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발견한 하루’. 영리한 각색과 뻔한 삼각관계 사이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화면 위에 만개한 꽃 CG가 수놓아지고, 주인공에게만 조명 광선이 내려꽂힌다. 마지막으로 순정만화를 읽은 게 언제였는지에 따라 피식 할 수도,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이 과감한 작품. MBC가 선보인 수목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이야기다. ‘만화 속 세계에서 자아를 찾아버린 캐릭터들의 이야기’라는 메타픽션 웹툰인 <어쩌다 발견한 7월>(다음 웹툰, 무류 작가)을 원작 삼은 이 드라마는, 그 코드를 이해하는 사람들만 알뜰하게 챙겨서는 휙 전진하는 경쾌한 속도감을 자랑한다.

웹툰에 익숙한 1020 시청자들의 관심도는 스마트미디어랩(SMR)이 발표하는 온라인 회당 재생수에서도 증명된다. 닐슨코리아가 집계한 시청률로만 비교하면 KBS2 <동백꽃 필 무렵>(14.9%)과 <어쩌다 발견한 하루>(3.8%)의 차이는 3배가 넘지만, 같은 날 온라인 회당 재생수는 267만건과 217만건으로 나란히 1, 2위를 달린다. MBC가 띄운 과감한 승부수가 먹힌 걸까? [TV삼분지계]가 들여다봤다. 정석희 평론가는 웹툰의 문법 자체를 스토리 전개 방식으로 차용한 작품의 플롯이 자칫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음을 귀띔했고, 이승한 평론가는 원작의 아이디어를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장르의 방향을 바꾼 선택이 영리했다고 평했다. 김선영 평론가는 기껏 클리셰를 박살내고도 다시 뻔한 삼각관계로 빠지는 듯한 드라마의 각색 방향을 염려했다. 세 평론가가 짚어본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주의사항과 매력, 우려지점을 함께 살펴보자.



◆ 순정 만화의 컷과 컷 사이, 친절치는 않은 드라마

MBC 수목극 <어쩌다 발견한 하루>, 원작이 따로 있는 경우 보고 안 보고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라기에 이번엔 웹툰 <어쩌다 발견한 7월>을 찾아 봤다. 등장인물들의 모습부터 성격 면면, 이야기 전개가 드라마와 흡사했다. 이종석·한효주 주연의 MBC 드라마 <더블유(W)>(2016)가 현실과 만화를 넘나들었다면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온전히 만화 속 세상 얘기다. ‘<꽃보다 남자> 패러디야? 대사가 왜 이리 유치해? 고등학생들이 저래도 돼?’ 라고 지적할 필요가 없다. 그냥 순정 만화 그 자체니까. 배경이 만화라는 사실을 모르는 시청자는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갑작스런 장면 전환이며 ‘얼음 땡’처럼 이랬다 저랬다 태세가 달라지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이며 언행이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주인공 은단오(김혜윤)와 마찬가지로 자아를 가진 캐릭터 ‘진미채 요정’(이지훈)이 설명해준다. “우리가 있는 세계는 작가가 만들어낸 공간이야. 자아를 가진 사람들은, 쉐도우라고 불리는 스테이지 밖에서는 자유로워. 지금 우리처럼. 캐릭터가 어떤 행동을 하던 우린 작가가 그린 대로 흘러가게 돼 있는 거고. 이를 운명이라고 하지” 만화는 현실처럼 쭉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페이지, 장면마다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친절치 않은 드라마다. 어느 날 문득 봐서는 이해되지 않을 테니까. [MBC PICK X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먼저 보면 도움이 되려나? 어쨌거나 자아를 갖게 된 은단오와 하루(로운), 이도화(정건주)가 콘티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지 지켜보자.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과감하게 바꾼 톤 앤 매너, 온전히 살려낸 원작의 승부수

