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캐스팅을 내세운 예능은 성공할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예능 시청자들에겐 풍성한 가을이다. 전통적인 개편철을 맞은 데다 파일럿, 시즌제가 우리 방송가에서도 스탠다드로 자리 잡은 까닭에 다양한 신규 예능을 만날 수 있는 요즘이다. 관찰예능의 범주에 들어가는 몇 가지 장르가 롱런하면서 새로움에 대한 갈구도 여전한 상황에서 이번 가을 굉장히 고전적인 방식의 프로그램이 두 편이나 런칭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SBS의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는 박중훈, 김혜수, 이승연 등에 이어 명맥이 끊겼던 배우가 진행하는 1인 토크쇼고, <정해인의 걸어보고서>는 핫한 장르인 여행예능인데 마찬가지로 정해인이란 배우 캐스팅을 내세운다.

2000년대 중반까지 톱 배우의 예능 캐스팅이 이슈가 되고 마케팅이 되었던 건 무대가 달랐기 때문과 보이지 않는 장르의 서열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예능은 전통적인 예능인들을 밀어내고 배우, 가수를 비롯한 다양한 직종의 종사자들의 무대가 되었고, 모든 방송 장르를 아우르는 블랙홀이자 인기 장르로 우뚝 섰다. 그런 이때 올드스쿨한 마케팅과 방식으로 접근한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2회 차 방송을 마친 <정해인의 걸어보고서>는 KBS가 최근 드라마 편성을 줄이는 지상파 트렌드에 따라 월화드라마 자리에 편성한 예능프로그램이다. 이름에서 유추되듯이 KBS의 장수 교양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모티브로 삼는다. PD가 기획, 출연, 촬영, 연출 등 1인 다역을 담당하는 프로그램 특성상 경험 많은 선배 PD를 만나 조언을 구하고, 여행 다큐멘터리 찍는 법을 강습 받은 다음 버킷리스트였던 뉴욕으로 떠난다. 초짜 여행가라는 입장에 맞게 록펠러센터,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뉴욕공립도서관, 그랜드센트럴역 등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를 다니고, 우리에게 뉴욕 3대 버거로 익히 잘 알려지고 분점도 들어와 있는 버거집들과 <스트리트푸드파이터2> 뉴욕 편에 나온 맛집을 찾아가 먹방을 보여준다.

그런데 설정이나 준비과정을 생각해봤을 때 정해인 혼자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고군분투를 지켜보는 예능인 줄 알았지만 막상 뉴욕에서는 촬영이나 제작에 참여하지 않는다. 정해인의 얼굴과 뉴욕의 비중이 6:4 정도로 비춰주는데 스토리라인이 없는 화보 메이킹 필름을 보는 듯하다.



오늘날 여행 예능은 <배틀트립><짠내투어>처럼 새로운 정보, 즉 ‘꿀팁’을 전달하거나 <윤식당><현지에서 먹힐까>처럼 ‘판타지’ 세계를 만들거나, <시베리아 선발대>처럼 이 둘을 적절히 배합해 동시에 전달하는 데서 재미를 찾는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고서는 별다른 여행 정보를 찾을 수 없다. 매우 익숙한 뉴욕의 관광지를 다니는데, 그 주인공이 몇 가지 감탄사를 돌려 말하는 말주변 약한 출연자다.

그러다보니 빈자리를 채우려는 제작진의 과한 감성의 예능 자막이 더해진다.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느껴지는 건 전반적인 어색함에서다. 특히 주변을 세팅하거나 많은 카메라를 투입하여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최대한 전해지도록 제작하는 여타 여행 예능과 달리 카메라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어색한 시선이 노골적이다. 주변과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했다는 뜻이다. 즉, 문화적 용광로 뉴욕답게 교양, 예능, 화보, 감성적인 음악이 뒤섞였는데 결과물이 썩 새로운 믹스앤매치라고 하긴 어렵다.



그래서 걷기에 동행하다보면 이 프로그램이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방송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자, 회자된 포인트가 여행 정보나 먹방보다 뉴욕의 야경을 보면서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는 장면이었다. 배우라는 타이틀을 뗀 정해인을 만날 수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여행보다는 정해인의 순수 민낯에 포커스가 가다보니 팬을 위한 방송인지, 여행 예능인지 어떤 지점에서 ‘시청률 포인트’를 삼고 있는지 모호하게 느껴진다.

정해인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꼭 가고 싶었던 이유를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자신의 평행이론을 들어 설명했다. 출연 드라마의 배역과 톰 행크스의 처지가 겹치고, 같은 곡이 O.S.T에 삽입되었기 때문이라는데 버킷리스트에 넣기엔 궁색한 이유였다. 다시 말해 뉴욕이어야만 했던 이유, 시청자들에게 전할 수 있는 효용에 대해서 어느 정도 깊이를 갖고 고민했는지 드러내는 대목이라 생각된다.



<스트리트푸드파이터>가 음식이란 콘셉트, <비긴어게인>이 음악이란 콘셉트가 있는 것처럼 정해인을 내세운 만큼 정해인과 뉴욕과 여행이 어우러지는데서 나오는 새로운 볼거리와 재미가 아쉽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장점은 눈높이다. 여행 예능이 워낙 쌓이면서 언어 구사나 준비 과정에서 이제 입문 과정은 모두 건너 띈다. 볼거리도 포털사이트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은 피하는 추세다.

그런데 정해인은 여행 초짜라고 위축되거나 짧은 영어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가장 정석적인 여행을 한다. 해외여행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고수의 무심함이나 드러내길 좋아하는 인스타의 감성, 새로운 곳만 파고드는 힙스터의 마인드 대신 설렘과 낯섦과 약간의 위축과 불안을 가진 여행 초심자의 모습을 오랜만에 볼 수 있는 순수함만큼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