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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 업’, 고루했던 KBS 예능국의 아주 혁신적인 실험
기사입력 :[ 2019-11-18 11:17 ]


‘스탠드 업’, 본격 스탠딩 코미디 쇼의 탄생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부작 파일럿 <스탠드 업>은 매우 재밌는 시도다. 고루함의 대명사였던 KBS 예능국에서 국내에서 가장 마이너한 코미디 장르인 스탠딩 업 코미디쇼를 선보였으니 일단 시작부터 신선했다. 넷플릭스의 스탠드 업 코미디쇼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로 가능성을 확인한 박나래가 호스트를 맡아 “어디까지 방송에 나갈지 모르겠다”며 분위기를 띄우고 국내에서 활동 중인 스탠드 업 코미디언들과 박미선, 장도연 등 여성 코미디언들이 마이크를 이어받으며 공연을 펼쳤다.

미국 본토 스탠딩코미디언의 여유를 보여주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잡은 대니초, 아주머니 화법 코미디를 펼친 이용주, 장애인 스탠드 업 코미디언 한기명, 터키 출신의 귀화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메이저 코미디프로그램인 <개콘>에 출연 중인 알파고, 수영강사 아이돌 송하빈, 1990년대생의 입장에서 바뀌었으면 하는 것들을 이야기 한 케니 등의 스탠딩 코미디언들은 기대 이상의 무대로 웃음을 만들었다. 주제는 모두 달랐지만 스탠딩코미디의 기본 재료인 주변 관찰과 사회적 시선이 간간이 번뜩였다.



특히 놀라운 것은 그 동안 서브MC로 봉인되었던 박미선의 재능이었다. 장도연이 코미디언으로서의 자질과 캐릭터에 대한 솔직하고 자전적인 고민 이야기로 관객의 마음을 샀다면 박미선은 ‘67년생 박미선‘을 주제로 성적인 농담부터 자기 비하, 관객과의 수려한 호흡과 번뜩이는 순발력과 여유까지 공감을 바탕으로 한 웃음을 전했다. 그러니 스탠딩 코미디는 박미선을 비롯해 기존 방송에서 재능을 모두 드러내지 못한 이들이나, TV스타가 아니지만 재능 있는 코미디언들을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무대라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나아가 스탠딩 코미디의 기본요소가 관객을 앞에 둔 라이브 무대인 까닭에 수년째 한계에 봉착한 <개콘>과 같은 콩트 기반 공개 코미디에도 좋은 영향력을 기대해봄직하다.

스탠딩 코미디는 본디 본토 미국에서 하나의 장르를 넘어선 코미디 산업의 뿌리다. 1920년대부터 1970년대 황금기를 거쳐 지금까지 제리 사인펠트, 크리스록, 코난 오브라이언, 윌 페럴, 세스 로건과 조나 힐, 티나 페이, 주다 프리드랜더, 켄정, 엘리 웡 등등 남녀노소, 인종 불문하고 할리우드나 방송가에서 활약하는 대부분의 희극 배우와 코미디언, 작가와 감독들은 각자의 도시와 동네에서 스탠딩 코미디언으로 활약하며 꿈을 키우고, 기회를 얻었다. 스스로 각본을 쓰면서 코미디 감각과 시대정신을 익히고, 관객과의 호흡하면서 연기력과 순발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탠드 업>에서도 이런 부분들을 잘 읽을 수 있다. <82년생 김지영>을 패러디한 박미선이나 베스트셀러 <90년대생이 온다>를 차용한 케니, 택시 기사와의 대화나 수영 강습반 주부님들과의 대화를 소재로 끌어낸 이용주와 송하빈, 문화적 차이에서 웃음을 찾아낸 알파고와 대니초, 스스로를 비화하면서도 웃음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유도한 한기명의 개그에 공통적으로 녹아 있는 부분이 바로 이런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시대상의 반영이다.

우리의 경우 1980년대 이후 경직된 분위기가 방송가의 스탠다드로 자리 잡고, 극단 문화가 클럽이나 살롱 문화로 이전되지 못하며, 방송 예능이 주로 만담과 콩트, 게임쇼에 특화된 일본 코미디의 영향을 진하게 받으면서 영미권 코미디의 뿌리인 스탠딩 코미디는 우리 땅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최근 넷플릭스가 본격 서비스되기 시작하면서 웬만한 영어 실력으로는 볼 수 없던 미국 스탠드 업 코미디쇼를 자막과 함께 즐길 수 있게 되면서 반전의 전기가 마련됐다.



더 나아가 넷플릭스의 현지화 전략의 일환으로 작년에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유병재의 [B의 농담], <블랙코미디> 등의 국내 스탠딩 코미디물이 인기를 끌고 올해 <박나래의 농염주의보>까지 히트하면서 관객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일종의 모노드라마가 지상파에서까지 선보이게 됐다. 방송 콘텐츠 차원에서 좁혀 보자면 전에 겪어본 적 없는 호시절인 셈이다.

그런데 마냥 미래가 밝은 것은 아니다. 스탠드 업 코미디는 미국에서도 사양화되고 있는 장르다. 박나래는 <스탠드 업> 오프닝 멘트로 <조커>의 한 대사를 인용했다. 그런데 이 <조커>를 만든 토드 필립스는 ‘코미디 절필 선언’으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미국 내에서 가장 성공한 코미디 영화 제작자 겸 감독이자 각본가인 그는 최근 불고 있는 깨어 있는 문화(woke culture, 인종차별, 젠더감수성 등에서 정치적 올바름과 사회 정의를 늘 추구하는 문화현상) 때문에 코미디를 그만두게 됐다고 밝혔다.



코미디가 예전 같지 않은 이유에 대해 “모든 코미디 작품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내가 만든 코미디 영화들은 모두 부적절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면서 웃음과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 사이에서 주로 그만두길 택한다는 업계의 풍토를 전했다. 게다가 경쟁 상대가 기존의 금기에 둘러싸인 방송 예능이 아니라 웬만한 욕설은 무방한 훨씬 제약이 낮고 수위가 높은 유튜브다. <스탠드 업>은 직설적인 욕설과 성적인 코드들이 들어간 대사들은 편집되거나 묵음처리 되어 나갔다. 일종의 비대칭의 무장 상태로 유튜브 콘텐츠와 경쟁을 펼쳐야 한다.

우리나라의 스탠딩 코미디는 전에 없던 진일보를 이뤘지만, 여전한 현실적 어려움은 한 발 더 물러나지 않고 커진 상황이다. 극복할 요소가 여전한 가운데 <스탠드 업>이 갈피를 잃은 우리네 코미디 산업과 문화에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을까? 혹은 <개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포장조차 안 되어 있는 가본 적 없는 길이지만 기대를 해본다. 과거 공개 코미디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박나래의 <스탠드 업>이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첫 발걸음이 되길 응원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넷플릭스, 영화 <조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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