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큼발랄한 코미디 [굿모닝 에브리원]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새영화가이드] [노팅힐]로 유명한 로저 미첼 감독의 상큼한 신작 [굿모닝 에브리원]은 두 가지 면에서 진정한 세대교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단 출연배우들의 면면이 그렇다. 할리우드 남자배우 가운데 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해리슨 포드가 이제 명백히 세컨 타이틀로 물러났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해리슨 포드가 아니라 레이첼 맥아덤스다.

해리슨 포드가 이번에 맡은 역할은 전설의 기자 그리고 앵커인 마이크 포메로이 역이다.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포메로이는 세상에서 세번째로 최악인 남자로 묘사될 만큼 이기적이고 고집불통인데다 과거의 영광에만 눌러 앉아 살아가는 인물이다.(영화속에서 최고로 최악인 남자는 김정일이 꼽힌다.) 주인공이자 아침방송 ‘데이 브레이크’의 신참PD인 베키 풀러, 곧 레이첼 맥아덤스가 새 MC로 그를 영입하려 하자 그는 이렇게 분통을 터뜨린다. “올해의 기자상을 8번이나 탔고 풀리쳐상까지 탄 나에게 이 따위 아침 뉴스를 진행하라고?!” 그러나 포메로이는 조금씩 조금씩 베키 풀러 식 아침 뉴스쇼에 끌려 들어가게 된다.

극중에서 포메로이가 분통을 터뜨리는 모습은 마치 해리슨 포드 자신의 마음 속 회오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아카데미에, 골든 글로브에, 각종의 비평가상이라는 비평가상은 다 타온 나 같은 톱스타에게 이 따위 2인자 배역을 하라는 거야?!’ 하지만 포메로이가 그렇듯이 해리슨 포드도 이제 완전히 시대가 변했음을 감지하고 있다. 세대가 교체돼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스타가 꼭 중심에 있지 않더라도, 쓸만한 연기자로 계속 남아있는 한, 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음을 입증해 냈다.

미국의 국민배우였던 해리슨 포드조차 서서히 전설의 무대로 다가서고 있음을 목격하는 건, 묘한 기분을 갖게 만든다. 의도적인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영화 속에서 처음 그가 등장할 때면(문이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비집고 들어온다.) 극장 안 이곳저곳에서 수군거림이 터져 나오게 된다. 그는 이번에 정말 너무 늙게 나온다. 하긴, 그의 실제 나이가 이제는 70에 가깝다.



미디어의 세대변화가 나타나

배우의 세대교체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말고도 이 영화는 ‘미디어의 주체’와 ‘미디어에 대한 수용 행태’가 변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점이 이 영화가 그리는 진정한 세대교체의 모습이다. [굿모닝 에브리원]은 방송국이 배경이다. 그것도 보도제작국의 얘기다. 보도는 보도다. 진실과 팩트를 목숨처럼 여기는 곳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뉴스도 뉴스쇼로 변질돼 왔다.

각종의 이벤트가 개입되는 정보프로그램이나 버라이어티 쇼의 영역으로 슬쩍슬쩍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옳은가,라는 부분의 논쟁은 뉴스 혹은 저널리즘이 존재하는 한 늘 평행선을 그어 왔다. 프로그램의 모든 아이템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며 질리도록 말을 안듣는 포메로이에게 베키는 이렇게 소리친다. “이미 그 얘기의 승부는 당신네들이 진 것으로 판정이 났다니까요!”

윌리엄 허트와 홀리 헌터가 나왔던 제임스 L.브룩스 감독의 1987년작 [브로드캐스트 뉴스]를 본 세대에게 그건 좀 뼈아프거나, 그래서 역설적으로 신선한 ‘선언’이다. 아니면 그보다 먼저인 1976년 영화 [네트워크]도 비교될 만 하다. [네트워크]는 시드니 루멧이 만들고 윌리엄 홀덴과 페이 더너웨이 가 나왔다. [굿모닝 에브리원]은 과거의 영화에서 윌리엄 허트 Vs 홀리 헌터 혹은 윌리엄 홀덴 Vs 페이 더너웨이의 캐릭터간 관계를 은근슬쩍 차용하고 또 뒤집으면서 이제 명백히 다른 관점의 미디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과시한다.



지금의 시대에 있어 뉴스는 대중이 무엇을 보고싶어 하고, 또 무엇을 듣고싶어 하는지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며 뉴스가 대중을 가르치고 견인해야 한다는 엘리트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하지만 그럼 뭐든지 재밌기만 하면 되는 것이냐는 비판을 의식한 듯 영화는 주인공인 베키를 자신의 쇼를 만드는데 있어 늘 진정성과 열정을 지닌 인물로 포장해 낸다. 영화는 엄숙주의를 모두 벗어 버리고 경쾌하고 날렵하게 이 시대의 언론과 저널리즘이 어떤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천착해야 하는 가를 되새기게 만든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 언론은 뉴스가치 면에서나 재미 면에서나 과연 자신의 역할을 올바로 해내고 있는 가를 물어보게 한다.

이런 것 저런 것 따지지 않더라도, [굿모닝 에브리원]은 재미있고 화끈하며, 섹시한 영화다. 무엇보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질감이 두텁고 생생하다. 베키 풀러 역의 레이첼 맥아담스나 마이크 포메로이 역의 해리슨 포드,
혹은 포메로이의 공동MC로 늘 그에게 쌍심지를 켜고 덤비는 콜린 역의 다이안 키튼, 그리고 심지어 그렇게 큰 비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작국장 역의 제프 골드브럼 등등 모두 다 기막히고 생생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할리우드 영화의 특징이자 장점 가운데 하나는 전문가 역을 맡은 배우들이 마치 모두 다 진짜같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모든 배우들은 실제로 방송물을 꽤나 먹은 인물처럼 보인다.

[굿모닝 에브리원]은 브라운관에 나가는 모습과 달리 사실은 아비규환에 가까운 방송제작의 이면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방송도 사람사는 동네의 이야기다. 거기에도 땀과 눈물이 있다. 우리들의 일상도 그렇다. [굿모닝 에브리원]이 특정 분야의 작은 우주 얘기같지만 결국 우리들의 일반적 삶, 큰 우주의 얘기를 하는 영화로 생각되는 건 그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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