* 원작 <어쩌다 발견한 7월>의 경미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당 스포일러는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도 잠재적인 스포일러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류 작가의 원작 웹툰 <어쩌다 발견한 7월>은 컷 단위로 쪼개지는 출판만화의 스토리텔링 문법 자체를 영리하게 활용한 작품이었다. 등장인물들이 자아를 찾아 제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내용은 송재정 작가의 <더블유(W)>(MBC, 2016)를 연상케 하지만, 컷과 컷 사이의 여백에 작가가 미처 통제하지 못하는 세계가 존재하고, 여백에서는 자아를 찾은 캐릭터들이 자유의지를 발현하지만 작가의 통제 하에 놓인 컷 안에서는 작가의 의도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설정은 <더블유>보다 훨씬 더 디테일하게 만화 문법을 활용한다. 비중이 없던 배경인물이 작가의 손에 익기 시작해 자주 그리는 인물이 될 수록 자유도가 낮아진다는 식의 자잘한 설정은 만화가가 아니면 떠올리기 어려운 차원의 상상이다.



만화 지면에서 효과적으로 작용한 장르 문법 뒤틀기지만, 기발하다고 해서 영상매체로 고스란히 옮겼다간 다소 힘을 잃기 쉽다. ‘만화 지면 위에 만화 문법을 활용한 메타만화를 그린다’는 설정은 동일 매체 안에서 가장 파괴력이 강한데, 매체를 옮기는 순간 그저 ‘만화가 소재인 드라마’가 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그 위험을 영리하게 피했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원작의 핵심설정과 아이디어를 고스란히 승계했지만, 대신 톤 앤 매너가 완전히 다르다. 원작은 코믹 요소가 거의 없는 차분한 분위기의 미스터리 판타지 멜로였지만, 드라마판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시끌벅적한 코미디 요소와 툭하면 등장하는 꽃 CG를 통해 “이 작품은 만화 속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외치는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다. 배경이 만화 속 세계란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납득시켜야, 비로소 원작의 가장 빛나는 지점인 ‘만화의 컷 문법을 활용한 메타픽션’의 매력을 안방극장 시청자들과도 나눌 수 있으니까.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과감하게 원작과는 전혀 다른 장르적 노선을 걸음으로써, 원작의 가장 큰 매력을 살렸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단오가 벗어나야 하는 두 겹의 설정값

“여주인공에겐 피할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순정만화의 열혈 독자 은단오(김혜윤)의 대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장르의 공식을 꿰뚫고 있는 주인공을 통해 클리셰를 재치 있게 비틀며 노는가 싶던 드라마는 이내 영화 <트루먼쇼> 급의 반전으로 아예 장르 바깥으로의 탈주를 시도한다. 자신이 속한 세계가 만화 속 세상임을 알아채고 ‘여주인공의 운명’에 적응하려던 단오는, 곧 만화의 진짜 주인공은 여주다(이나은)이며 자신은 단역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이 같은 단오의 변화는 로맨스 장르 속 여주인공의 트렌드 변화와도 일치한다. 자아를 발견하기 전의 은단오가 소위 “쌍팔년도”식 비련의 여주인공 캐릭터라면, 여주다는 ‘인터넷 소설 시대’의 전형적인 캔디렐라 캐릭터이고, 진실에 눈을 뜬 은단오는 장르의 낡은 클리셰를 벗어나 자아 찾기에 집중하는 요즘의 여주인공 캐릭터를 반영하고 있다.



이 모든 단계를 거친 ‘찐여주’ 단오가 “신데렐라는 책 속에나 있는 거야. 정신차려, 여주다”라고 말하며 ‘남주와 서브남’ 대신 위기에 처한 주다를 도와주는 장면은 이 작품의 ‘설정값’이 가장 빛나는 씬 중 하나다. 아쉬운 것은 이 같은 참신한 설정이 앞으로 더 나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주다를 둘러싼 만화 속 세계는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하는데 드라마는 이를 ‘구리고 후진’ 설정으로 넘겨버린다. 여기에 운명을 개척하느라 바쁜 단오가 첫사랑의 원형 같은 하루(로운)와 나쁜 남자 백경(이재욱) 사이에서 전형적인 삼각관계에 빠지면서 단오의 난제도 더 험난해졌다. 작품 속 만화 <비밀>의 운명을 벗어나려 애쓰는 단오는 그를 다시 순정만화의 클리셰에 가두려는 ‘찐작가’의 설정값까지도 벗어날 수 있을까.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영상·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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