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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PD가 들려주는 정글 뒷얘기
기사입력 :[ 2012-01-30 12:59 ]


- '정글의 법칙'을 제대로 체험한 정순영 PD [대담]

[엔터미디어=TV남녀공감백서]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다. 시즌1을 끝낸 SBS <김병만 정글의 법칙>얘기다. 첫 회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최종회에는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시청률을 올렸고, 설 특집으로 기획된 같은 콘셉트의 여성판 <정글의 법칙 W>는 설 연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극도의 긴장감과 재미, 그리고 감동까지 더해가며 리얼 예능의 새로운 장을 연 <정글의 법칙>.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정글에서 하루 꼬박 실종되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관심을 받았던 정순영 국장과 만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그리고 시즌 2에 대한 계획도 들어봤다.
(대담: 정순영 PD, 정석희 칼럼니스트, 정덕현 칼럼니스트)

정덕현: <정글의 법칙>은 예능과 다큐멘터리의 절묘한 접목이라고 보는데요. 어떻게 기획하시게 된 건가요?

정순영: 그 발단은 사실 개그계의 대부 장덕균 작가에게 있습니다. 장덕균 작가는 김병만 씨와 이수근 씨가 무명이었을 때부터 자주 만나 용기를 북돋아주곤 했던, 이들에게는 아버지 같은 분인데요, 어느 날 김병만 씨와 장덕균 작가와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장 작가가 '김병만 이 친구 타잔이에요'하고 말하더군요. 어렸을 때부터 산 타고 나무 하고 물고기 잡으며 자랐다는 거죠. 사실 <키스 앤 크라이>를 통해 그 악착같은 도전정신에 믿음이 있던 차였는데, 그런 얘길 들으니 이 친구랑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김병만 씨가 '칼 하나만 주시면 어디서든 일주일을 버틸 수 있다'고 장담을 하더군요. 그 말이 <정글의 법칙>의 태동인 셈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거창한 걸 하려던 건 아닙니다. 그저 KBS의 <인간극장>이나 <걸어서 세계 속으로>처럼 화제성은 없어도 고정적으로 즐겨보는 이들이 많은 프로그램, 그런 걸 예능으로도 만들어보고 싶었죠.

정석희: <키스 앤 크라이>에 임하는 김병만 씨의 자세를 보고 <정글의 법칙>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신 거군요.

정순영: 본인이 다 해본 거라서 잘 할 수 있다, 라고 자신하더라고요. 사실 처음엔 수위 조절에 고민했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힘들어 보이면 시청자들이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접지 않겠어요? 또 너무 시시한 수준에 그치면 흥미조차 생기지 않을 것이고요. 시시하지 않으면서도 시청자들이 우리도 캠핑 가듯이 저런 곳으로 가볼까? 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었어요.

정석희: 그런데 아프리카 편에서도 화면에 나오신 적이 있었죠? 국장급이 현장에? 하고 놀랐습니다. 나중에 인도네시아에서는 실종까지 당하셨잖아요.

정순영: 네, 아프리카에서는 벌떼 때문에 잠깐 나왔었죠. 처음엔 콘셉트를 잡아야 해서 같이 간 거예요. 예능 PD들과 교양 PD들이 함께 참여하게 되니까 의견 조율 차원이었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되도록 같이 가려고 해요. 왜냐하면 저는 지금도 현장을 뛰는 현업 PD니까요. 제 체질입니다. 데스크에만 앉아있는 건 좀이 쑤시더라고요. 드라마 같은 경우도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시지만, <용의 눈물>, <여인천하>의 김재형 감독님도 70세까지 연출하셨잖아요.

정덕현: 정말 큰일 날 뻔 했어요. 어쩌다 길을 잃으신 건가요?

정순영: 아찔합니다. 저 하나 때문에 그 난리가 났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게다가 필름 다 버릴 뻔했지 뭡니까. 삼가 고인의 영전에 바칠 뻔 한 거죠.(웃음) 처음에 정글로 들어 갈 때도 제가 자꾸 뒤처지니까 원주민들이 나중에는 7살 정도 되는 남자 꼬마 아이 한명을 붙여 주더라고요. 그런데 그 벌거벗은 어린아이가 앞서 가면서 맨발로 가시덤불 땅을 밟아 주는 거예요. 저 오기 편하게 말입니다. 나이 오십 넘은 사람이 어린애 덕을 보면서 걸으려니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했어요. 아이가 가다가 제가 뒤떨어지면 서서 기다리다 다시 출발해요. 가기 전에는 파푸아에 식인종이 있다는 말도 있어서 선입견 같은 게 있었는데, 그 모든 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았죠.

