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웃기지 않은 ‘조커’의 조크를 닮은 한국 예능의 고민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조커>의 감독 토드 필립스는 선댄스 출신의 코미디 영화 제작자겸 감독이자 각본가다. 윌 페럴, 브레킨 메이어 등의 스타 코미디 배우와 함께한 <로드트립>(2000), <올드 스쿨>(2003)을 비롯해 2004년 오웬 윌슨과 벤 스틸러 듀오의 코믹 액션영화 <스타키 앤 허치>로 큰 성공을 거뒀으며, 2006년 당대 영화계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문제작 <보랏>의 각본가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2009년에는 그의 대표작인 브래들리 쿠퍼, 자흐 갈리피아나키스 등의 스타를 탄생시킨 <행오버> 시리즈로 골든글로브 영화 뮤지컬·코미디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코미디 영화감독으로서는 드물게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두루 얻은 바 있다.

그런데, <행오버> 시리즈 이후에도 흔히 말하는 막장, 백인 너드 코미디물로 필모그래피를 채워가던 그가 쓴 <조커>의 농담은 전혀 웃기지 않았다. 토드 필립스는 70년도 더 된 배트맨 시리즈의 익숙한 악당 조커의 화장을 지우고 전형적인 이미지를 뜯어냈다. 그렇게 파고들어 만든 서사는 진지하고 현실적이며 심각했다. 음습한 고담시의 최고 악당 조커의 탄생 스토리를 치밀한 심리 묘사와 음악, 그리고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으로 그려낸 섬세하고 긴장감 넘치는 연출은 압권이었다.



가벼운 코미디로 누구 못지않은 성공을 거머쥔 토드 필립스가 이런 내공을 품고 있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런 무겁고도 내밀한 영화를 만들게 된 전향의 계기가 더욱 궁금했다. 그런데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깨어있는 문화(woke culture, 인종차별, 젠더감수성 등에서 정치적 올바름과 사회 정의를 늘 추구하는 문화현상) 때문에 코미디를 그만두게 됐다고 밝혔다. 코미디가 예전 같지 않은 이유에 대해 “모든 코미디 작품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내가 만든 코미디 영화들은 모두 부적절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면서 웃음과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 사이에서 주로 그만두길 택한다는 업계의 풍토를 전했다. 물론 이 발언은 논란을 낳았지만 웃음을 만들던 관행이 최근 들어 점점 더 유효하지 않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솔한 고백이었다.



그런데 이런 고민과 선택은 비단 할리우드뿐 아니라 우리 예능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최근 전파를 탄 tvN <책 읽어드립니다><수요일은 음악프로>를 비롯해 웃음보다도 다른 가치를 최우선 재미로 둔 프로그램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특히 MBC의 일요일은 오후 5시 <복면가왕>부터 밤 자정 너머 끝나는 <구해줘 홈즈>까지 중간에 뉴스를 하는 한 시간만 빼면 예능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는데, 이중 <복면가왕>을 제외하면 모두 지식이나 사회적 의미를 내세운 예능이 자리하고 있다.



태극기함을 널리 알리기 위해 홈쇼핑 판매에 도전하고, 책에 깃든 감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같이 펀딩>이나, 집구하기에 관한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구해줘 홈즈>, 역사 강사 설민석과 함께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생생한 역사 현장 학습을 하는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까지 재미의 가치를 좋은 취지와 지식 전달 등 이른바 선한 영향력에 포커스를 둔 예능이 줄을 이어 포진하고 있다. 이 세 프로그램 모두 빵 터지는 웃음보다는 ‘진정성 있는 지식, 정보’를 통해 재미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여전히 불가침의 대세인 관찰예능 또한 노골적인 웃음을 추구하는 코미디 작법과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웃음을 위한 예능, 코미디로서의 예능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사실상 캐릭터 플레이를 기반으로 하는 야외 예능에서 웃음을 생산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유재석 옆에 박명수나 지금의 조세호, 이광수, 전소민처럼 샌드백 역할, 리액션을 찰 지게 해주는 캐릭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관계에서 나오는 웃음은 놀림이나 비난, 장난 등을 수반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불편함을 피하기 힘들다. 과거에 용인되던 소재나 인식과 작법을 보다 촘촘히 들여다보는 시선으로 즉각적인 웃음을 만들어 내야 하는 공개 코미디를 바라보면 더욱 치명적이다. 토드 필립스의 말이 흥미로우면서도 익숙했던 것은 <개그콘서트>가 위기론에 휩싸일 때마다 내세웠던 변론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늘어나고 있는 지식 예능, 착한 예능, 선한 예능의 출현은 제작진의 심성이 곱고 학구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가 담긴 볼거리를 원하는 사회의 변화와 맞닿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이미 대다수의 코미디언들은 TV와 규제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운 유튜브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예능이 왜 이렇게 재미없냐는(웃음을 추구하지 않느냐는) 투덜거림도 하지만, 기존의 웃음과 점차 멀어지고 있는 예능은 대중 콘텐츠로서 대세의 발걸음에 보폭을 맞춘 결과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식 예능, 가치추구 예능이 재미없는 경우 주요한 원인은 웃음 부족이 아니다. 우선, 효용의 측면에서 거리가 있거나 익숙함이든 소심함이든 캐스팅부터 설정까지 기존 예능 요소로 메우려는 관성 탓이 크다. 선한 가치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새롭게 하고 싶다면 거기서 길을 찾아야 한다. 기존 예능 장치들을 부가적으로 얹는 것은 그야말로 자신감의 문제다. 웃음보다 중요한 재미가 있다면 그에 집중해야 한다. 아예 캐스팅부터 시작해 기존의 예능적 요소를 탈피하는 담대함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tvN, 영화 <조커>포스터·메이킹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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