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선발대’, 힘겨운 여정에도 웃음이 가득한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시베리아 횡단열차라고 하면 막연한 판타지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버킷리스트로 꼽는 것이 이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일이다. tvN 예능 <시베리아 선발대> 역시 바로 이런 막연한 판타지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어디 실제 여정이 생각한 판타지로만 굴러갈까.

<시베리아 선발대>가 보여준 횡단열차는 좁은 공간에 네 사람이 선반처럼 만들어진 침상에서 며칠간을 지내며 이동해야 하는 실제 여정의 현실을 보여준다. 물론 1등칸이나 2등칸처럼 완전히 독립적으로 구획되어 있어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공간은 그래도 저 판타지가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 냄새 가득하고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뒤섞여진 3등칸은 뭘 먹는 일도 씻는 일도 자는 일도 결코 편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섞여드는 3등칸에 조금씩 적응이 되기 시작하면서 선발대는 이 곳이 주는 매력에 빠져든다.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 꼬마들과 게임을 하고, 옆 침상에 먹을 걸 나누고 언어는 달라도 얼굴 표정과 손짓 몸짓으로 소통이 가능한 그 공간은 좁아서 더더욱 친밀해진다.



무엇보다 <시베리아 선발대>를 자꾸만 보게 만드는 건 이 여정에 함께 하는 출연자들이다. 이선균은 맏형답게 동생들을 챙기고 진두지휘하면서도 특유의 ‘셰프(?)’로서의 능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다. 김남길은 의외로 소탈하고 털털한 매력을 드러내며 때론 허술한 인간미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그 김남길이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시베리아 선발대>가 발굴해낸 인물은 지금까지 중심에 서 있지 않았던 고규필이나 김민식 같은 배우의 매력이다. 어찌 보면 피로감이 느껴질 수 있는 불편한 공간에서 계속 부대끼며 지내야 하는 여행이지만, 고규필은 모두를 웃게 만드는 귀여운 곰돌이 같은 매력을 드러낸다. 잘 하는 게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말을 툭툭 던질 때 이선균이 깔깔 웃으며 “입덕하게 됐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시청자들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먹을 것 앞에만 서면 본능이 발동하는 고규필의 모습은 이 예능 프로그램에 확실한 캐릭터 역할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고규필의 동년배 친구인 김민식은 아직까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배우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이 여정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러시아 아이들과 게임을 하며 금세 친해지는 모습이나, 낯선 현지인들과 부딪쳐 소통하려는 모습에서 이 배우가 가진 열정과 인간미를 발견하게 된다. 고규필이 그에게 자신이 힘겨워 배우생활을 그만하려 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며 앞으로 일이 많아질 거라고 얘기할 때 응원하게 되는 건 그 성실함이 여정을 통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산불 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뒤늦게 합류한 막내 이상엽은 애초 언어능력이 남다른 배우라고 소개됐지만, 실제로 보니 언어능력보다는 소통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마트에서 고기를 사며 한국말로도 소통을 해내는 그를 보면서 고규필은 “상엽이가 오니까 맘이 편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나서서 하는 인물이 여정에 함께 한다는 건 모두를 편하게 해주는 일이니까.



<시베리아 선발대>를 보게 만드는 힘은 그래서 여기 함께하고 있는 배우들의 인간미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봐왔던 그들이지만, 이 여정에서는 그와는 전혀 다른 온기를 이들은 전해준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꿈꾸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취지가 있지만, 그것보다 쉽지 않은 여정을 웃으며 즐겁게 만들어가는 이들을 본다는 것이 더더욱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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