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이상윤 캐릭터도 별로 연기도 딱히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SBS 월화드라마 ‘VIP’를 단순 불륜 드라마로 보기에는 좀 아쉽다. 특히 VIP 전담 팀장 이현아(이청아)의 스토리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극 초반 이현아는 나정선(장나라)의 절친이자 나정선이 박성준(이상윤)과의 불륜으로 의심하는 직장동료 중 한 명이었다.

더구나 시청자 역시 의심이 가도록 이현아를 비밀스러운 캐릭터로 만들었다. 백화점 VIP 담당인데, 지극히 가난한 생활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 후, 이현아의 비밀은 모친의 빚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이현아는 현실에 지쳐 직진으로 다가오는 남자 차진원(정준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니, 그러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하지만 ‘VIP’ 후반부에 이현아의 새로운 비밀이 드러난다. 한때 열혈 알파걸이던 이현아는 함께 일하던 상사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한 사실이 있다. 이현아는 그 끔찍한 위기를 겨우 모면하지만, 이후 이현아는 공포와 무기력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어머니의 빚도 있고, 좋은 직장을 버릴 수는 없기에 계속해서 회사 생활을 이어간다. 이현아의 서사가 후반부에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VIP’는 메시지가 강한 서사를 자연스레 만들어낸다. 더구나 이현아가 자신의 아픈 상처를 세상에 드러내는 이유는, 직장 후배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송미나(곽선영)가 같은 상사에게 똑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VIP’는 드라마의 주요서사인 박성준과 온유리(표예진)의 불륜 외에도 이현아와 송미나의 서사를 꽤 높은 비중으로 다룬다. 송미나에게도 사실 비밀이 있는데, 그녀가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남편에게 그 사실을 숨긴 것이다. 송미나는 일과 직장을 병행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세 번째 아이를 지울지 말지 고민에 잠기기도 했다. 이 또한 이현아와 마찬가지로 직장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고뇌의 순간이다. 그리고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청아나 곽선영 역시 굉장히 자연스러운 직장여성 연기의 디테일을 보여준다.



‘VIP’는 사실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세련된 작품이다. 나정선, 이현아, 송미나의 삶을 미스터리처럼 보여주면서 동시에 직장여성의 현실감 있는 고민들을 표면 위로 서서히 드러낸다. 그 기법 때문에 이 드라마는 여성 직장인의 현실과 고민에 대해 강력하게 대사로 밀어붙이지 않으면서도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수긍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맡은 일을 잘하고 라인을 잘 타야 성공하는 눈에 보이는 조직문화 외에 여성들의 직장생활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복잡한 문제들이 있다. 그 문제 때문에 발목이 잡히거나, 상처를 입거나, 심지어 회사를 떠나는 경우도 벌어진다. 딱 여기까지만 보면 ‘VIP’는 여성판 ‘미생’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VIP’는 정작 남자주인공인 박성준의 캐릭터와 서사 때문에 이 장점들이 묻혀버린다. 박성준은 여러 모로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기 힘든 인물이다. 합리적이고 이지적인 이 남자는 온유리(표예진)와 불륜 관계다. ‘VIP’는 이 박성준의 외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박성준과 온유리 모두 혼외자식으로 처리한다. 박성준은 같은 혼외자식인 온유리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동정하며,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함께 인생을 설계하는 동반자 같은 나정선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종류의 열정인 것이다. 그런데 이 열정이 그다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불륜을 위한 변명처럼 느껴진다.



더구나 박성준은 상당히 복잡한 캐릭터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사를 모두 숨기고 있다. 당연히 무표정 속에서도 섬세한 연기가 드러나야 한다. 과연 배우 이상윤이 박성준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했는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물론 무표정하기는 하다. 이상윤은 어느 감정이든 객관식 오지선다형 같은 표정과 말투로 연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지루하고, 가뜩이나 공감을 얻기 힘든 박성준 캐릭터는 불륜이 들켜도 변명하고 대답하기 귀찮아하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상황이 이러니 박성준은 불륜남에다가, 재미도 없고, 회피하기 바쁜 ‘쫄보’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불륜남 캐릭터는 딱 욕먹기 좋은 존재이기는 하다. 하지만 과거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의 배우 김상중 같은 경우는 욕받이 남자주인공이면서도 탁월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김상중의 연기도 한몫했다고 본다. 불륜녀와 감자 쪄먹는 평범한 장면에서도 김상중은 특유의 몰입도를 만들어냈다.

사실 모든 어머니들의 듬직한 막내아들이나 사윗감 같은 이상윤도 어느새 중견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이상윤은 최근 몇몇 로맨스 드라마에서 괜찮은 장면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VIP’의 박성준은 아니다. 그의 연기만으로 ‘VIP’ 후반부의 팽팽한 긴장감은 금방 무너져 내릴 때가 많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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