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해 바뀌는 밤에 홀로 집에 머물며 책을 뒤적였다.

잔잔한 일상에 김처럼 서리는 슬픔과 따스함을 세밀하고도 담백하게 그린 소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도 읽었다. 단편집 앞 부분에 실린 번역자의 해설에서 다음 문장이 눈에 걸렸다.

‘22세가 되어 조이스가 더블린을 떠날 때까지 시내에서 20번이나 이사를 했는데, 그것도 살림이 어려운 까닭에서였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서 본 비슷한 유형이 이 문장에 겹쳐졌다. 연말을 맞아 한 포털 사이트에서는 대문에 이 시를 걸어뒀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후략)

첫 문장은 ‘~그것도 살림이 어려웠기 때문이다’고 써야 맞다.

시인은 ‘~아침이 오기 때문이요, 내일 밤이 남았기 때문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로 퇴고했어야 했다.

‘때문’과 ‘까닭’은 둘 다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그러나 용례는 상반된다. ‘때문’은 ‘어떤 원인 때문에 이런 결과가 발생했다’는 식으로 쓰인다. 반면 ‘까닭’은 ‘이유’와 뜻이 같다. 예컨대 ‘이런 결과가 발생한 까닭은 무엇인가’로 활용된다.

첫 문장에서 까닭을 살린다면 다음과 같이 써야 하겠다.

‘22세가 되어 조이스가 더블린을 떠날 때까지 시내에서 20번이나 이사를 했는데, 그것도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살림이 어렵다는 까닭에서였다.’

‘때문’을 쓸 자리에 ‘까닭’을 쓰는 건 무엇 때문인가. 게다가 문자를 사랑하며 문자로 밥을 버는 사람들이 그리하는 데엔 어떤 까닭이 있는 것인가.

브레히트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 살았다. 서정시를 읽기 힘든 까닭은 나에게 있는 것일까?


칼럼니스트 백우진 중앙일보시사미디어 전문기자,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cobalt@joongang.co.kr


[사진=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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