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희 음악이 주는 감성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19일 방송된 MBC 설특집 ‘이장희 스페셜-나는 누구인가’는 23년만에 열린 이장희의 4번째 콘서트다. ‘무릎팍도사’라는 토크쇼에 나온 적도 있고 세시봉 멤버들과 함께 얼굴을 내민 적은 있지만 이장희의 콘서트는 색다르게 다가왔다. 진행 경험이 전혀 없는 윤여정, 그의 초등학교 동기가 MC를 맡았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깍쟁이 같은 윤여정이 쉽게 MC를 수락할 리 없었다. 하지만 이장희는 “너는 배우인데, MC 역할을 하는 배우 하면 되지 않나?”라며 꼬셨으니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첫 진행부터 전문MC들과는 달랐다. 윤여정은 “장희는 노랫말과 분위기가 특이해서 유명해진 거지, 가창력이 뛰어나 가수를 한 게 아니지 않나”라며 장희에게 노래를 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조영남도 과거 이장희를 “음치”라고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들의 대화는 기계적인 진행의 토크가 아니다. 낭만과 반항과 끼를 지닌 젊은이들이 함께 보냈던 시절, 45년전의 자유로움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세월이 쌓여서 만들어낸 힘에 대해 너무 무시하고 살아오지 않았냐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추억을 끄집어내주고 연륜의 힘을 느끼게 해준 이장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70년대 이장희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이야 자죽재킷쯤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콧수염에 오토바이, 가죽재킷 3종 세트는 당시 삐딱함의 비주얼로는 가히 최상급이었다. 이제 머리를 박박 밀어 마치 달마대사의 느낌도 나고 어린 아이 같은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었지만 당시는 세상 불만을 다 짊어진 남자로 보였다. 담배까지 물고 있었으니 요새 말로 ‘허세 작렬’의 종결자쯤 되겠다. 하지만 권위정권하 숨죽인 당시 젊은이들은 이장희의 콧수염을 보며 그 자유와 일탈을 선망하기도 했다.

이장희는 70년대 포크그룹중 첫번째 싱어송라이터였다. 트윈폴리오와 조영남이 번안가요를 부를 때도 이장희는 꾸준히 노래를 만들어 대중 속에 파고들었다. ‘지금 나는 우울해’로 시작하는 ‘불꺼진 창’과 ‘그건 너’ ‘한잔의 추억’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1974년 히트영화 ‘별들의 고향’ OST)’, ‘그 애와 나랑은’, ‘자정이 훨씬 넘었네’, ‘안녕’ 등은 모두 이장희가 작곡한 노래들로 이날 다시 들어보니 그 때의 감성과 아련한 추억이 살아나는 듯 했다. 이장희가 작사하고 송창식이 작곡한 ‘창밖에는 비오고요’도 옛 느낌 그대로였다.
 
풍부한 감성을 아름다운 노랫말로 솔직하게 전달하다보니 과거 시적인 노랫말과는 전혀 다른 구어체 가사가 관심을 끌게 됐다. 그것이 이장희의 안정감 있는 중저음 목소리와 합쳐져 자유로운 일탈 속에서도 호소력을 갖춘 그만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가 나왔다.

요즘이야 전화 걸려고 동전 바꿀 일이야 거의 없지만 ‘전화를 걸려고 동전 바꿨네/종일토록 번호판과 씨름했었네/ 그러다가 당신이 받으면 끊었네/웬일인지 바보처럼 울고 말았네’ 같은 가사는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그는 결혼할 여자에게 바친 곡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직접 쓰고 작곡했으며 그 아내와 이혼하고 내놓은 ‘안녕이란 두 글자는 너무 짧죠’에서는 ‘그 누구가 이 단어를 만들었는지/내 심장을 도려내는 이 아픔을/어찌 그리 간단하게 표현했나요’라며 이혼의 아픔을 노래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어머니, 자신이 음악으로 성공하는 걸 못보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만든 ‘어머님의 자장가’, 김광석과는 또 다른 분위기로 먼저 내놓은 고백조의 노래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 1988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물음을 던진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세계 대자연을 여행하고 은퇴 후 정착해 농부로 살고 있는 울릉도를 노래한 ‘울릉도는 나의 천국’ 등도 열창했다. 모두 자신의 인생, 자신의 스토리가 담긴 노래들이다. 이런 평화주의자의 풍부한 감성을 담은 노래 대부분이 당시는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이장희는 포크뿐 아니라, 록을 넘나드는 멜로디로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을 적셨다. 그는 ‘사랑과 평화’가 부른 ‘한동안 뜸했었지’와 ‘장미’ 작곡자이기도 하고 요절한 로커 김현식을 프로듀싱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날 그는 지금까지도 술친구인 최고의 기타리스트인 강근식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들려주며 1970년대 초반의 사운드와 감동을 재현했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나는 이장희 음악이 50대 이상의 구세대들에겐 추억의 기회를, 신세대 시청자에게는 오히려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의 음악으로 다가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방송 심야 음악 프로그램 ‘0시의 다이얼’의 디스크자키로 인기를 날릴 전성기에는 요즘 웬만한 아이돌 스타가 부럽지 않았던 이장희는 올해 우리 나이로 66세다. 남은 세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질문에 “자연스럽게 보내고 싶다. 그리고 쇼처럼 재미있게. 좋은 일이 있으면 웃고, 슬픈 일이 있으면 울고”라고 답했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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