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즐거웠고요. 20대, 10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친구들과 여행한 것 같은 느낌, 처음 오프닝 때는 제가 좀 낯을 가려서 어색했는데 지금은 한 1년 같이 한 느낌이에요. 태웅이랑 여행하고 싶어서 왔거든요. 그런데 아홉 명의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된 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제가 맨날 보던 ‘1박 2일’ 안에 제가 있었다는 게 너무 신기했습니다.”

- KBS2 <해피선데이> ‘1박 2일’에서 엄태웅의 절친 이선균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종영을 앞둔 <해피선데이> ‘1박 2일’ 제작진이 시청자를 위해 보너스로 마련한 ‘신년특집! 친구야 우리함께 가자’. 연기자 이서진과 이선균, 축구 국가대표 선수 이동국과 이근호, 그리고 H.O.T에서 이제는 솔로로 돌아온 장우혁까지, 예능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스타들과 함께 했던 ‘절친 특집’이 우리에게 남긴 건 다채로운 볼거리와 화기애애한 웃음만은 아니었다.

어색한 만남으로 시작해 경포대 입수며 족구까지, 수많은 화젯거리를 남긴 채 끝이 났지만 이승기의 절친으로 초대된 이서진을 필두로 하나 둘씩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어찌나 아쉬운 마음이 들던지. 예전 같으면, 어쩌면 2회 분으로 깔끔하게 정리하지 뭐 하러 3화까지 엿가락 모양 질질 늘여놓느냐며 투덜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몇 화 더 방송된다 한들 별 거부감이 없었지 싶다. 아니 오히려 반색을 하지 않았을까. 이제 겨우 두어 번의 녹화가 남았을 뿐이라고 하니 마치 빈칸만이 그득해진 초콜릿 상자를 들여다보는 어린애가 된 기분이다.

본디 내가 이처럼 ‘1박 2일’에 애정을 갖고 있었던가? 이리 서운할 줄 알았더라면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시청자 투어’에 신청서라도 한번 내볼 걸 그랬다. ‘시청자 투어’를 성의 없이 4화까지 내보낸다며 뒷소리 했던 것이 이제와 후회가 될 지경이다. 부족하다 싶을 때 수저를 내려놓는 게 몸 관리의 정석이고, 섭섭하다 싶을 때 헤어지는 게 가장 훈훈한 이별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나,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은 이 프로그램과 이별하려니 가슴 한 구석이 허물어져 나가는 양 그저 허전하다.

문득 한용운의 시 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한낱 예능 프로그램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시까지 들이대는 건 좀 오버다 싶긴 해도, 그래도 바로 이게 내 심정인 것을 어쩌랴.

하기야 엄태웅의 절친으로 온 이선균은 달랑 이틀을 함께 지냈을 뿐인데도 내무반 선후임 병들처럼 1년을 함께 한 것 같은, 그런 정겨운 느낌이었다고 하지 않나. 그에 비하면 시청자는 햇수로 6년을 매주 함께 웃고 운 셈이 아닌가. 정이 들지 않았을 수가 없다. 말이 나온 김에 고백하자면 지금은 모두 내 식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지지만 이 프로그램 전에는 그다지 정이 가지 않았던 멤버도 있었다.








우선 이수근. 처음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천양지차, 이미지가 엄청나게 달라진 멤버가 아닐는지. 좀처럼 적응을 못해 운전대만 잡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런 그가 ‘1박 2일’을 기점으로 예능에 안착했으니 자신에게도 아마 남다른 프로그램이리라. 그리고 또 한 사람, 은지원. 초반에는 미션 참여에도 적극적이지 않았고 한동안은 잠자는 모습이 카메라에 지나치게 자주 잡히는 바람에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지금은 천재적인 두뇌와 감을 바탕으로 숨은 리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지 않은가. 이번 엄동설한, 겨울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만 봐도 그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체험해보니 이렇게 힘든 프로그램을 6년이나 했다는 게 대단하더라’는 이동국의 말을 듣고 되짚어보니 일명 ‘초딩’이 야생버라이어티에 순응하기까지 정말 숱한 일이 있었지 싶다. 어린애 입맛이어서 어지간한 음식에는 눈길도 안 주던 그가 이제는 먹을 것만 보면 넌지시 손을 내미니 말이다. 입 짧은 ‘미대형’ 이서진도 족구 앞에서는 ‘체대형’으로 변신했듯 몇 달만 ‘1박 2일’ 제작진에게 단련을 받으면 은지원처럼 바뀔 게 분명하건만, 이젠 그럴 기회조차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지 뭔가.

지금 와 생각해보면 숫기 없어 주춤거리는 엄태웅을 보며, 하염없이 겉도는 김종민을 보며 왜 그리 답답해했는지 모를 일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난 사람은 반드시 이별하게 된다), 언젠가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윤호(정일우)를 통해 널리 알려졌던 이 한자 숙어가 마음 정리에 도움이 좀 되려나?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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