정석희: 원주민들에 대한 인식이 좀 달라지셨겠네요.

정순영: 그렇죠. 그 어린아이의 배려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철수할 때는 제가 자꾸 허덕이는 게 미안해서 사람들더러 먼저 앞서라고 했죠. 뒤에 오는 후발대를 따라갈 요량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멈춰 서서 기다리다 보니 지형지물이 익숙하더라고요. 들어 올 때 봤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네모반듯하게 자른 나무라든지 큰 나무를 베어서 방향표시를 해 놓은 것들 말이죠. 저도 사실 주말마다 20년 정도 산행을 해본 터라 어느 정도 자신이 있던 차에 기다리던 팀들이 영 늦는지라 결국 혼자 걷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니 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더라고요. 나름대로 물휴지를 매달아 표시를 해두었는데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 거예요. 그래서 더 이상 움직이면 안 되겠다 싶어 거기서 잤던 거죠.



정덕현: 그 밤, 어떻게 보내셨나요? 인생의 전환점이 되셨을 것 같은데.

정순영: 해충의 습격은 말도 못하고요. 사실상 그렇게 무섭진 않았어요. 초가 하나 있었는데요. 벌레에 물렸을 때 촛농을 떨어뜨리면 일시적으로 좀 나아지기 때문에 늘 소지하고 다녔어요. 그래서 초를 켜놓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죠. 저에게는 88세 된 노모가 계신데 그분 보다 먼저 가면 안 되니 살려 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그랬더니 촛불 가장자리에 붉은 테두리가 생기는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그 아름다움이 말로 표현이 안 되네요. 어쨌든 그게 참 위로가 되더군요. 그저 관세음보살만 계속 외게 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집사람이 챙겨 넣어준 일타 스님의 <생활 속의 기도법>이란 책이 있는데요. 거기에 보면 ‘죽도록 기도하라’고 적혀 있거든요 저도 그 당시 죽도록 기도했죠.(웃음) 그때 위로와 공포가 동시에 제 안에 공존했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이라는 책에 보면 냉장창고에 갇힌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바깥의 걸쇠가 저절로 잠겨, 이제는 꼼짝없이 얼어 죽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공포에 떨다가 결국 죽었는데, 사실은 그 냉장창고가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는 얘기, 아시죠? 그 얘길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 잡았어요. 그리고 제 사주가 80까지 끄떡없다고 했으니 여기서 이렇게 죽지는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죠.(웃음) 그런데 한편으론 밤이 찾아 왔을 때 마치 엄마의 자궁 안에 들어 있는 느낌처럼, 그 상태가 너무 아늑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비온 뒤 촉촉이 서늘하게 와 닿는 공기의 감촉이 마치 실크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하룻밤이었지만 참 다양한 경험, 많은 느낌을 받았고 많은 생각도 했습니다.

정석희: 사람들에게 발견 되셨을 때는 얼마나 기쁘셨어요?

정순영: 말도 못하죠. 마실 물이 없어서 고여 있는 물을 그냥 퍼먹어야 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지나가던 원주민이 새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더라고요. 그래서 ‘나 좀 살려주라!’ 했더니 그 원주민이 ‘미스타 영!’하고 외치더라고요. 그 원주민들, 정말 고맙습니다. 그들 사진도 찍어 가지고 왔어요. 그리고 이건 좀 비약일지도 모르겠는데요. 과연 세계사가 제대로 써 졌느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서양인들이 쓴 세계사 책을 우리가 배웠고 이를테면 그들이 말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것도 화석 하나만 발견하고 그냥 그것을 일반화 시킨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웃음)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총,균,쇠>를 보면 그 작가가 28년 동안 파푸아뉴기니 지방을 다니면서 원주민들을 만나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있거든요. 저도 그 책에 공감하게 됐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석희: 조그만 아이들이 높은 나무 위로 마구 올라가는 것을 봤어요. 우리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그걸 보며 우리들은 얼마나 몸을 제대로 활용 못하고 사는 건지, 생각을 좀 해보게 되던데요.

정순영: 제작진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꼈던 게 혹시 우리가 이곳을 오염시키고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에요. 모종의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저 사람들은 건드리지 말고 그냥 저대로 살게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석희: 그곳에서 해충 때문에 많이들 괴로웠잖아요, 그런데 그곳 원주민들은 어떻게 견디죠?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할 텐데요.

