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슬이 결국 ‘너튜브’와 연결되는 이유 : 지상파 방송사들의 주적(主敵) 변화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유산슬이 마침내 SBS 전파도 탔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만들어진 유재석의 트로트 가수 캐릭터 유산슬은 MBC의 예능 콘텐츠이다. 그런 유산슬이 지난달 KBS <아침마당>에 등장하더니 18일에는 SBS <영재발굴단>에까지 출연, 지상파 3사 사이 벽을 모두 넘어서는 통합을 이뤄냈다.

우선 유재석이라는 톱 MC의 힘이 컸다고 볼 수 있다. KBS <해피투게더>, SBS <러닝맨> 등 지상파 3사 모두에서 간판 예능을 이끌고 있는 유재석의 캐릭터이기에 벽을 허무는 데서 발생할 수 있는 거부감이나 부담감을 줄여준 듯하다.

하지만 유재석만으로는 옅어진 벽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유재석이 지상파 3사 동시 예능 진행을 한 지도 십수 년인데 왜 이제야 통합이 이뤄졌을까. 지상파 방송사 사이의 경계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을까.

지상파 3사 프로그램에서 타 방송사명과 프로그램 이름을 언급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지상파만 있었거나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만 있던 환경에서는 그러했다. 지상파끼리의 경쟁이 치열했고 케이블 방송사는 영향력이 미약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타방송사에 대해 K본부, M본부, S본부라는 명칭을 쓰면서 상대에 대한 언급이 시작됐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재미있자고 쓰는 표현이었지만 분명 견고했던 벽에 균열이 생긴 전환점이었다. 이런 변화는 점차 더 확산돼 현재는 방송사명과 프로그램 이름을 정확히 언급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게스트가 출연하는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들을 제약 없이 밝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언급에 그치지 않는다. <놀면 뭐하니?>에서는 KBS 로고가 화면에 나가거나 동시간 경쟁 프로그램인 KBS <불후의 명곡> 자료 화면이 나오기도 했다. KBS의 <해피투게더>에서는 올해 들어 종편과 케이블의 히트 드라마인 <스카이 캐슬>(JTBC) <호텔델루나>(tvN) 출연진을 특집으로 꾸며 이에 대한 방송사 내부 논란이 전해지기도 했다.

방송사간 경계 완화 추세를 따져 보면 눈길이 가는 용어가 하나 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사용되는 ‘너튜브’다. 이 역시 과거 ‘K본부’같은 말처럼 재미를 노리는 표현이다. 원래 단어인 유튜브도 혼재해서 사용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타 방송사들을 명칭 그대로 부르는 이 시점에 왜 유튜브만은 ‘너튜브’라는 별칭을 사용하는 의미는 뭘까.

호칭을 살펴보면 주적(主敵)을 가늠할 수 있다. 치열한 경쟁을 하는 상대는 언급도 안 하거나 좀 완화돼도 ‘본부’를 사용해 정확한 실체 전달을 피했다. 지금 지상파 방송사들의 주적은 서로가 아니라 유튜브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너튜브’가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 유튜브는 2016년 아프리카티비 BJ들이 대거 유튜브로 넘어오면서 영향력을 갖추기 시작하고 급성장을 거듭했다. 지난달 유튜브 아시아 담당 임원이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는 지난해 대비 시장 규모가 두 배로 늘어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많은 이용자와 광고 수입을, 유튜브를 필두로 한 온라인 플랫폼에 빼앗긴 지상파 방송사들은 최근 들어 엄청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동영상 광고 점유율 1위를 달리는 유튜브를 주적이지만 마지못해 손을 잡는 모양새도 나타나고 있다.

뉴스나 다큐멘터리 관련 채널(MBC <14F>, SBS <스브스뉴스><그것이 알고 싶다>)을 유튜브에 열거나 <무한도전> <거침없이 하이킥> <공포의 쿵쿵따> <위험한 초대> <순퐁산부인과> 등 과거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짧게 편집한 클립인 매쉬업을 업로드하면서 유튜브에서도 광고 수입을 창출하는 시도에 나서고 있다.

유튜브 시대 개막과, 지상파 방송사의 벽 완화는 어딘가 맞물려있다. 물론 벽 제거에는 종사자들 개인의 의지가 작용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시청자들은 다 아는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언급 회피를 불필요하게 여기는 제작진들도 분명 존재해왔고 서로에게 이익이라면 타 방송사와의 콜라보도 굳이 외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실리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지상파 방송사들이 벽을 넘어 서로의 손을 잡게 만든 결정적 동력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인 유튜브가 아닐까 싶다.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한국과 일본도 손을 잡고 맞서 싸울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영상 플랫폼 시장 지배력이 방송사에서 유튜브로 넘어가는 추세는 현재진행형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친분’도 더 깊어질 것 같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SBS, 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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