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 살리는 현빈의 진지순수·손예진의 엉뚱발랄

[엔터미디어=정덕현] 6% 시청률(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tvN 토일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4회만에 8.4%로 고공행진을 시작했다. 첫 시청률은 아무래도 현빈과 손예진이라는 배우가 출연한다는 사실이 주는 기대감이 만든 수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지속적인 시청률 상승과 화제가 이어지고 있는 건 이 작품이 가진 재미요소들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첫 회에 대한 대중적 호불호는 분명히 나뉘었다. 현 시국이 남북한 긴장국면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그랬고, 판타지와 병맛이 뒤섞인 듯한 코미디 설정이 그랬다. 하지만 윤세리(손예진)가 리정혁(현빈)의 집에 ‘불시착’하듯 들어와 마을 사람들에게 약혼녀라 소개되면서 본격화된 로맨틱 코미디는 시청자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사랑의 불시착>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역시 캐릭터와 그 케미에서 비롯된다. 리정혁이라는 북한 총정치국장 아들은 북한 소재 버전으로 새롭게 해석된 판타지 남자주인공의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북한 내 권력자의 아들이지만 민경대대 5중대에서 복역하고 있는 이 인물은 연애 좀 해본 듯한 윤세리의 시각으로 보면 순수와 순진이 뒤섞인 남성이다. 무뚝뚝하고 별로 웃지 않으며 매사 진지하지만 그러면서도 보이지 않게 마음을 쓰는 인물. 게다가 그는 스위스에서 유학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이 로망하는 권력자의 아들이면서 순수하고 순진하며 진지하면서도 로맨틱한 감성까지 갖춘 판타지적 존재가 바로 리정혁이다.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불시착한 윤세리는 꼬리가 아홉은 달린 듯한 여우짓(?)을 하면서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 느껴지는 캐릭터다. 리정혁과 부대원들의 그 순진함 속에서 윤세리가 허세를 부리거나 머리를 굴려 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상황들은 그래서 이 ‘북한에 떨어졌다’는 무거운 상황을 가벼운 코미디로 전환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윤세리와 리정혁 그리고 그 부대원들과의 케미는 그래서 이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몰입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윤세리를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마음을 쓰는 리정혁의 모습은 드라마 속 북한 동네 아줌마들이 표현하듯, “심장을 나대게” 만든다. 검열을 들어온 조철강(오만석) 앞에서 자신의 약혼녀라고 말하거나, 배를 타고 월남하려다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키스를 해 연인처럼 위장하고, 장터에서 길을 잃은 윤세리를 찾아내기 위해 등대처럼 향초를 켜 들고 서는 모습은 다소 과장되어 있지만 리정혁이라는 캐릭터에는 의외로 어울리는 면이 있다.

윤세리와 부대원들 간의 케미도 시선을 잡아끄는 중요한 재미요소들이다. 조개에 불을 붙여 구워 익혀 먹고 그 조개껍질에 소주를 마시는 그런 풍경이 촌스럽지만 그래서 더더욱 즐겁게 느껴지고, 그런 해물에는 소비뇽블랑 아니면 안 마신다는 윤세리가 소주 한 잔을 마셔보고 “여기 설탕 탔니?”라고 말하는 대목이 주는 웃음이 그렇다. 여기서 표치수(양경원) 같은 캐릭터는 윤세리의 허세를 북한 군인의 시선으로 툭툭 건드리고 눌러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웃음과 은근한 통쾌함을 선사한다. 한국드라마에 푹 빠져 마치 남북한 언어의 통역사 같은 역할을 하는 김주먹(유수빈)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사랑의 불시착>은 물론 상당한 북한의 현실과 언어 등을 고증하려 노력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평양의 카페 메뉴판이나, 장터의 풍경들, 꽃제비의 현실 등등. 특히 북한 언어들을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 우리의 언어와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그 고증 위에 이 드라마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와 판타지를 섞어 놓았다. 한 마디로 북한에서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시도인데, 이런 퓨전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갑자기 윤세리가 어디서 구한 지 알 수 없는 낙하산을 리정혁과 함께 타고 뛰어내리는(이 장면은 꿈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장면 같은 비현실적인 상황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약점들을 충분히 덮어주는 건 캐릭터들의 매력이다. 리정혁이 든든히 진지함을 떠받치고 있다면 윤세리의 엉뚱발랄함이 그 위에서 설렘과 웃음을 주고, 부대원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코미디 설정들을 풍부하게 한다. 심지어 이들을 도청하고 있는 정만복(김영민)이 끝말잇기 하는 저들의 이야기를 적고 있는 장면까지 코미디가 녹아들어있다.



<사랑의 불시착>은 자잘한 상황들이 주는 웃음과 설렘이 하나하나 모여 한 편을 구성하고 있는 듯한 작품이다. 그래서 전체 큰 틀의 서사의 관점으로 보면 다소 황당할 수 있는 상황들이 그려지지만, 의외로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계속해서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역시 캐릭터와 연기자들의 힘이 큰 작품이다. 현빈과 손예진의 밀고 당기는 로맨틱 코미디에 시청자들은 저도 모르게 점점 빠져들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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