정순영: 덜 물리게 하려고 뭔가를 바른데요. 그리고 아무래도 면역이 됐겠죠? 그 사람들도 제가 물린 것을 보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거기서는 파리도 막 물어요. 파리가 떼로 덤벼 아예 밥도 못 먹고요.

정석희: 탈이 난 김광규 씨를 바로 후송 조치를 하니까 이 프로그램에 더 신뢰가 생기더군요. 의사와 안내원도 있고 후송조치도 바로 해주니까 좀 안심이 되긴 했어요. 그렇지만 나중에 벼락으로 나무도 부러지는걸 보면 역시 위험요소가 너무나 많지 싶어요.

정순영: 그때 김광규 씨는 알레르기에 정신적인 공포가 겹쳐 극한 상황이었습니다. 치료차 읍내로 나갔는데 아무래도 말라리아인 것 같다고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정신적인 문제가 왔구나, 직감 했죠. 왜냐하면 말라리아의 잠복기는 최소 3주거든요. 게다가 주사도 맞고 약도 먹고 왔기 때문에 말라리아에 걸릴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빨리 비행기 편을 수속해서 보냈죠.

정덕현: 정글 진입 때나 철수 때나 김병만 씨조차 힘겨워하던데, 어느 정도인가요?

정순영: 어떻게 예를 들어야 할까요?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는 걸으면서 오줌이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땅에는 가시와 덩굴이 득실대고 진창에 빠지기라도 해서 발을 빼내게 되면 장화만 콕 박혀서 나중에는 그것 빼느라고 고생도 하구요. 통나무 같은 걸 잘못 밟으면 푹 꺼질 때도 있어요. 비도 한번 왔다하면 엄청 많이 오거든요. 이래서 원정이 참 어렵구나를 느꼈죠. 그런 곳을 누가 정복하러 오겠습니까. 이 민족이 지금까지 어떻게 해서 원시 상태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정덕현: 멤버 구성은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정순영: 김병만 씨는 애초 정해졌고요. 김병만 씨가 리키를 데리고 가고 싶다고 했어요. 예전에 KBS2 <출발 드림팀 시즌2>에서 경쟁을 해본지라 아마도 호승심이 생겼던 모양이에요.

정석희: 저는 처음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멤버들을 왜 데려갔나 싶었어요. 그러나 결국 우리들의 삶과 많이 닮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누군가가 앞장서 끌어주면 또 누군가는 거기 이끌려가기 마련이니까요. 처음에는 김병만과 리키 두 사람이 대립하는 모습도 보였고 김병만 씨가 독단적으로 행동해서 대중의 비난을 사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회를 거듭해가면서 서로 이해하고 갈등을 풀어가며 화합해가는 과정이 좋았어요.

정순영: 저는 한 일도 없이 화제만 되어서 고생 죽도록 한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고요. 굳이 제 공이 있다면 일주일 동안 밥을 주지 않고 끝까지 밀어 붙인 것 밖에 없어요. 나중에는 너무 배가 고프니까 PD에게 막 신경질 내는 장면도 나오잖아요.(웃음) 사실 처음부터 너무 세게 시작을 해서요, 다음번엔 어떻게 해야 할지가 고민이 됩니다.

정석희: 태미라는 여성 멤버가 참가했잖아요. 화장실 문제라든지 나름의 애로사항이 있었지 싶은데요. 태권도를 전공하긴 했지만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정순영: 다행히 의료진이 여자 분이셨죠. 그리고 작가진이 서로 돌아가며 틈틈이 챙겨주었어요. 그래도 알게 모르게 어려움이 꽤 많았겠지요.

정석희: 아 그러고 보니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소개된 곽정은 PD며 오정은 PD도 있군요. 오정은 PD가 국장님 실종 사건 때 펑펑 울던 빨간 옷의 제작진이죠?

정순영: 아마 저 실종 후 온갖 스텝들로부터 구박을 받았던 모양이에요. 저를 본 순간 다행이면서도 갖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을 겁니다. 사실 남모를 고생이 많은 친구에요. 남들 다 잘 때도 잠 못 자면서 테이프 다 챙겨야 하고 다음 촬영 준비해놓아야 하고.
(정순영 PD와의 대담은 2편으로 계속 됩니다)


대담 : 정덕현 칼럼니스트, 정석희 칼럼니스트
정리&그림: 정주연 기자
사진: 전성환 기자,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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