으니까”라고 말한다.


 
그리고 멘토인 상철 교수는 마지막에 한 번 더 나타난다. 죽어서 나타난 건지 살아서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는 강훈에게 “강훈선생 좋은가? 행복한가?”라고 묻고 강훈이 “그럼요”라고 말하자 “그래, 소중한 걸 또 잃게 생겼는데도 말이지. 그럼에도 행복해야지”라고 충고한다.

이처럼 캐릭터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양 면,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오가며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봤다. 그러니 선악감정이 생기기보다는 동정과 연민을 자아낸다.

사실 별볼일 없는 조연 같아도 시간이 갈수록 내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고재학 과장이었다. 항상 권력을 좇는 그는 마지막에도 새로 부임한 병원장을 깍듯이 모시며 계속 ‘썩소’를 날린다. 줄타기에 능한 ‘처세 의사’를 극단적이면서도 맛깔스럽게 표현해낸 그는 “그럼에도 행복한” 인물일까, “그렇지 않음에도 행복한’ 사람일까? 이 사람도 그렇게 만만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고재학 과장은 현실적으로 직장인의 ‘로망’이 될 수 있다. 무능한 사람이 직장인의 로망이라니? 직장은 능력보다 오래 살아남기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이다. 능력과 오래 살아남기가 정비례한다면 고재학은 ‘악’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런 곳인가? 대쪽 같은 성격으로 올곧게 병원을 지켜낼 것만 같았던 황원장(반효정)까지도 야욕을 드러내지 않던가?

이처럼 ‘브레인’은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고, 까뒤집어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래서 타고난 선함이나 타고난 악함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곳에서 순수한 캐릭터인 윤지혜는 이질적인 존재요 박제된 인물이다.

드라마는 성격장애는 타고난 게 아니며. 경험을 통해 부족함과 황폐함이 드러난다고 했다. 이걸 인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게 ‘브레인’의 메시지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