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를 품은 달’ 신드롬 강타, 문제점은 없나

[엔터미디어=배국남의 눈] 사극 하나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 파장은 방송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시청자의 반응의 농도뿐만 아니라 사극 판도 변화와 영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로 지난 4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MBC 사극 ‘해를 품은 달’이다.

‘해를 품은 달’은 1964년 7월 KBS에서 방송한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전설을 드라마화한 ‘국토만리’로 한국 방송 사극의 역사가 열린 이후 그동안의 기존 사극과 큰 차이를 보이며 새로운 사극의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사극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하여 꾸민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를 지칭한다. 정사가 됐든 야사가 됐든 역사 속 인물이나 사건을 매개로 해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사극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보다 중요한 방점을 두고 사극을 만드는 ‘광개토태왕’같은 정통사극 뿐만 아니라 ‘대장금’처럼 조선왕조 실록에 한두 줄로 소개된 인물에 작가의 상상력을 부여하여 새로운 인물로 살려낸 일반사극 그리고 ‘뿌리 깊은 나무’나 ‘공주의 남자’처럼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허구적인 픽션을 가미해 만든 팩션 사극에 이르기까지 사극이라는 장르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하거나 모티브로 삼은 극을 지칭한다. 사극은 극의 내용이 어떠한 형태로든 역사적 사실에 닿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해를 품은 달’은 조선시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을 뿐 사건이나 상황, 인물이 모두 허구이거나 가공이다. “조선시대 복장을 한 인물들의 현대의 로맨스극”이라는 말이 이 때문에 나온다. 완벽한 픽션 사극인 것이다. 조선 시대 가상의 왕 이훤과 비밀 속에 쌓인 무녀와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정은궐의 동명소설을 드라마화한 ‘해를 품은 달’은 인물에서부터 사건까지 모두가 허구다. 역사적 사실과 인물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사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 때문이다.

왕세자 이훤과 왕세자비로 선택된 연우의 파란만장한 역정과 운명을 뛰어넘는 애절한 사랑을 그리는 ‘해를 품은 달’은 4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18일 방송 5회에 시청률 25%에 육박하며 새로운 사극 신드롬을 일으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린 시절 왕세자 이훤과 왕세자비 연우를 아역 연기자들이 연기를 하고 있는 방송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킨 ‘해를 품은 달’은 김수현 한가인 정일우 등 성인 연기자들이 출연하면 더 많은 인기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해를 품은 달’의 인기 돌풍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해를 품은 달’의 인기가 앞으로의 한국 사극의 판도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해를 품은 달’이 드러내고 있는 문제점도 있다.

우선 ‘해를 품은 달’의 인기는 원작의 탄탄함과 유명성, 꽃도령으로 일컫는 아역들의 열연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완벽한 픽션 사극의 이점을 극대화한 것이 가장 큰 인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사실과 사건, 인물을 소재로 한 사극은 작가가 아무리 상상력을 가미한다하더라도 역사와의 관련성으로 인해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완벽한 픽션사극인 ‘해를 품은 달’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인물의 제약이나 한계에 상관없이 전혀 새로운 캐릭터와 사건, 상황을 설정할 수 있는 데다 사건과 상황에 따라 강렬한 극성을 발현할 수 있다. 또한 현대극에서의 수용자들이 보이는 드라마와 현실과의 끊임없는 비교로 인한 몰입의 제약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해를 품은 달’은 사극이라는 익숙한 인물과 사건, 배경의 드라마 코드로 이야기를 전개해 시청자들이 쉽게 극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 사극의 역사적 사실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고 새로운 캐릭터와 극단의 사건을 도입해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판타지적 로맨스라도 사극의 외피를 입어 쉽게 수용자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는 강점도 있다.



부, 외모, 부모의 배경 등 완벽한 조건을 갖춘 약혼자가 아닌 치매를 걸렸지만 사랑한 여자를 선택해 순애보적 사랑을 보인 ‘천일의 약속’에 대해 시청자들은 동일시도 대리만족도 얻지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시대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 ‘천일의 약속’이 88만원 세대로 돈이 없어 연애, 결혼, 아기를 포기해야하는 3포 세대에게 대리만족을 주기에는 현실이 너무 힘들고 팍팍했고 부, 외모, 학벌, 연봉 등 조건으로 배우자를 찾는 풍토가 굳건하게 형성된 현실에서 동일시 하기는 너무 먼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음모와 탄압으로 죽을 고비마저 넘기고 운명마저 이겨내며 펼쳐지는 ‘천일의 약속’보다 더 한 순애보적 사랑을 담은 ‘해를 품은 달’은 사극이라는 외피로 인해 시청자들은 오늘의 현실과의 비교 없이 쉽게 몰입하고 대리만족을 얻는다. 이러한 점 때문에 ‘해를 품은 달’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해를 품은 달’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뿌리 깊은 나무’같은 팩션 사극과 함께 가상의 인물과 사건을 담은 픽션사극이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5월 방송예정인 한의학을 다루는 김희선 최민수 주연의 ‘신의’ 역시 픽션사극이다.

픽션 사극은 분명 새로운 인물과 사건, 상황 등을 확장시켜 한국 사극의 스펙트럼을 확대시킬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인한 갈등이나 반감 없이 해외에서도 눈길을 끌 수 있는 신한류의 동력으로도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픽션 사극에도 문제점은 있다. 사극은 이제 중요한 역사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린이를 비롯한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까지도 사극을 통해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선 사극을 활용한 역사 교육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픽션 사극은 이러한 사극의 중요한 역할과 의미를 상실하게 만드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배국남 knbae@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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