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유재석이 고덕동에서 만난 진짜 어른

[엔터미디어=정덕현]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고덕동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세탁소.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의 유재석과 조세호를 맞은 이태석(64세)씨는 그 곳에서만 35년 간 일을 해왔다고 했다. 아침 6시면 나와 밤 10시,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일하고, 토요일도 학생들 교복을 맡기는 분들이 많아 일요일만 쉰다는 아저씨는 거의 주 90시간을 꼬박 세탁소에서 보내고 계셨다.

놀라운 건 세탁 일을 한 지가 무려 50년이 됐다는 사실이다. 64세의 나이라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반백년을 한 길을 걸어왔다니.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막내가 갓 백일이었다고 했다. 홀어머니에 동생 셋을 건사해야하는 상황에 놓인 장남 이태석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세탁 일을 배웠다고 했다. 당시 겨우 열 네 살 소년이었다. 한 때 그래도 직업군인이 되고 싶었다는 아저씨는 키가 작아 못했고 이 일을 천직이라 여기가 살았단다.



세탁 노하우를 묻는 유재석에게 툭 던지는 아저씨의 답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어떤 분 하나라도 옷을 맡기면 나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게 아니고 ‘정성이 노하우’라는 것. 그 날의 공식질문이었던 “나에게 스스로 상을 준다면 어떤 상을 주겠냐?”는 질문에도 아저씨는 생각 자체를 안 해봤다고 했다. 다만 열심히 살았을 뿐이고 상은 한 번도 받아본 적도 없다는 것.

대신 아저씨는 배달을 하면서 기분 좋았던 일화를 들려주셨다. “옷을 맡기셨는데 주머니가 터졌는데 그걸 내가 꿰매서 줬더니만 손님이 입어보고 주머니 빵구난 거 안 들어가니까. 그 손님이 그러더라구요. 존경한다고...” 아저씨에게는 그런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 어떤 것보다 기억에 남는 상이었다.

그런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같이 수십 년을 똑같은 일을 반복한 그 성실함은 어디서 왔을까. 지금 그 가게를 샀을 때가 제일 행복했다는 아저씨는 서른 살까지 남의 집 살이를 했다고 했다. “제가 어릴 때 배를 많이 곯았어요.. 거의 한 5일을 굶어봤는데 길 가다가 대추를 하나 주웠는데 목에 안 넘어가더라고 밥을 안 먹어서 붙어서 그런가.” 아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 통닭 한 마리를 못 사줘 다리하고 중간 갈비하고 있는 걸 사다준 게 지금도 미안하다는 아저씨. 아마도 가족들에게 그런 가난은 겪게 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당시 한 달 월급으로 만원을 받았다는 아저씨. 그 가치가 얼마인지 알기 위해 조세호가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을 묻는데... 아저씨는 드라이 가격이 300원이었다고 말한다. 짜장면 한 그릇을 먹는 것보다 드라이 하나를 더 하는 것이 아저씨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었나 보다.

딸은 결혼해 캐나다에서 살고 서른 살 아들은 경찰공무원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는 아들 취업 걱정만 하셨다. 어려서는 동생들 걱정하고 나이 들어서는 자식 걱정하는 아저씨. 신께서 단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준다면 어떤 소원을 빌고 싶냐는 질문에도 아저씨는 주저없이 “아들 취업”을 얘기하셨다.

왜 돈을 많이 갖게 하면 좋지 않냐는 조세호의 질문에 아저씨는 돈 많으면 살기가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적당하게 해서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하고 빚 없고 그렇게 살면 딱 좋은 거예요. 글쎄 돈이 많으면 좋겠지요. 저는 그렇게 많을 필요가 없어요. 살아갈 수 있는 만큼만 있으면 좋겠어요. 이거 해서 열심히 먹고 살면 딱 좋아요.” 아마도 많은 보통의 서민들의 꿈이 이럴 것이다. 굉장한 부자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저 편안히 살 수 있는 것.



마침 생일에 맞춰 귀국해 있던 딸은 아버지의 촬영소식을 듣고 동생과 함께 세탁소를 찾았다. 딸 이선아씨는 아빠가 어떤 아빠였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하셔서 밤에 늦게 오셨어요. 아빠 소원이 가게 하는 사람만나지 말고 회사 다니는 사람 만나야 졸업식도 휴가 내고 갈 수 있다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다 정적 아들 딸 졸업식도 못갔던 게 못내 마음에 남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아들이 툭 던지는 말이 너무나 먹먹했다. “저는 이렇게 살고 싶었어요. 너무 너무 부지런하셔가지고요. 그냥 맨날 새벽마다 나가시고 아빠는 항상 아침 6시면 일어나가지고 일 나가시고 그러셔가지고.. 이렇게 가장 존경하고... 그런 부지런함이랑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 되게 닮고 싶더라구요. 그 전에는 몰랐는데 정말 정말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이시구나 이렇게 느껴져 가지구.. 그리고 여기 보시면은 저도 얼마 전에 알았는데 여기 아빠가 맨날 서 있잖아요 이게 시멘트인데 바닥이 파져 있어요.”

딸은 아빠가 진짜 성실하시다며 매일 같이 아침 7시에 열고 밤 10시에 문 닫는 그 스케줄이 ‘누구나 하는 일인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빠의 자서전을 쓰게 된다면 첫 문장을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딸은 “누군가의 첫째 아들, 누군가의 가장, 누군가의 남편, 그리고 이태석”이라고 말했다. “아빠 성함을 제일 처음 못 올리는 이유는 아빠 자서전인데도 불구하고 아빠에게 따랐던 부수적인 책임감들이 너무 많으셨던 것 같아요..” 이런 분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어른이 아닐까.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고덕동의 세탁소 장인에게서 우리 시대 진짜 어른의 모습이 그려졌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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