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수현·정려원, 너무나 놀라운 그녀들의 변신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늘 연기 패턴이 한결 같은 연기자도 있고 반면 고심 끝에 매번 파격 변신을 이루는 연기자도 있다. 어느 쪽이 더 옳은 행보라고 굳이 선을 그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사람에 따라 호오가 갈리겠으나 나로 말하자면 물 흐르듯 편안한 연기 쪽에 더 끌리는 편이다.

예를 들어 차태현 같은 연기자. 지난번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차태현은 영화 <엽기적은 그녀> 이후 어떤 역을 맡든 ‘견우’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그래서 ‘아이 딸린 견우’, ‘복면을 쓴 견우’, ‘말 타는 견우’, 뭐 이런 식이라며 허탈하니 웃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가 언젠가 ‘노망난 견우’를 연기하게 될 때까지 변함없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안재욱도 마찬가지다. 요즘 MBC <빛과 그림자>에서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에 어느 누군들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숨이 막힐 듯 강한 인상을 주는 연기는 아니지만 어지간한 내공이 없이는 불가능한 연기가 아닐는지.

그러나 아무리 내가 익숙한 연기를 선호한다고 해도 눈부신 변신에 성공한 연기자들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이번 SBS 월화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에는 칭찬할 연기자들이 무수히 많다.

우선 천방지축 ‘백여치’ 역을 맡은 정려원의 변신이 놀랍다. 그 가녀렸던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의 희진이가, 그 투명하리만큼 맑았던 MBC <넌 어느 별에서 왔니>의 복실이가 이렇게 바뀔 줄이야. 물론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을 통해 한 차례 사차원 끼를 보여준 적은 있지만 이리 천박하고 되바라진 인물을 잘 소화해낼 줄은 몰랐다. 사치스러운 재벌 상속녀에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최근의 몇몇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그녀가 이번 역할을 위해 절치부심, 기울였을 노력들이 가슴으로 생생히 전해진다.

그리고 몸을 사리지 않는 또 한명의 연기자가 있으니 바로 홍수현, 불과 몇 달 전만해도 KBS2 <공주의 남자>에서 차갑고 도도한 천하제일 미색 ‘경혜 공주’로 등장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녀다. 사실 그녀가 단종의 누이 역을 맡게 되었다고 했을 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유일한 피붙이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고 목숨마저 잃는, 그리고 남편 정종까지 처참히 죽임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하는 비운의 여인이 아닌가. 가상이 아닌 실존 인물이고 그간 숱하게 재탄생되어온 캐릭터인 만큼 잘해야 본전이지 싶었는데,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으니 홍수현은 첫 등장부터 경혜 공주가 환생이라도 한 듯 잘 어울려 호평을 받아냈다.











뿐만 아니라 김승유(박시후)를 향한 풋풋한 연정이며 세령(문채원)을 향한 복잡 미묘한 질투어린 시선, 수양대군(김영철)을 향한 날이 선 살기, 훗날 남편 정종(이민우)을 향한 애틋한 부부지정까지, 참으로 다양한 팔색조 연기를 보여주지 않았나.

그런데 그처럼 단아하고 당당하고 처연했던 그녀가 이번엔 언제 그랬냐는 양 처참하게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샐러리맨 초한지>에서는 엎어지고 깨지고, 거의 매회 술주정에다 샤워 신까지 서슴지 않는다. 공주의 도도함은 온데간데없다. 언젠가 MBC <우리들의 일밤-뜨거운 형제들>에서 놀라운 변신으로 주목받은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기대 이상 선전할 줄이야.

이번 역할 ‘차우희’도 ‘경혜 공주’ 만큼이나 쉽지 않은 캐릭터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 수석연구원이 된 인물이니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겠는가. 아마 공부하느라 코피 꽤나 흘렸을 게다. 하지만 지금도 허구한 날 고향 집에서 돈 보내달라는 재촉 전화가 오는 처지, 따라서 매일매일 신분상승을 꿈꾸지만 그럴 때마다 매번 헛다리를 짚어 좌절을 맛본다.

얼마 전에도 장초 제약의 실세인 총괄본부장(정겨운)이 미팅 장소로 오고 있다는 말에, 그가 키도 크고 잘생겼으며 금상첨화로 개인 자산까지 꽤 된다는 말에 혹해 가슴 안쪽에 뽕까지 장착하며 전투태세를 갖췄으나 보기 좋게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차우희 그녀가 과연 바라는 대로 돈과 사랑을 다 손에 넣을 수 있을지, 그러는 동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그녀가 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눈물을 흘려야 할지 걱정스러운 한편 기대도 된다. 차우희 역의 연기자 홍수현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끝에 ‘홍수현 표’ 연기로 인정받게 되는 날이 이미 코앞이지 싶어서.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SBS. 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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