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억의 여자’, 조여정 언제부터 믿고 보는 배우가 됐나

[엔터미디어=정덕현] KBS 새 수목드라마 <99억의 여자>가 첫 방송을 내놨다. 사실 부담스런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전 드라마였던 <동백꽃 필 무렵>이 워낙 큰 성취를 거뒀기 때문이다. KBS로서는 드라마의 위기론까지 나오던 시점에 <동백꽃 필 무렵>은 최고 시청률에 화제성까지 가져가며 대중들에게 ‘올해의 드라마’로 남았다. 그러니 <99억의 여자>는 시작부터 만만찮은 부담을 갖고 시작한 게 사실이다.

첫 회만으로 <99억의 여자>가 <동백꽃 필 무렵>의 인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첫 회는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서사의 틀을 소개하고 있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남편과 힘겨운 생활고로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정서연(조여정)이라는 인물과, 그가 친구인 윤희주(오나라)의 남편 이재훈(이지훈)과 불륜 관계라는 게 소개되었다.



그렇다고 불륜남 이재훈이 정서연에 대한 진심이 없다는 것도 드러났다. 그저 욕망뿐이라는 걸 정서연도 알고 있다. 그러니 그의 삶이 얼마나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가를 미루어 알 수 있다. 드라마는 그가 물 밑으로 조금씩 가라앉는 장면을 연달아 인서트로 집어넣어 그 심경과 처지를 연출해낸다.

그러던 정서연에게 뜻밖의 기회 혹은 또 다른 비극의 서막이 될 사건이 발생한다. 한밤 중 전복된 차량에서 어마어마한 현금 돈 다발이 발견된 것. 한 사람은 이미 사망했고 그 자리에 있던 강태현(김현우)은 겨우겨우 살아있었지만 정서연은 사고 신고를 하려다 만다. 돈이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어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자리에 함께 있다 공모자가 된 이재훈은 앞으로 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것이지만.



이 정도의 이야기 전개라면 이제 정서연이 훔치게 된 돈 100억을 둘러싸고 벌어질 급박한 사건들이 어느 정도 예상될 게다. 죽은 강태현이 ‘국무총리 김덕진’이라 새겨진 시계를 차고 있었던 걸로 보아 그 돈은 정치 비자금일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그 돈을 찾기 위해 조직적인 힘이 움직일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지키려는 자와 돈을 찾으려는 자 사이의 대결구도가 세워졌고, 죽은 강태현의 형 강태우(김강우)가 전직 형사 출신이었다는 사실과 지극히 이기적이고 욕망덩어리인 이재훈의 개입으로 사건은 복잡한 양상을 띨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된 돈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이라는 소재 그 자체는 신선하다 보기 어렵다. 중요한 건 이런 사건이 정서연이라는 인물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가다. 희망 없이 살아가는 그는 갑자기 굴러 들어온 돈이 야기하는 욕망으로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가. 그리고 그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 그런 것들이 이 드라마가 주는 진짜 궁금증이다.



아직 더 들여다봐야 드라마의 향방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주목되는 건 조여정이라는 배우가 주는 존재감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조여정의 존재감이 커졌는지 모르지만, 어쩐지 그가 있어 드라마에 대한 막연한 신뢰감이 생기고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 남다른 연기로 몰입감을 선사했던 그 잔상이 강렬하게 남아서일까.

조여정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건 <99억의 여자>가 가진 가장 큰 이점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드라마의 초점은 이 희망 없던 삶에 갑자기 어마어마한 돈이 굴러 들어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로 인해 변해가는 이 여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부담도 크겠지만 과연 조여정은 이런 기대감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이 드라마의 관건이 바로 거기에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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