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하루’, 뻔하고 자기 복제하는 작가와 대결하는 캐릭터들

[엔터미디어=정덕현] MBC 수목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순정만화 속 세계가 그 배경이다. 그런데 이렇게 칸칸으로 나뉘어져 있는 만화 속에서 작가가 부여한 설정값대로 움직이던 은단오(김혜윤)는 어느 날 갑자기 ‘사각’하는 소리와 함께 엉뚱한 장소와 시간에 들어와 있는 자신을 자각한다. 그는 알게 된다. 자신이 작가가 만들어낸 만화 속 캐릭터지만 의식이 생겨났다는 걸.

의식이 생겨난 은단오는 그래서 만화의 칸에서 칸으로 이동하는 그 쉐도우의 지점에서의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기억한다. 그리고 칸 속의 ‘스테이지’와 칸 바깥의 ‘쉐도우’의 세계를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도서관에서 발견한 ‘비밀’이라는 만화책의 내용과 똑같이 자신이 사는 세상이 작가가 정해놓은 설정값대로 움직이지만 의식이 생겨난 은단오는 그 정해진 설정값이 맘에 들지 않는다.

백경(이재욱)이라는 인물의 약혼자라는 설정값에 늘 호통치고 상처 주는 그를 일편단심 바라보는 그 인물 캐릭터가 싫어진 것이다. 은단오는 그래서 이 만화 속 세계의 뻔한 순정만화 설정들을 스테이지 위에서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가 주지만 그 때마다 속으로는 “토 나와”라고 투덜댄다.



그러다 이름도 없는 한 남자애가 눈에 들어오고 그에게 하루(로운)라는 이름을 붙여주면서 은단오는 설정값과 상관없는 자신만의 의지에 의한 삶을 조금씩 추구해간다. 하루를 좋아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면서 은단오의 의지 또한 커지자 설정값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저 이름 조차 없던 엑스트라였던 하루가 드디어 이름을 갖게 되고 ‘비밀’이란 만화책 등장인물 소개란에도 얼굴을 내밀게 된 것.

하지만 수영장에 빠진 은단오를 구해낸 후 하루는 사라져버리고, 다시 나타난 하루는 은단오와의 기억이 지워져버린다. 대신 이 만화 속 세상에서 엑스트라가 아닌 존재감 있는 인물로 거듭 서게 된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걸 깨달은 하루가 도서관에서 블랙홀 같은 곳에 손을 넣었다 드디어 기억을 되찾게 되고, 그는 자꾸만 은단오와 얽히게 되는 것이 사극 배경의 ‘능소화’라는 만화에서의 인연 때문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물론 아직까지 확신할 순 없지만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그 배경이 되는 만화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일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하나가 ‘비밀’이라면 또 하나는 사극 배경의 ‘능소화’다. ‘비밀’에서 은단오와 하루는 주인공이 아니지만, ‘능소화’에서는 주인공급이었던 건 아닐까. 두 사람이 사랑을 하는 설정값을 가졌기에 의식을 갖게 된 그들이 막연히 연결된 과거 ‘능소화’ 스테이지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아닐까.



만일 이런 이야기라면 이 ‘비밀’이나 ‘능소화’ 같은 만화 속 세계의 설정값을 만든 작가는 은단오가 투덜대듯 뻔한 순정만화를 쓰는데다 자기복제까지 하는 작가다. 그래서 은단오나 의식이 생겨난 만화 속 인물들이 설정값을 바꾸려는 대결의식은 흥미진진해진다.

사실 만화 속 세상이라는 판타지 설정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네 사는 현실 특히 그 중에서도 학생들의 현실만큼 뻔하고 자기복제하는 세상도 없을 게다. 부유한 집 아이들은 이미 정해진 길대로 승승장구하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의 설정값 속에서 자포자기한 채 살아간다. 그러니 은단호가 설정값을 바꾸려고 그토록 애쓰는 모습에 어찌 빠져들지 않을까. <어쩌다 발견한 하루>라는 판타지가 기묘하게 현실을 툭툭 건드리는 지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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