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권하는 방송의 시대, 그 성공 가능성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29일, 두 편의 ‘책’ 콘텐츠가 방송을 탔다. 저녁 8시 tvN <요즘책방:책 읽어드립니다>에서 서울대 추천도서로 유명했던 <총,균,쇠>를 다시 펼쳐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밤 11시 JTBC에서는 장동건이 세계의 가치 있는 서점을 소개하는 4부작 다큐 <장동건의 백투더북스>가 방송됐다. CNN와 BBC에서 ‘아름다운 서점’으로 꼽은 중국 난징의 센펑 서점을 찾아간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와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의 서점들을 돌아볼 예정이다.

이 두 편뿐 아니라 이번 가을 유독 독서와 책에 관련 방송 콘텐츠들이 눈에 띈다. 지난 9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방송되는 JTBC <멜로디 책방>은 애니메이션과 음악으로 책 수다를 풀어내는 예능이다. 북클럽 회원으로 모인 선우정아, 박경 등의 젊은 뮤지션들이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소개하는 책 중 한 권을 골라, ‘Book-OST’를 함께 만든다는 독특한 접근이다.

지난달 26일부터 EBS에서는 목요일 밤에 백영옥 작가가 진행하는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이 방송 중이다. 소설가 김훈, 김탁환, 건축가 유현준, 물리학자 김상욱 등 매주 새로운 게스트와 함께 골목을 거닐며 특색 있는 동네 책방과 책에 대한 애정을 나눈다. 다음달 17일 시즌1을 마무리하기로 한 MBC <같이펀딩>에서도 유준상의 태극기함과 함께 진행된 장기 프로젝트가 독서 애호가 유인나의 오디오북 제작 프로젝트다. 유인나가 다녀간 연희동의 작은 책방은 유명세를 탔고, 아이유가 전화상으로 언급한 책도 단숨에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20여 년 전 MBC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가 온 국민을 독서 열풍 속에 몰아넣은 이후 KBS1 <인생낭독> tvN <비밀독서단> MBN <책잇아웃:책장을 보고 싶어> EBS <책대로 한다>, KBS1 <냄비받침> KBS2 <달빛 프린스>, MBC <비블리오 배틀> 등등 방송가에는 꾸준히 책과 독서를 주제 삼은 프로그램들은 내놓았다. 그러나 책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성공한 방송은 <느낌표> 이외에 없었다. 물론 방송과 책이 시너지를 일으킨 사례가 없던 것은 아니다.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의 붐을 일으킨 EBS <하버드 특강- 정의>나 <어쩌다 어른>과 같은 강연 예능, <알쓸신잡> 시리즈 등등 책을 화제로 만든 방송은 간간이 있었지만 책 자체를 내세운 기획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가을 본격적으로 다시 서점을 찾아가 책장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이는 큰 흐름에서 보자면 예능의 시대정신이 일상의 공감을 나누던 관찰예능에서 보다 직접적인 효용을 담을 수 있는 교양, 가치 예능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소중한 가치와 인문학적 소양을 전하는 데 책만 한 소재가 없다. 예능이 지난 10여 년 간 꾸준히 단순한 웃음에서 일상에서 접목 가능한 효용으로 재미의 개념과 폭을 확장해온 흐름과 맞닿아 있으면서 자극적이고 가벼운 유튜브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방송콘텐츠의 영역이다.



살펴보자. 올 가을 독서 예능의 대표주자인 <요즘책방:책 읽어드립니다>는 설민석의 브랜드를 활용해 막상 읽자니 바쁘고, 어렵고 부담스러워 완독하지 못한 책을 대신 요약해서 알려주는 콘셉트다. 지금까지 <사피엔스>, <징비록>, <군주론>, <멋진 신세계>, <총,균,쇠> 등 제목은 익히 들어봤으나 완독하지 못한 스테디셀러의 핵심을 강연을 통해 대신 읽어줬다. 예컨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인류문명사를 해석하기 위한 과학적 도전과 집요한 추적을 800페이지가 넘는 책에 담은 <총,균,쇠>를 설민석 강사는 1시간가량의 강연을 통해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라는 한 줄로 집약한다.

사실 놀랍도록 새로운 방식은 아니다. ‘어쨌든 요약’은 어쩌면 지극히 유튜브다운 문법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웬만한 유투버는 할 수 없는 소설가 장강명,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 진화학자 장대익 교수미술사학자 양정무, 의사 윤대현 등등의 전문가를 독서 패널로 참여시켜 <알쓸신잡> 스타일의 지적수다를 펼친다. 강연과 수다의 결합으로 일반적인 독서 콘텐츠의 포맷을 벗겨냈다.



이처럼 요즘 방송은 책을 어렵고, 두껍고, 지루하다는 편견 대신, 문화적 감수성과 인문학적 자기계발이란 효용으로 접근한다. ‘지식’과 ‘감성’을 앞세워 책을 읽고 싶은 심리를 자극하고, 서점을 친숙한 공간으로 비춰주며 책을 보다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깊이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을 순 있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애호, 요약, 동네책방, 음악, 세계 서점 순례 등 제각각이고 보다 가볍다.

그 덕분인지 최근 <요즘 책방>에서 소개된 책들의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1회에서 방송된 <사피엔스>는 방송 후 일주일간 판매량이 직전 같은 기간보다 5배 가까이 늘었다고 하고, 서점들은 방송에 소개된 책을 따로 구성하는 등 모처럼의 들썩이는 분위기에 기대하고 있다. 시청률도 증가세다. 지속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2017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 평균 독서량이 8.3권, 하루 10분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이 10명 중 채 1명도 안 되는 환경에서 고무적인 결과다.

안 그래도 책과는 거리가 먼 사회적 분위기에다 유튜브의 시대에 접어든 이 시점에 책을 권하고 서점을 소개하는 방송이 다시금 독서 붐을 일으킬 수 있을까. 올드한 매체의 대표 격인 책과 방송의 연합이 한철 장사로 남을지, 아니면 새로운 경향을 여는 밑거름으로 이어질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JTBC,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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