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가요에 이은 주부 가요열창, 중장년을 위한 TV 세상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조선 예능 <미스트롯>은 방송가에 큰 힌트를 남겼다. 기존 방송사는 2030세대, 적어도 광고 단가에 직결되는 2049세대를 위한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는 논리는 합리적이고 보편적이며 마땅한 상식이었다. 그런데 송가인, 홍자, 숙행 등을 앞세운 성인가요가 이 상식을 뒤엎었다. 중장년층이 지배하는 TV시장에서 굳이 왜 떠나가는, 거대하지만 유입되지 않는 아이돌 팬덤을 바라볼 이유가 있는지 근원적인 물음을 던졌다. 이는 기존 세계관을 뒤흔든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미스트롯>을 기점으로 예능과 드라마로는 답이 전혀 보이지 않던 TV조선은 ‘맛’ 시리즈 로 단박에 가장 높은 타율을 자랑하는 예능국으로 우뚝 섰다. 이 성공은 고루한 브랜드 이미지를 가진 이웃 종편들에게 직접적인 자극으로 작용했다. 젊은 감각으로 예능강국이 된 JTBC를 따라서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다리에 집어넣을 필요가 더 이상 없어진 거다. 남들이 다 입으니까 따라서 보여주기 위한 값비싸고 요란한 스트리트패션 브랜드 대신 자사 콘텐츠를 보는 시청자들을 위한 반짝이 옷을 꺼내오기 시작했다.



<미스트롯>이 밤무대를 포함한 성인가요를 안방 무대로 가져와 감동과 울림을 줬다면 MBN <보이스퀸>은 ‘주부’를 내세운 서바이벌쇼로 노래의 감동과 공감을 선사한다. 1회 방송을 여는 MC 강호동의 외침부터 목표가 명확하다. “80명의 참가자들은 살림과 육아, 경력단절에서 벗어나 오늘 이 자리에 화려한 외출을 결심했습니다~!” 오직 주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내세운 만큼 <미스트롯>의 무명 가수를 주부로 치환하면 된다. 길고 긴 방송시간이나 함께하는 오프닝 무대나 노래 이외에 인생 사연을 듣는 것까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장년층에게 매우 익숙하면서도 에너지가 필요한 무대에 제격인 MC 강호동을 비롯해 태진아, 인순이, 박미경, 김혜연, 김경호, 이상민 등 익숙한 얼굴들을 전면 배치했다.

참가자 개개인은 각자의 캐릭터와 사연이 있다. 경기민요 전수자이자 송가인의 친구 이미리, 거제도 윤시내 김은주, 재즈보컬리스트 정은주, 폭탄머리를 한 한국의 티나터너 전영분, 췌장암 극복 중인 긍정주부 배덕순, 미사리를 뒤흔든 싱글맘 정수연, 주부미인대회 출신 김세미, 아픈 남편을 위해 나온 최세현, 효심으로 나온 트로트 요정 강유진, 헌신의 아이콘 고나겸, 완도 소찬휘 황인숙, 아는형님 pd출신 허서문, <약손> 원곡자 전영랑, 힙합전사 주부 성은혜, 보이시 퀸 이도희, 열정의 60대 로커 안소정, 스타노래 강사 나예원 등등등 2회의 경우 무려 3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현역 가수부터 노래를 잘하는 아마추어 주부까지 80명의 참가자 모두 ‘몇 년차’ 주부라는 신분을 공유하며 각자의 사연과 재능으로 감동의 인생 역전 스토리를 들려준다.



출중한 노래 솜씨에 사는 이야기, 남편의 지지, 아이에 대한 사랑, 가족의 소중함과 애틋함 등 보편의 정서를 건드리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더해지고, 삶의 페이소스에 조명을 비추고 무대에 의미를 부여한다. 노래는 살림, 육아, 경력단절과 여러 인생의 아픔을 딛고 다시 꿈을 꾸고, 다시 꿈에 도전하게 만드는 용기이자 수단이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기구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아픔을 드러내는 솔직한 자기 고백과 사연들은 중장년층 시청자, 같은 주부 시청자의 심금을 강타한다. 나와 다르지 않는, 혹은 쉽지 않게 살아온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는 응원하도록 하는 동력을 이끌어내고 노래 솜씨는 당위를 만들어내기 적절한 코드다. 게다가 이 작은 땅에 이토록 숨겨진 재능이 많다니 뭔가 벅찬 감정도 든다. 이처럼 <보이스퀸>은 <미스트롯>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히 보이는 중요한 핵심 요소들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몇 가지 변주를 더해 중장년 시청자들을 다시금 사로잡았다.

<동치미><알토란><엄지의 제왕> 트로이카로 종편 중 가장 먼저 예능 시장에서 치고나갔던 MBN은 그 이후 여러 편의 ‘젊은 예능’을 내놓았지만 대부분 무위로 돌아갔다. 가장 믿음직한 동료였던 채널A마저 <도시어부>라는 간판 예능을 터트리며 격이 달라졌다. 그렇게 가장 뒤쳐졌던 MBN이 새롭게 내놓은 <보이스퀸>은 지난 21일 무려 2시간이 훌쩍 넘긴 편성에도 불구하고 첫 회부터 5%를 넘으며 자사 역대 첫 방송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웠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28일 방송된 2회 역시 수직 상승하며 7.5%를 돌파, 목요 예능을 평정하는 기염을 토했다. 화제성과 시청률을 모두 잡으며 대박을 낸 <보이스퀸>. 이쯤 되면 송가인 못지않은 히트 상품 등장만 남은 셈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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