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라’ 로맨스보다 뜨거운 브로맨스, 그 빛과 그림자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는 조선 개국과 왕자의 난을 배경으로 한 1980~90년대 무협순정만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가상의 꽃미남 꽃미녀들의 로맨스를 집어넣거나 남녀주인공들의 캐릭터를 만드는 방식들이 그러하다. 대개 그런 류의 무협순정만화의 여자주인공들은 강한 주체성을 가진 인물이기 마련이고, 남자주인공들은 풍운아나 고독남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나의 나라>의 한희재(김설현), 서휘(양세종), 남선호(우도환) 등은 그런 설정에 적합한 주인공들이다.

이처럼 무협순정의 외피를 쓰고 있기에 사극에서 사골처럼 우려먹은 이성계(김영철)와 이방원(장혁) 시대의 이야기라도 <나의 나라>는 특유의 개성이 있다. 여기에 넷플릭스 스타일의 현란한 전쟁신과 발 빠른 진행 덕에 <나의 나라>는 1시간 30분 내내 흥미롭게 몰입할 수 있는 드라마다.

하지만 전통사극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이성계와 이방원이 조연으로 밀려난 이 작품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분명 배우 김영철과 장혁의 카리스마 때문에 <나의 나라>가 빛이 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나라>는 이들 왕족이 아닌 귀족이지만 귀족취급 못 받던, 혹은 빼어난 무장이지만 낙인 찍혀 변방에 남은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든 <나의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한 분투기이기도 한 것이다.



또 <나의 나라>는 일반적인 무협순정의 서사로 보기에는 조금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지점도 있다. 바로 한희재를 둘러싼 서휘와 남선호의 로맨스다. 극 초반 한 여자를 둘러싸고 두 명의 삼각관계로 치달을 것 같은 이 멜로는 일찍이 막을 내린다. 선호 역시 희재에게 마음을 두고 있지만, 희재가 그의 절친 휘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말에 선호는 쉽게 마음을 접는다.

<나의 나라>가 극 초반 되게 쿨하게 남녀관계를 정리하긴 했다. 그런데 이러다보니 휘와 희재의 로맨스에는 애틋함이나 절절함이 없다. 그 아픈 감정을 가져간 것은 오히려 휘의 여동생 서연(조이현)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려 오라비를 못 알아보는 여동생의 사연은 식상하나, 그래도 서연의 죽음과 휘의 오열 장면은 <나의 나라>에서 가장 슬픔의 감정이 복받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나의 나라>는 서연의 죽음 이후에도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로맨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두 사람은 각자 업무에 바쁘다. 희재는 서설(장영남)의 뒤를 이어 이화루의 행수를 맡아 나랏일 등에 은근히 관여하느라 바쁘다. 휘는 여동생과 아버지의 원수이자 절친 선호의 아버지 남전(안내상)에 대한 복수에 불타오른다. 그리고 그 복수를 위해 이방원(장혁)과 손을 잡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로맨스보다 더 깊이 있게 그려지는 건 브로맨스다. 절친의 아비를 죽이면서도 절친의 급소에 칼을 꽂지 못하는 휘의 애절함. 그런 휘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피를 토하는 선호. 이 둘의 관계는 극의 절정에 이르면 대사 없어도 눈빛과 표정만으로 절절하다.



또한 슬픔 어린 눈빛의 온미남 휘와 무표정해도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냉미남 이방원과의 미묘한 브로맨스에도 은근히 긴장감이 넘쳐난다. 주인공 휘는 여주인공에게는 하지 않던 밀당의 추파를 이방원에게 던진다. 또한 이방원은 휘를 나의 사람이라 말하며, 그를 자기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이처럼 칼과 칼이 부딪치며 강하면서도 애절한 눈빛을 교환하는 브로맨스에 집중하는 <나의 나라>는 기존의 정치사극과는 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오직 정치적인 룰에 의해 움직이던 기존 사극의 남성 캐릭터들과는 다른 매력이 어필되는 것이다. 무언가 이 사극의 남자들은 장기판의 장기알이 아닌 전쟁 속에서도 인간적인 감정이 살아 있는 사내들로 여겨지는 면이 있다.



다만 이렇다 보니 아쉬워지는 것은 행수로 눌러앉은 희재의 서사다. 로맨스 따위 대충 끝낼 거였으면 희재에게도 뭔가 그럴듯하고 동적인 서사를 만들어줘야 했다. 희재는 <나의 나라> 첫 회에서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반역의 기운을 담은 조선시대 대자보를 길거리에 붙이면서 등장했다. <나의 나라>에서 그 희재의 매력이 어느 순간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건 좀 많이 아쉽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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