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목포가 고향인 학생이 이코노미스트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 인턴과, 후배 기자, 나 이렇게 셋이서 점심을 함께 하게 됐다. 난 목포(木浦)라는 지명의 유래를 그 학생과 후배 기자에게 들려줬다.

“남풍을 우리말로 뭐라고 하지? 마파람이잖아. 서풍은 하늬바람이고. ‘마’는 앞쪽을 가리키는 동시에 남쪽을 뜻했어. 우리 민족이 북쪽에서 아래로 내려와서 그런지, 우리는 남쪽을 앞으로 인식했지.

전국 각지에 남산이 있어. 서울에도 남산, 경주에도 남산, 울산에도 남산…. 여기서 남산은 ‘앞산’이지. 남산의 옛 이름이 뭐지?”

“목멱산?”

“응, 목멱산(木覓山). 목멱산에서 목멱은 ‘맛뫼’를 한자로 적은 부분이고, ‘산’은 ‘뫼’와 중첩되게 덧붙은 거잖아. 이처럼 앞을 뜻하는 단어 ‘마’ 또는 ‘맛’을 한글이 없던 옛날에는 목(木)자로 썼어.

목포도 마찬가지야. 목포는 ‘앞개’를 뜻해. 앞산을 남산이나 목멱이라고 쓴 것처럼, 목포라고 부르다가 남포라고 하다가 결국 목포로 굳은 거야.”

“정말요?”

“목포에 ‘뒷개’ 있잖아? 앞개에 대응하는.”

“네, 있어요. 한자로는 후포, 동 이름은 후포동이죠.”

“그게 바로 목포가 앞개에서 나왔다고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이지.”

다음 날 함께 식사한 후배 기자가 반론을 제기했다.

“선배, 목포시청 홈페이지에서 찾아봤는데요. 나무가 많은 포구라서 목포라고 했다는 설이 있고, 목화가 많이 나서라는 설, 서해로부터 육지로 들어가는 길목이라는 뜻이라는 설이 있대요. 앞개라는 말은 안 나오던데요?”

“음….”

주말 반나절을 인터넷과 집에 있는 책을 뒤적이며 보냈다. 목포시청은 ‘지명 유래와 관련해 길목 설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고 적었다.

나는 여러 자료를 종합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영산강 남쪽을 남포(南浦) 또는 목포(木浦)라고 이른다’는 기록이 나온다. 인터넷에서는 ‘당시 영산강 남쪽은 현재의 목포가 자리잡은 위치와 다르다’며 이 기록을 목포 지명과 연결지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이 기록은 ‘한 고장이 남포라고 불리기도 하고 목포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뜻이다. 남포와 목포가 같은 뜻이라는 말이다. 남산을 ‘맛뫼’라고 부르고 ‘목멱(木覓)’이라고 쓴 것처럼, 남포를 목포라고도 썼다는 얘기다.

목포 외에 평안남도 ‘남포’도 목포처럼 ‘후포’를 갖고 있다. 남포 외에 ‘앞개’와 ‘뒷개’를 낀 지역으로는 강릉과 묵호가 나온다. 목포 외에 여러 곳이 ‘앞개’와 ‘뒷개’를 갖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뒷개’를 끼고 있는 목포는 ‘앞개’였음을 더 강하게 추정할 수 있다.

이제 더 필요한 사실은 ‘목포’에서처럼 ‘목(木)’을 활용한 사례다. 그래서 ‘앞’을 뜻하는 곳이나 ‘마’ 발음에 목(木)을 쓴 기록을 찾아봤다.

내 고향 지명엔 목천포(木川浦)가 있다. ‘앞개’ 외에 ‘앞내’를 ‘목천(木川)’으로 쓴 곳이 있지 않을까? 천안에도 목천(木川)이 있다. 아쉽게도 여기서 ‘목(木)이 앞을 뜻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부모님도 모르겠다고 하신다.

‘마’ 발음을 ‘목(木)’으로 표기한 사례는 찾았다. 삼국시대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고구려 功木(공목), 발음은 고마, 뜻은 곰(熊)이었다.
신라 若木(약목), 발음은 나마, 뜻은 나무(木)였다.
일곱에 해당하는 고구려 단어는 ‘難隱(나난)’, 신라에서는 ‘若木(나마)’였다.

이처럼 목(木) 글자는 이두 표기에서 ‘마’ 발음에 쓰였다. 이는 아직까지 활용되는 지명에서도 나온다. 경북 칠곡의 원래 이름은 칠곡(七谷)이었다. 칠곡과 원조를 다투는 지명 가운데 약목(若木)이 있다. 약목은 앞서 설명한 대로 ‘나마’로 읽고, 뜻은 칠곡의 ‘칠(七) ’과 같이 ‘일곱’이다.

이로부터 ‘마’ 발음을 삼국시대 이래 ‘목(木)’으로 표기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거론할 단어가 있다. ‘마포(麻浦)’다. 마포는 목포의 다른 표기가 아닐까?

『택리지』는 ‘마포’를 ‘마포(麻浦)’로 적었다. 원래 용산 서쪽에는 포구가 셋 있어 삼개라고 불렀다. 삼포 중에 다른 곳은 잊혀지고, 셋 중 가장 앞에 있던 마포만 남게 됐지 않을까? 그리고 마포의 ‘마’를 표기할 때 이번엔 ‘목(木)’ 대신 ‘마(麻)’를 쓰게 되지 않았을까”

이와 관련한 자료가 있다. 『성호사설(星湖僿說)』은 ‘남풍위지마즉경풍(南風謂之麻卽景風)’이라고 했다. 남풍을 ‘마’라고 하며 즉 ‘앞에서 부는 바람(경풍)’을 가리킨다고 했다. 『성호사설』은 1740년 경에 나온 이익의 저술.

‘남’을 ‘마’라고 한 데 그치지 않고 ‘마(麻)’로 적은 대목에 주목하자. 이는 마포의 ‘마’가 ‘목’처럼 ‘남’을 가리키는 데 쓰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마포가 삼을 많이 취급해서 마포가 됐다는 풀이는 그럴 듯하지 않다.

‘마’는 요즘 말에 ‘맞은 편’의 ‘맞은’ 등으로 남았다.

이에 앞서 일본으로 넘어가서 ‘마에(前)’가 됐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cobalt@joongang.co.kr


[사진 = 목포시청]
<참고자료>
김수경, 고구려·백제·신라 언어 연구, 한국문화사, 1995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을유문화사, 1996
이중환, 택리지, 을유문화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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