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화 된 EBS 콘텐츠, 이젠 걸맞는 감수성이 요구된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이하 보니하니)>는 2003년부터 지금껏 방영되어 온 EBS의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이다. 보니와 하니 역할을 맡은 MC들은 계속 바뀌었지만, 그렇게 오래 방송을 하면서도 논란을 일으킨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연달아 논란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무엇이 이 아이들 프로그램, 그것도 교육방송의 프로그램에 논란을 만들어냈을까.

그 발단은 지난 10일 <보니하니>의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에서 비롯됐다. 개그맨 최영수가 자신의 팔을 붙잡는 MC 하니 역할의 채연을 뿌리치며 때리는 모습이 방송에 나간 것. 온라인에서는 즉각적으로 ‘최영수 폭행 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그 행동이 보기 불편했다는 것이다. 어른이 미성년자를 때리는 듯한 모습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최영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결코 때린 적이 없고, 자신에게 채연은 조카, 친동생 같은 아이라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의심을 벗은 눈으로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상황극”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이 무섭다”고도 했다. “요즘 펭수가 떠서 화살이 EBS로 쏠렸나” 하는 의혹까지 얘기했다.

실제로 채연 측은 폭행은 없었다고 했다. 결국 그 장면은 최영수의 말대로 그런 상황이 연출된 것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아이들이 보는 프로그램에서 친하다고 아이를 때리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는 건 과연 괜찮은 일일까. 또 대중들이 불편함을 느낀 것이 꼭 진짜 때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런 연출 자체가 너무 시대착오적이어서는 아니고?

이 문제는 같은 프로그램의 다른 출연자인 박동근에게로 불똥이 튀었다. 과거 방송에서 박동근은 채연에게 다가와 너에게서 리스테린 냄새가 난다며 “리스테린 소독한 X”라고 농담 섞인 얘기를 던졌다. 또 “채연이는 의웅(보니 역할의 남자 MC)이와 방송해서 좋겠다. 의웅이는 잘생겼지, 착하지, 그런데 너는...”이라고 했고, 채연이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냐”고 묻자 박동근은 재차 “리스테린 소독한 X”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것 역시 박동근에게는 그저 농담이었을 게다. 그만큼 친하기 때문에 툭툭 던지는 농담. 하지만 그것을 듣는 시청자들도 그저 농담으로 들을 수 있었을까. 본래 성희롱이란 당사자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당사자는 그게 익숙해져서 그냥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판정할 때 제3자의 객관적인 시선이 반드시 들어간다. 당사자들은 그게 익숙하고 친해서 한 행동들이라고 해도 제3자인 대중들이 봤을 때 그건 불편한 성희롱이자 폭력처럼 여겨졌다는 점이 그래서 중요하다.

결국 EBS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김명중 사장이 직접 공식 사과문을 내놨다. 사과문에서 김명중 사장은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이번 사고가 “출연자 개인의 문제이기에 앞서 EBS 프로그램 관리 책임이 크다”고 명시했다. 공식 사과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커지자 EBS는 초강수를 뒀다. <보니하니> 제작진을 전면 교체하고 방송을 잠정 중단키로 결정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과 대처방식은 옳았다고 볼 수 있다.

개그맨들 개인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이 일차적인 책임이고, 그것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관리하지 못한 제자진과 EBS 경영진들의 책임 또한 피할 수 없다는 걸 거듭된 사과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펭수가 신드롬급 인기를 끌면서 EBS의 방송사 이미지는 상당한 변화를 만들고 있다. 교육방송으로서 교육적이고 교양적인 방송사의 이미지만 갖고 있던 데서, 이제는 예능적인 재미까지 더한 방송사로 이미지가 바뀌어가고 있는 것. 실제로 최근 몇 년 간 EBS에 상당히 많은 개그맨들이 출연하고 있고, 타 방송사에서 활동하던 예능인들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이번 사태는 지금껏 지상파들이 달라진 시대의 감수성 때문에 무수히 논란과 질타를 받으며 변화해온 그 과정들을 이제 EBS도 겪게 됐다는 걸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건 다름 아닌 예능화가 진행되면서 생겨난 일들이다. 교육과 교양에 재미와 웃음을 주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 재미와 웃음이 지금의 달라진 감수성에 과연 합당한가를 이제는 EBS도 관리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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