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의 괜찮았던 구도, 하지만 결국 불륜드라마 틀로 가나

[엔터미디어=정덕현] 결국은 불륜드라마의 틀로 가는 건가. SBS 월화드라마 ‘VIP’는 불륜을 소재로 끌고 가면서도 그 일이 벌어지는 백화점 VIP 전담팀이라는 배경을 통해 돈과 권력에 의해 나눠지는 갑과 을의 세계를 병치했다. 바로 이 점은 이 드라마가 단순히 불륜이 가진 틀에 박힌 이야기를 벗어나게 해주는 지점이었다.

그래서 사실 초반 나정선(장나라)이 의심하던 남편 박성준(이상윤)의 불륜이 일종의 오해이기를 바란 면이 있다. 불륜녀로 의심되던 온유리(표예진)와의 불륜이 아니라, 부사장의 지시로 그를 관리하다 보니 박성준이 받게 된 오해였기를 바랐던 것. 그래야 이야기는 불륜으로 가지 않고 VIP와 그들을 보좌하는 이들 사이의 만들어지는 갑을 관계의 사회적 이야기로 나갈 수 있었다.

실제로 박성준이 낯선 여자에게 봉투를 건네며 “부사장님이 관계를 끝내고 싶어 하십니다”라고 말하는 장면과, 그 내연녀를 보내고 갑자기 구토를 하는 장면에서 박성준은 불륜이 아닐 거라는 심증이 짙어졌다. 만일 그가 진짜 불륜이라면, 타인의 불륜을 처리해주며 구토하는 것이 너무나 이율배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런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보다 의미를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사회적 메시지로 나가기보다는 불륜드라마의 정공법으로 흘러갔다. 박성준과 온유리는 불륜관계가 맞았고, 온유리는 부사장의 딸이라는 게 밝혀졌다. 물론 이 상황에서도 팀원이 부사장의 딸이라는 게 드러나면서 만들어지는 팀 내의 미묘한 서열 구조가 전하는 의미가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점점 박성준과 온유리라는 캐릭터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들로 끌어갔다. 불륜 사실을 나정선에게 들키고 그건 이미 지난 일이라고까지 이야기했던 박성준은 엉뚱하게도 온유리를 다시 만나고 있었고, 온유리는 부사장의 숨겨진 딸로서 모친상까지 겹쳐 불쌍한 인물처럼 그려졌지만 알고 보니 거리를 두려는 박성준을 끝까지 흔들어 놓았고, 심지어 그 가정을 파탄내기 위해 나정선에게 문자를 보냈던 장본인이었다.

이 드라마가 불륜드라마의 공식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박성준이나 온유리라는 인물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공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것이 사실 불륜이 아니었다거나, 불륜이 일어난 것이 일회적인 사건이었다거나 해야 그들을 그렇게 만든 주변적 상황들이 사회적 메시지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런 선택 대신 전형적인 불륜드라마의 틀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온유리가 그 문자를 보낸 사실을 알게 된 나정선이 그를 만나 뺨을 올려 부치는 장면이 예고편이 등장했다. 그건 전형적인 불륜드라마의 장면이 아닌가. 온유리는 이로써 시청자들의 분노유발자가 되었고, 그와 불륜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박성준 역시 답답하기 그지없는 바보 같은 캐릭터로 전락했다.

어째서 이런 선택들을 한 것일까. ‘VIP’는 그 소재 자체가 훨씬 확장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그런 드라마였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너무 쉬운 선택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불륜 소재의 자극적인 면들과 사회극이 갖는 무게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던 드라마가 한쪽으로 확 기울어지는 느낌이다. 끝까지 봐야 이 드라마의 진정성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현재의 상황만으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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